[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무술(武術)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 하거나 상실하면 그건 한낱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기라는 태권도가 무도 스포츠가 가서는 안될 길로 빠져 개싸움에 휘말렸다. 태권도의 중앙도장이자 심장으로 불리워지는 국기원의 갈짓자 걸음을 지켜보면 낯 부끄러운 한숨만 절로 나올 뿐이다. 사상 첫 민선 국기원장 선거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원장 업무 정지로 이어졌고,이사장 선거마저 두 차례 모두 부결돼 국기원 시스템이 모두 멈춰섰기 때문이다.
경기 태권도의 두 축인 대한태권도협회와 세계태권도연맹(WT)이 그나마 굴러가고는 있지만 국기원 문제가 대태협과 WT와도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는 탓에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특히 국기원 사태는 태권도의 물적 토대의 원천인 승품단 심사비와 관련이 깊은 만큼 자칫 이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전체 태권도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태권도의 분란과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국기원 사태는 한국 체육계에서 태권도의 위상과 특수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태권도의 갈등과 반목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다른 종목에 견줘 돈이 많이 돌아 먹을 게 많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다른 종목에 견줘 풍부한 태권도의 물적 토대의 원천이 바로 국기원이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승품단 심사비가 대태협과 지방태권도협회로 배분되는 시스템, 그게 바로 태권도가 다른 종목에 견줘 누리는 호사이자 그 어떤 종목보다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결정적 이유다. 다른 종목이 누릴 수 없는 태권도만의 특혜인 승품단 심사비 배분은 태권도의 입장에선 약이요 독인 셈이다.
사태는 이미 터졌고 이젠 대안과 수습방안을 찾는 게 시급하다. 얽히고설킨 이 문제를 원만하게 풀 수 있는 열쇠는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업무가 정지된 최영열 원장이 쥐고 있다. 그가 무도인답게 이 사태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재선거에 나서는 용단을 내리는 게 가장 현명한 대응 방식이 아닐까 싶다. 가처분 인용에 소인배처럼 꽁하게 대처해 본안소송에 나서는 건 존경받아야할 무도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태권도 전체를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밀어넣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금은 억울함과 서운함 등 개인의 감정에 휩싸여서는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태권도만을 생각하고 작은 길이 아닌 공생의 큰 길을 찾는 무도인의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최 원장은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새로운 이너서클에 휘둘리고 있는 모양새다.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너서클의 입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태권도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원장 직무정지에 대한 가처분 인용으로 힘을 얻은 국기원 이사회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두 차례나 부결된 이사장 선거를 원장 직무정지라는 새로운 변곡점을 이용해 서둘러 마치려는 꼼수는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사장 선출이 새 원장 선출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물밑 거래를 부추길 수 있고,더 나아가 전임 오현득 원장의 부역세력들이 살아남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어 걱정스럽다. 특히 범죄 전력이 있는 정치인 출신의 모 이사가 국기원 이사장을 노리며 전방위로 매표행위를 벌이고 있는 사실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도덕성이라는 엄정한 잣대를 치켜들고 책임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 인사는 문체부 장관과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터라 승인권을 지닌 문체부는 만약 그가 이사장이 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미리 천명하는 게 옳다.
태권도는 더 이상 체육에 국한된 콘텐츠가 아니다. 한류 문화의 효시이자 향후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토 확장에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세계 태권도 중앙도장의 성격을 띠고 있는 국기원은 경기 태권도와는 사뭇 다른 권위와 정신적 가치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게다. 이게 바로 무도 태권도가 견지해야 할 방향성이다. 무도인은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심안(心眼)을 밝혀 바른 길을 찾아가야 하는 존재다. 국기원 사태로 갈짓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태권도인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그대들은 진정 무도인입니까?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