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나 아직 안 죽었다"…이현승이 준비하는 화려한 퇴로[SS TALK]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두산 이현승. 잠실 =이지은기자 number23togo@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현승(37·두산)은 지난 7일 잠실구장 훈련에서 가장 먼저 불펜 피칭을 했다. 이유에 관해 묻자 “그냥 나이 든 사람 예우 차원”이라는 특유의 유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르신들이 ‘나이 먹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나”라는 푸념까지 더해지자 취재진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웃으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선수라면 경기 상황에서 자신이 나갈 타이밍을 다 안다. 그때 다른 사람이 나가면 내심 상처를 받게 되더라. 나이를 먹으니 예전엔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농담이 어느 때는 가슴에 팍 들어와 박힐 때도 있다”며 “밖에서는 편하게 대우해주는데 정작 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게 힘들어졌다. 한 살씩 먹을수록 운동이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14년 만에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고 프리미어12 한일전 영웅으로 금메달을 걸었던 게 불과 2015년 일이다. 그러나 30대 현역 선수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걸 바꿔 놓았다. 2018시즌 39경기에 나서며 선발 전환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 가장 적은 출전 경기수를 기록했는데,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9경기 등판에 그쳤다. 그사이 육성 기조의 KBO리그에는 유망한 젊은 후배들이 속속 연착륙했다. 그래도 포스트시즌에서 관록을 보태며 팀 우승에 기여했지만, 이현승에겐 후배 박치국(23)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는 미안함으로 남았다.

베테랑의 투혼은 노욕으로 비치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이현승은 올시즌을 더 악착같이 준비했다. 겨우내 입을 굳게 닫고 열심히 몸을 만들었고, 컨디션이 한창 좋았던 일본 2차 캠프에서도 훈련만 매진하며 여느 때보다 빨리 감각을 끌어올렸다. 유일하게 모든 걸 낙관해도 괜찮은 게 비시즌이지만, 취재진 앞에 선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한 쯤은 임팩트 시즌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예전 내 모습을 되찾아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라는 선수를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할 수 있는 경기를 하고 그렇게 그만두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며 두산 선배 투수 둘의 이름을 말했다.

지난해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내기 위해 두산으로 이적한 배영수 2군 투수코치는 한국시리즈 4차전에 계획 없이 마지막 투수로 긴급 투입됐다. 그러나 홈런왕 박병호, 타점왕 제리 샌즈를 돌려세우며 마지막 커리어를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2016년 8월 3일 LG전을 끝으로 은퇴를 택한 정재훈 불펜코치는 당시 투수 강습타구에 오른팔을 맞아 골절상을 당한 게 계기가 됐다. 그러나 글러브 벗은 왼손으로라도 끝까지 아웃카운트를 올리려던 모습은 여전히 야구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천운을 타고 난 거다. 그런 상황은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웃던 이현승은 “자꾸 그만두는 얘기를 하게 된다. 많은 걸 내려놓았지만, 나도 선수인데 당연히 잘하고 싶다. 고참이라는 걸 떠나서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서 준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