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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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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떠나 한국전력 새 둥지 튼 박철우 “계약한 날부터 심장 뛰어…프로의 목표는 오직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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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과 협상 때 장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조언 큰 영향

계약 때 눈물 흘린 아내, 이젠 한전에 ‘올인’하라며 응원

경향신문

이기고 싶어 눈물 나야 선수다 오프시즌 한국전력으로 이적한 박철우가 지난 6일 경기 의왕시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역동적인 폼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의왕 |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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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삼성맨’일 줄 알았던 라이트 박철우(35·한국전력)가 한국전력과 손잡은 것은 배구계에도, 심지어 박철우 본인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전력에서 걸려온 영입 전화는 10년째 같은 쳇바퀴를 돌던 박철우의 배구 인생을 하루아침에 뒤흔들어 놓았다. “프로선수의 목표는 오직 우승이어야 한다”는 그는 이제 새로운 동료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정상으로 나아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6일 경기 의왕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만난 박철우는 “30대 중반에 편안하고 익숙한 팀을 떠나 변화를 준다는 건 큰 도전이고 결정이었다. 이적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이 선택이 맞는 걸까’ 손이 떨렸다”며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니 그제서야 편해졌다. ‘이곳이 내 팀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는 지난달 17일 한국전력과 3년, 총 21억원의 계약을 체결하고, 2010년부터 10년간 뛴 삼성화재를 떠났다. 그는 삼성화재를 4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었고, 삼성화재 감독·단장을 지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의 사위라는 개인적 배경까지 있어 삼성맨 이미지가 강했다.

잘 안될 땐 주장선배라도 ‘정신 차리라’욕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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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는 “삼성화재에서 ‘신진식 감독님 거취를 결정한 후 FA 계약을 하자’고 말했기 때문에 2~3주를 집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삼성화재에 대한 애정이 컸고 내 나이와 보상선수, 보상금액 문제를 생각해도 이적은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고 떠올렸다. 그랬던 그에게 지난달 16일 권영민 한국전력 수석코치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철우는 친정 현대캐피탈에서 권 코치와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박철우는 “권 코치님이 ‘현대캐피탈에서 시작할 때 내가 함께하자고 말하지 않았냐. 마지막도 함께하자’고 말씀하시더라. 그 말에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 코치는 박철우가 원하는 금액을 먼저 말하기 어려워하자 “네가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신치용 촌장의 한마디도 박철우가 마음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박철우는 “두 팀과 협상할 때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드려 조언을 구했다. 장인어른이 ‘철저히 프로답게 생각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여자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부인 신혜인씨는 상심이 컸지만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신씨는 아버지 신 촌장이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았던 1995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25년간 삼성화재 배구를 본 사람이다. 박철우는 “아내가 한국전력과 계약하러 가는 날도 울고, 나흘 정도는 삼성화재 관련 영상이나 인터뷰만 봐도 울었다”며 “지금은 한국전력에 ‘올인’하라면서 적극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여덟 살, 다섯 살 딸들도 “이제부터 한국전력을 응원하겠다”며 ‘태세’를 전환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변화는 박철우가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신나는 일이었다. 그는 “익숙한 생활에 안주하다보니 언젠가부터 무기력했다. 시즌이 끝나도 여행도 가고 싶지 않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며 “그런데 한국전력과 계약한 그날부터 신기하게도 심장이 뛴다. 한국전력에 처음 출근하던 날도 이렇게 설렌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설레더라”고 말했다.

팀의 맏형 박철우에게 장병철 감독은 주장을 맡겼다. 박철우는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팀에 적응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에게 처음 한 얘기가 ‘미안하다’였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오자마자 주장을 하게 됐다”며 웃었다.

한국전력은 최근 두 시즌 연속 남자부 최하위에 머물렀다. 장 감독은 박철우에게 이기는 경기, 승리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안겨주면서 팀 재건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현대캐피탈·삼성화재 등 강팀에서만 뛰었던 박철우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강팀 유전자’를 후배들에게 이식하겠다는 열의가 넘친다.

박철우는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에서 배운 건 ‘안 되면 악이라도 쓰라’는 자세였다. 악을 쓰다가 안 되면 사람이 눈물이 난다. 이기고 싶어서 눈물이 나야 선수”라며 “잘될 땐 서로 웃으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안 될 때는 상대가 선배일지라도 ‘정신 차리라’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 관중이 돈 내고 우리를 보러 오는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다’는 말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박철우는 “잘못한 선수에게 ‘괜찮다’고 하면 또 그래도 되는 줄 안다”며 “잘못한 선수는 팀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안하면 혼자 야간운동이라도 하고, 그러면서 실력이 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철우의 목표는 우승이다. 혼자 힘으로 한국전력을 단번에 챔피언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꿈을 크게 꿔야 그 근처에라도 도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하루빨리 팀에 녹아들어 선수들과 좋은 팀워크를 만들겠다. 한국전력은 분명 지난 시즌보다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며 “경기장에 많이들 오셔서 선수들과 호흡하고 ‘봄 배구’의 기쁨을 함께 누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왕 |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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