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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S1포커스] 반복되는 스포츠계 폭행, 사라지지 않은 엘리트체육 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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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상주의, 지도자-선수 상명하복 문화 여전

인권위 특별조사단·체육회 인권센터도 유명무실

뉴스1

지도자 등의 폭행과 갑질에 못이겨 23세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청소년·국가대표 출신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2020.7.2/뉴스1 © News1 남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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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한국 스포츠계에 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유망주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와 선배 등의 가혹행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한국 엘리트체육의 병폐다.

최숙현 선수는 소속팀 경주시청의 감독과 '팀닥터'로 불린 물리치료사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최숙현 선수의 비극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최숙현 선수가 생전에 여러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숙현 선수는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심지어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제대로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018년에는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가 담당 지도자였던 조재범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던졌다. 이후 정부 차원에서 스포츠계 폭행을 뿌리뽑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스켈레톤·봅슬레이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이용 의원은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조재범 코치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안타깝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스포츠계에 뿌리깊은 병폐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여전히 '성적지상주의'가 꼽힌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 어느 정도 폭행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과거 심석희가 그랬고 최숙현 선수도 다르지 않았다.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존재하는 '상명하복' 문화도 짚어볼 대목이다. 한국 스포츠계, 특히 아마추어 종목의 경우 소속팀의 감독과 코치의 말이 사실상의 법이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경우도 많아 선수들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숙현 선수의 경우 팀닥터의 금전 요구에도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팀닥터가 정확한 용도를 밝히지 않은 채 돈을 요구했고, 최숙현 선수가 그에 응했다는 것. 선수 입장에서 향후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 탓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그동안 문제로 지적됐던 폐쇄적인 환경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상명하복 문화는 존재하고 있다"며 "아직도 물밑 현장에서는 성적이 선수들의 인권에 우선하고 있다"고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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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 운동부 감독인 A씨가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시 체육회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2020.7.2/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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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 코치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도 유명무실하다. 인권위 홈페이지에는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가 특별조사단의 할 일로 나오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대한체육회 내 존재하는 스포츠인권센터는 최숙현 선수의 신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최숙현 선수가 녹취록 등 결정적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증거 확보를 위한 인권센터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의 경우 조사관 숫자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따른다. 한달 평균 6~7건의 진정이 접수되지만 조사관은 3명뿐이다. 심층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는 사건이 벌어진 뒤 나란히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후약방문식 처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일단 고인의 억울함을 명명백백 밝히는 것이 스포츠계의 할 일이다. 그 다음으로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doctor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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