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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스펜서 컨피덴셜’ 언젠가 비디오테이프로 본 것 같은 익숙함 [넷플릭스 도장깨기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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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컨피덴셜’ 언젠가 비디오테이프로 본 것 같은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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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경찰 영화의 기본 공식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인물 구성이다. 정의롭지만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형사와 그를 선망하는 신참 형사, 그리고 퇴직 직전의 타락한 형사의 조합이다. 이 셋이 나오면 앞으로의 전개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정의로운 형사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을 따라가다가 생각보다 큰 비리에 마주치고 준비 없이 부딪히 벽 앞에 무릎 꿇는다.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자신의 조직을 공격해야 하는 일. 고민 끝에 정의로운 형사는 역시나 정의를 택하고 타락한 형사를 때려잡는다. 정의로운 형사의 옛날 방식에 반발하던 싸움 잘하는 신참 형사는 이 과정에 동참하며 최고의 콤비로 거듭난다. 이미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 드는 판에 박힌 경찰 스토리는 영화사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변주를 거듭해왔다.

지난달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스펜서 컨피덴셜'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첫 장면부터 집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상사에게 똑같이 폭력을 행사한 스펜서(마크 월버그)의 사연이 소개된다. 그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5년을 보낸 스펜서는 전과자가 되어 경찰 대신 트럭 운전이라는 제2의 인생을 꿈꾼다. 하지만 특유의 직선적인 정의로움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종격투기 세계의 '르브론 제임스'를 꿈꾸는 유망주 호크(윈스턴 듀크)와 함께 스펜서는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스펜서 컨피덴셜'은 전에 없던 새로운 영화인 척 속이지 않고 익숙한 구조를 대놓고 따라간다. 지난 1973년부터 연재된 소설 '탐정 스펜서' 시리즈의 에피소드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기도 하다. 다음 장면의 내용과 결말을 예측하는 데 쓸 에너지가 줄어든다. 남는 에너지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스펜서 컨피덴셜' 만의 특징을 찾는 게임에 쓰게 된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폭력을 쓰는 주인공에는 'X', 주인공이 여성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엔 'O', 주인공과 호흡을 맞추는 신참이 흑인인 것에도 'O'로 표기하는 식이다. 자신의 정의로움에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는 점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경찰로 복귀하려는 목적이 없는 점도 이전에 본 적 없는 쿨한 모습이다. 어설프게 리메이크하는 것보다 작은 디테일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묻는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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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면 친절하게 답해주는 할아버지 선생님 같은 '스펜서 컨피덴셜'도 끝까지 풀어주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스펜서가 일반인들이 수감되는 교도소를 선택해서 간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것이 그렇다. 출제자가 풀지 않은 문제가 일부러 남겨둔 힌트일 가능성은 없을까. 스펜서에게 자신이 있을 곳, 혹은 있어야 할 곳을 찾는 건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세상이 그를 이상하다 여겨 밀어내는 것에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심정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스펜서에게 공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영화에서 그가 옮겨 다니는 임시 거처 여정을 지켜보다 보면 트럼프 시대를 지나는 미국의 이민자 정책도 떠오른다.

'스펜서 컨피덴셜'은 싸움 조금 잘하는 것 외에 초능력이나 슈퍼파워가 없는 스펜서가 자신의 '조금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현실 히어로' 서사로도 읽을 수 있다. 그만큼 강력한 힘보다 순수한 정의가 더 귀해진 시대라는 방증이다. 과거에 비디오테이프로 본 것 같은 정통 경찰 영화를 넷플릭스로 누워서 보는 경험 역시 완전히 달라진 시대를 체감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bluebell@kukinews.com

쿠키뉴스 이준범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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