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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한화발 코로나 확진, 재발 방지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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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측 “선수 격리 풀어달라” 요청

더 큰 피해 막으려면 지침 따라야

무더운 여름, 힘든 일과가 끝났다. 한 선수가 “날이 너무 더워 지친다. 고기라도 먹고 힘을 내고 싶다”고 푸념했다. 옆에 있던 코치는 “요즘 코로나19가 다시 심해졌다.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말렸다. 대신 “정 먹고 싶다면, 고깃집 말고 내가 묵는 숙소 옥상으로 가자. 다른 사람이 없고, 야외라 덜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코치를 포함해 7명이 야구장 인근 숙소 옥상에 자리를 폈다. 늘 같은 공간에서 훈련하고, 함께 식사하던 사이. 사실상 식구다. 그저 평소와 조금 다른 방식의 저녁 식사로 여겼다. 고기를 먹으면서 맥주 두 캔을 조금씩 나눠 마셨다. 한 시간 가량 식사를 마친 뒤 각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 지난달 28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육성군의 저녁 풍경이다.

사흘 뒤, 불행히도 그 7명 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하루 뒤엔 또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둘 다 관련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고기 파티’라는 단어로 둔갑해 세상에 알려졌다. 최초 확진자 실명이 즉각 공개되면서 온갖 억측이 꼬리를 물었다.

물은 엎질러졌다. 사후 대처가 중요했다. 확진자 둘을 포함해 충남 서산시 한화 퓨처스(2군) 구장을 오간 선수와 관계자·협력업체 직원 97명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했다. 나머지 95명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역학조사 끝에 59명(한화 선수 50명 포함)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했다. 확진자와 접촉한 시점부터 2주간 전원 자가격리를 결정했다. 한화가 속한 2군 북부리그 전체 경기는 일주일간 중단됐다.

이 때 박정규 한화 대표이사가 나섰다. 2군 구장을 방문한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맹정호 서산시장, 송기력 서산시 보건소장에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선수가 격리돼 2군 운영이 마비됐다. 1군 선수가 다치거나 아파도 엔트리를 교체할 수가 없다. 2군과 육성군을 분리해 운영해왔으니, 일부 2군 선수의 자가격리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는 특수 재난 상황이다. 전 국민이 방역 지침을 따르느라 크고 작은 고통과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보건소장은 “2군과 육성군 선수들은 체력단련실과 물리치료실 등을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엄격하게 분류된 밀접 접촉자라 어느 선수도 예외를 둘 수 없다”고 즉각 거절했다.

한화 입장에선 충분히 당혹스러운 일이다. 선수 50명의 자가격리가 해제된다 해도 이들이 정상 컨디션을 찾으려면 1~2주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9월 한 달간 발생할 변수들을 상상하면 눈앞이 깜깜한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국가적 재난 사태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선수 한두 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2군 리그가 일주일간 중단되는 시대다. 프로야구에 또다시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을 뿌리 뽑는 게 그 어떤 가치보다 먼저다. 한화가 아닌 다른 구단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 팀 역시 같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을 거다.

한화의 2020년은 악몽 같았다. 역대 최다 18연패, 감독 중도 퇴진, 프로야구 최초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모든 게 꼬였고, 운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한화의 민낯을 보여준 건 이번 사건의 사후 대처다. 한화 이글스 대표가 했어야 할 일은 “우리 구단 사정 좀 봐달라”고 청탁하는 게 아니다. 죄인처럼 비난받고 있는 확진 선수들을 내부에서 다독이면서 선수단에 더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를 당부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고개 숙여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게 구단 대표의 임무다. 박 대표는 결국 2일 오후 사의를 표명했다. 선수와 구단에겐 프로야구도 중요하지만 세상엔 이보다 중요한 게 더 많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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