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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에 빠진 19세 '피겨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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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판 아닌 매트에서 땀흘려… 복싱과 힙합 댄스까지 배워 근력·지구력·리듬감 끌어올려

"올해 세계선수권 취소됐지만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 4회전 점프 6개로 메달 도전"

지난 23일 피겨 선수 차준환(19)이 필라테스 훈련을 하는 서울 한 스튜디오에선 뜻밖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사가 "더, 더" 하며 강도 높은 스트레칭을 주문하면, 그는 잘생기기로 소문난 얼굴을 매트에 묻고 "크크크" 웃는 것으로 힘들다는 표현을 대신했다.

그의 별명은 '피겨 왕자' 그리고 '프린스 차밍'. 얼음판 위에서 긴 머리 휘날리며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낭만적이고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선수권이 취소된 후 국내에 발이 묶인 그는 얼음판 밖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스케이트 훈련은 새벽 시간을 활용하고, 거기에 더해 복싱과 힙합 댄스를 배우고 필라테스를 하면서 근력과 지구력, 밸런스, 리듬감을 끌어올린다. "평소 관심 가졌던 것들로 프로그램을 직접 짰어요. 바쁘지만 운동 효과도 좋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조선일보

23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필라테스 훈련을 모두 마치고 포즈를 취한 차준환. 캐나다에서 세계선수권 취소 소식을 듣고 귀국한 그는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난 뒤부터 복싱, 필라테스, 댄스 등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음 시즌을 알차게 준비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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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그는 캐나다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 세계적 선수들과 훈련해왔다. 지난달 16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선수권이 개막 나흘 전 코로나 사태로 취소됐다. "믿기지 않아서 취소 발표 다음 날 아침에도 훈련하러 나갔어요. 링크장까지 문 닫아버리니 어쩔 수 없었죠." 지난 2월 목동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5위) 메달을 놓친 그는 당시 지적받은 부분을 확실히 고쳐 세계선수권에 나서려고 했다. 작년 세계선수권(19위) 부진을 만회하고 싶어 열심히 준비했다고 한다.

아쉽지만 그는 힘들수록 웃고 실수와 좌절을 금방 털어낸다.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으면 결국 저만 손해잖아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점프하다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바로 다음 점프를 해내야 하는 피겨 선수에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능력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쉬면서 음악 들을 때도 잔잔한 클래식이나 팝송을 골라요. 감정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요."

어린 나이에 그런 통찰력은 어떻게 얻었을까. 그는 2018 평창올림픽 얘기를 꺼냈다. "운동에 재능이 뛰어나진 않아요. 평창만 바라보고 달려왔어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막판 큰 점수 차를 뒤집어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경험,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 무대를 밟아본 경험(15위)이 많은 것을 바꿔놨다. "스케이트 처음 신었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왜 스케이트를 좋아했는지 올림픽 치르면서 생각났어요. 훈련이 힘들어 잊고 살았거든요. 자유롭고, 나를 표현할 수 있어 좋았어요."

올림픽 이후론 작은 일에도 의미를 헤아리며 모든 선택에 신중해졌다고 했다. 남자 싱글 최연소로 출전했던 올림픽 직후부터 그는 한국 피겨 간판을 넘어 세계 상위권 선수로 뚜렷하게 발돋움했다. 2018-2019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 2019-2020시즌 종합선수권 4연패를 달성했다. 이제 2022 베이징올림픽을 바라본다. 오서 코치는 몇 년 전부터 "차준환이 베이징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고 말해왔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릴 때 그의 나이는 만으로 스무 살. "전성기가 막 열리는 시기일 것"이라고 했다.

메달권에 들려면 결국 4회전 점프가 관건이다. "베이징에서 4회전 점프 6개(쇼트 2+프리 4)까지 도전해보고 싶어요. 원래 이런 얘기 잘 안 하지만 스스로 자극을 주려고요." 2019-2020시즌 초반 4회전 점프를 5개까지 늘렸다가 중반부터 3개로 줄여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일단 시즌 초반 구성을 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부상 걱정하느라 도전 안 하면 아무것도 시작조차 못 하니까요."

올해 고려대에 입학한 그는 아직 캠퍼스에 가보지 못했다. 교수님, 동기들과 온라인 강의로 만난다. 이참에 풍성한 머리 스타일도 좀 바꿔볼 생각이다. "예전에 한동안 머리를 짧게 다듬었는데 왠지 감성이 잘 살아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짧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기르는 쪽이라고 한다.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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