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출처 | 발렌시아 SNS |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 2001년생의 10대 선수가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믿음과 기회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강인(발렌시아)에게 부족했던 부분이다.
이강인은 8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의 메스타야에서 열린 레알 바야돌리드와의 2019~2020 라리가 35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4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발렌시아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012년 9월 대선배 박주영(35·FC서울)이 셀타비고 소속으로 헤타페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이후 8년여 만에 이강인은 스페인 라리가 무대에서 결승포를 터뜨린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이강인은 1-1로 균형을 이루던 후반 19분 카를로스 솔레르를 대신해 교체로 경기에 들어가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후반 37분 왼쪽 측면에서 수비 뒷공간을 찌르는 절묘하고 정확한 크로스로 막시 고메스의 헤더슛을 도왔다. 슛이 골대 맞고 나왔고, 이후 아슬아슬하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기는 했으나 이강인의 날카로움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기어를 올린 이강인은 후반 44분 스스로 바야돌리드 골문을 열었다. 오른쪽 페널티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은 중앙으로 툭툭 치고 들어간 후 강력한 왼발슛을 시도했고 공은 수비숲을 지나 골대 구석을 정확하게 찔렀다. 골키퍼가 팔을 뻗었지만 코스가 워낙 좋아 막지 못했다. 이강인 특유의 압박을 벗어나는 움직임과 정확한 슈팅력이 만든 골이었다. 이강인이 라리가에서 득점한 것은 지난해 9월25일 헤타페전 이후 286일 만의 일이다.
이강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날 경기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강인은 이번 시즌 전체적으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특히 교체되는 시간과 경기 환경이 아쉬웠다. 이강인은 이번 시즌 라리가 총 14경기에 출전했다. 선발 출장한 경기는 2회에 불과했고, 15분 미만을 뛴 경기가 6회에 달했다. 이강인은 속도로 승부를 보는 선수가 아니라 자신이 템포와 흐름을 주무르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다. 예열 시간이 필요한 유형인데 충분히 기량을 펼치기에는 출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미 팀이 2~3골 차이로 뒤지고 있는 시점에 들어간 적도 6번이나 된다. 농구에서 주로 쓰는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에 들어간 셈이다. 이미 경기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갔고, 동료들의 추격 의지가 꺾인 시점에 투입됐으니 좋은 활약을 펼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날은 1-1로 팽팽하게 대치하던 후반 중반에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모든 선수들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환경에서 충분한 시간을 부여 받은 이강인은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며 맹활약했다.
이강인이 어떤 자리에서 뛰어야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지도 다시 한 번 목격했다. 이강인은 스피드에 약점이 있어 윙어로 뛰기엔 무리가 있다. 수비력도 부족해 중앙 미드필더는 버겁다.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은 섀도우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인데 발렌시아는 주로 4-4-2 포메이션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강인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날 발렌시아는 이강인에게 사실상 프리롤 역할을 맡기며 공격의 흐름을 이끌게 했다. 실제로 이강인이 고메스에게 결정적 크로스를 올린 자리는 왼쪽이었고, 골을 넣은 위치는 오른쪽이었다. 자유롭게 2선과 측면을 오가며 공을 자주 만져야 하는 이강인이 원하는 대로 뛰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현재 이강인은 발렌시아를 떠나 더 많은 시간을 뛸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일 발렌시아 지역지 수페르데포르테에서는 이강인이 발렌시아의 재계약 요청을 거절하고 이적하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전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앞서 설명한 이강인에 맞지 않는 환경 탓이 크다. 바야돌리드전을 통해 이강인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건만 잘 맞으면 라리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강인은 출전 시간이 확보되고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팀이라면 유럽 어느 리그에 가더라도 제 몫을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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