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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허삼영표 실리야구[SS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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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삼성 장필준이 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BO리그 키움전에서 원태인에 이어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고척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고척=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비겁한 것 같지만, 상황을 보며 피해서 갈 겁니다.”

지난 8일 키움과의 원정 경기를 앞둔 고척스카이돔, 삼성 허삼영 감독은 불펜 최지광(22)의 복귀를 알렸다. 유망주 혹사 방지 차원에서 지난달 26일 롯데전을 끝으로 1군에서 말소됐고, 그간 휴식을 취한 뒤 7일 상무 퓨처스 경기를 통해 최종 점검했다. “구위가 회복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오늘 일단 서울로 올라와 숙소에서 쉰 후 내일부터 1군과 함께 움직인다”고 말하는 허 감독의 얼굴은 밝았다. 22경기 1승 9홀드 평균자책점 2.14로 활약한 필승조의 복귀였다. 희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약간의 교통정리는 필요한 상태다. 최지광의 역할이 최근 호투하고 있는 장필준(32)과 겹치기 때문이다. 장필준이 시즌 초 부상자명단(IL)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선발에 이어 7회를 책임진 후 우규민과 오승환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임무는 최지광이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최지광이 2군에서 체력을 회복하는 사이 돌아온 장필준이 무실점 행진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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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허삼영 감독이 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BO리그 키움전이 끝난 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고척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허삼영표 ‘실리야구’는 여기서 두드러진다. ‘향후 역할이 비슷한 둘을 어떻게 활용하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허 감독은 “비겁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상대 전적에서 약한 타자들을 피해가려고 한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프로 감독의 입에서 쉽게 나오기 힘든 솔직한 설명도 이어졌다.

“상대 전적을 많이 보려고 한다. 다음 이닝에 들어갈 때 선두 타자가 누군지를 본다. 투수가 올라갔을 때 부담이 안 가는 매치업으로 해줘야 자신감이 생긴다. 막히는 기분이 드는 걸 피하게 하려고 한다. 물론 항상 피할 순 없기에 언젠가는 뚫어야 한다. 하지만 투수가 최고조에 있을 때여야 한다. 붙어도 괜찮겠다 싶을 때 등판시키겠다.”

프로 세계는 ‘약육강식’으로 대표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에서 정면승부를 피하는 건 곧 자신이 약자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허 감독은 이런 명분 싸움에서 기꺼이 비겁해지는 쪽을 택했다. 승산이 크다면 우회경로를 택해 위닝 멘탈리티를 심을 것이고, 이게 궁극적으로는 팀을 더 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감독은 언제든 자존심을 놓을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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