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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골프백 대신 택배상자…`프로 캐디`는 생존 경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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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프로골퍼와 마찬가지로 전문 캐디들에게도 골프대회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코로나19 탓으로 대회가 중단되면서 생계 위기에 내몰린 캐디들이 발레파킹, 택배, 대리운전 등 `투잡 전선`에 나서고 있다. [AF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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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시즌 중 벌어놓은 돈으로 다음 시즌 개막까지 버텼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대회들이 속속 취소·연기되면서 심각해졌어요. 그동안 여유를 부리다가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른 캐디들을 통해서 적당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스포츠가 멈췄다. 그리고 사태가 장기화하며 속속 '임금 삭감' 카드를 꺼내 드는 곳도 늘고 있다. 야구, 농구, 배구, 축구 같은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팀과 계약이다. 당연히 임금을 삭감해도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된다.

반면 글로벌 스포츠 중 테니스, 골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철저하게 개인사업자다.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상금이 사라진다. 다행히 선수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다양한 스폰서십 계약을 통한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디는 사정이 다르다. 캐디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사업자다. 대부분 일정 금액의 '주급'과 함께 선수 성적에 따른 보너스가 주된 수입원이다. '캐디 수입'의 전제 조건은 '대회 개최'다. 대회가 없다면 수입도 없다.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떠나 굵은 땀을 흘리는 비수기에 발레파킹, 택배, 대리운전 등 '투잡'을 하는 캐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캐디 A씨는 "시즌 중에는 선수의 백을 메고 받는 수입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불안하고 저축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수기 때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 지 3년 됐다"고 설명한 뒤 "올해는 아르바이트 기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 대회가 속속 취소되면서 아예 일이 없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최근에는 다른 일을 하나 더 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상황을 털어놨다.

그런데 A씨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더 많다고 얘기했다. "나를 비롯해 캐디 수십 명이 비수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시즌 중에 벌어놓은 것으로 겨울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고 다음 시즌도 당연히 정상적으로 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A씨는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 대회들이 다 취소되며 비상이 걸렸다. 몇몇 캐디는 나에게 전화해 '아르바이트 괜찮은 데가 어디 있느냐' '택배 업무는 어느 정도 힘들고 근무 시간과 급여는 어떤가' 등을 질문한다"고 설명했다.

캐디들은 현재 상황대로라면 유럽이나 미국 투어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5월까지는 대회를 열기 힘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계 걱정을 심각하게 해야 할 시기다. 캐디의 생계가 위협받는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캐디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브라암 안세르(멕시코)의 캐디 데일 밸리는 "내가 한 달가량 일을 못한다면 망한다는 뜻"이라고 말했고 잰더 쇼플리(미국)의 캐디 오스틴 카이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캐디들이라고 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연봉 계약'을 한 캐디들도 일부 있기 때문. 하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는 3~4명뿐이다. 반년 계약한 캐디까지 포함해도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 나름대로 고충은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캐디 B씨는 "연봉 계약을 하면 일단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말한 뒤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계약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대회가 없어도 계약한 선수의 연습장, 필드 라운드에 꼭 동참한다. 동계 훈련 동안 달라진 구질과 비거리, 숏게임 방법 등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대회가 없어도 선수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B씨는 "연봉 계약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대회가 없어도 선수의 그림자로 늘 곁을 지켜야 한다"며 "내 몸값을 올리고 계약한 선수를 지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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