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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40세 이성우 “내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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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20년차 ‘일년살이’ 선수…작년 ‘끝내기’ 이어 이번엔 감격의 ‘만루홈런’



경향신문

LG 이성우가 2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원정 한화전에서 8회초 데뷔 첫 만루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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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홈런 4개의 ‘백업 포수’
작년 SK서 방출, LG서 기회
“내년은 없다” 벼랑에서 최선
한화전 “나 살아있다” 축포

타구가 꽤 잘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펜스를 넘어가버린 건가.

전 같으면 교체됐을 만루의 기회였다. 만루에 타석에 서 본 적이 있기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야구 인생에 대부분 주전은 아니었기에 만루홈런이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었다. 그라운드를 돌고 있자니 묘한 감정들이 마음을 채웠다. ‘2년 전 잘렸던 내가 지금 만루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니….’ 생애 첫 만루홈런을 친 바로 그 순간, 이성우(39·LG)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성우는 지난 27일 대전 한화전에서 8회초 1사 만루에 좌중월 홈런을 쳤다. 2000년 신고선수로 LG에서 뛰기 시작한 뒤 20년의 프로 생활 동안 1군에서 친 홈런이라고는 딱 4개뿐이던 40세 백업포수의 화려한 축포였다. 이성우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참 그렇다. 2년 전에 방출되고 갑자기 LG에서 연락이 와 이렇게 선수 생활 더 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를 치더니 이제 만루홈런을 다 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성우는 ‘일년살이’ 선수다. 이제 마흔이 된 백업포수이기에 늘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시즌을 보낸다. 2018년 시즌 뒤 SK에서 방출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줄 알았을 때 LG가 내민 손을 잡은 이성우는 지난해 생애 첫 끝내기 안타(작은 사진)를 치며 야구 인생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래도 기록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했기에 시즌 뒤 마지막을 각오하고 있던 이성우에게 LG는 은퇴나 방출이 아닌 연봉을 제시했다. 1000만원이 올랐다. 그렇게 또 1년의 기회를 더 얻으니 이번에는 만루홈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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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이성우가 6월21일 잠실 KIA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린 뒤 오른손을 쭉 뻗은 채 베이스를 돌고 있다. | LG 트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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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는 “나는 ‘내년’을 생각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작년에도 끝내기 안타 한 번 친 거지 성적이 좋지는 않아 그만둬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재계약을 했고 연봉도 올랐다”며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고 이렇게 만루홈런까지 칠 기회를 준 LG에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성우는 올 시즌을 또 한번 진짜 마지막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서 스프링캠프에서는 더욱 생애 최고로 뜨거운 노력의 시간들을 보냈다. 이성우는 “이제 진짜 마지막일 수 있으니 미련이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매 순간 열심히 하고 싶다. 경기에 출전하고 못하고는 중요치 않다. 그저 후회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일년살이’ 선수인 이성우는 ‘월요일 아빠’다. 언제 야구를 그만두게 될지 모르기에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광주에 있다. SK로 트레이드되면서부터 헤어져 살았으니 4년째다. 이성우는 1~2주에 한 번씩 일요일 밤에 광주로 가 야구가 없는 월요일에 아이들과 놀아주고 화요일 새벽 서울로 올라온다. 두 아들 찬휘(5)와 준휘(3)는 늘 아빠를 그리워한다. 매일 TV로 야구를 보며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아빠가 만루홈런을 친 날, 광주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내는 울고 두 아들은 펄쩍펄쩍 뛰었다. 찬휘와 준휘는 수화기 너머로 서로 “아빠 최고”를 무한반복해 외쳐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밤중에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 턱을 쏘셨다. 사위의 첫 만루홈런에 잔치가 벌어졌다.

이성우는 “찬휘가 야구를 엄청 좋아해서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야구가 진짜 재미있고 좋은데 자기는 매일 집에 오는 아빠가 되고 싶다며 선수는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마음이 찢어졌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한 달이나 아이들을 못 봤다. 어젯밤 통화를 하고 나니 더 보고 싶다”며 웃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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