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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故 이건희' 삼성 스포츠 왕국도 종언을 고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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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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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뒤 숨은 주역인 이건희 삼성회장(IOC 위원)이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자료사진=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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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향년 78세로 생을 마감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중추였던 고(故) 이 회장은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낌없는 투자로 국내 스포츠 발전에 초석을 놓았던 이 회장은 국제 무대에서도 거물로 활약하며 스포츠 외교의 핵심 역할을 했다. 프로야구단 구단주와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 회장과 삼성그룹의 지원 속에 한국 스포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선수 출신으로 이 회장이 몸담았던 종목의 수장 역할을 맡은 기간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아시안게임도 29개, 세계선수권도 4개를 수확해냄 황금기를 구가했다. 삼성그룹은 야구, 축구, 남녀 농구, 배구 등 프로 구단의 명문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외에도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 등 아마추어 종목도 운영 중이다.

삼성의 프로 구단은 든든한 그룹을 둔 덕에 최강팀으로 우뚝 섰다. 프로야구는 2002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2000년대에만 3번, 2010년대는 4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 역시 K리그 4회, FA컵 5회 우승을 달성했다. 남녀 프로농구 서울 삼성, 용인 삼성생명과 프로배구 삼성도 수 차례 우승으로 최강의 반열에 올랐다.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이 회장과 삼성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 회장은 1996년부터 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웠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 참석해 평창의 유치 결정을 지켜봤다. 삼성도 1997년 IOC의 톱 후원 계약사로 나섰고, 2028년 LA 올림픽까지 30년 동안 최고 레벨 후원사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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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2011년 IOC 총회에서 인사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뒤 '삼성 스포츠 왕국'도 저물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부터다. 스포츠에 대한 삼성그룹의 투자가 줄어들면서다.

삼성 야구단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사상 첫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5년 말 대주주가 삼성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다. '돈성'으로 불릴 만큼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수익과 구단 운영의 효율성도 추구한다는 기조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박석민(NC), 최형우(KIA), 차우찬(LG) 등 삼성 왕조의 주역들도 팀을 떠났다. 삼성은 이후 하위권을 전전했고 올해 가을야구도 무산됐다.

프로축구 삼성도 마찬가지다. 한때 FC 서울과 세계 7대 더비인 '슈퍼 매치'의 위용을 떨친 삼성은 '종이 사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풍족했던 선수 영입은 옛말이 됐고, 구단에서는 오히려 선수를 팔아 운영하라는 말이 나온다는 풍문이 돈다. 지난해 8위에 머문 수원은 올해는 2부 강등을 걱정하다가 간신히 9위를 달리고 있다.

다른 종목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남자 농구는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고, 올 시즌도 최하위로 처졌다. 남자 프로배구도 7연패의 위업을 잇지 못하고 최근 대한항공, 현대캐피탈 등에 밀리고 있다. 여자 농구는 2006년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아마추어 종목에 대한 관심도 줄고 있다. 삼성은 1997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사를 맡아 21년 동안 약 220억 원을 후원하며 빙상 강국 코리아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연맹 반대파 등 빙상계의 갈등이 이어자자 회장사에서 물러났다. 연맹은 관리단체로 지정돼 아직까지 새 회장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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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왼쪽)가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2015년 두산과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잠실=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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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이 회장까지 별세하면서 삼성그룹의 스포츠 지원은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버지를 이어 그룹을 경영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미 스포츠 지원을 줄이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체육계와 관련해 큰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의 핵심 최순실(현 최서원)의 딸 정유라에게 건넨 승마 지원비 72억 원이 뇌물로 인정됐다.

IOC에 대한 삼성의 후원은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스포츠 외교력은 크게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지병으로 쓰러진 뒤 2017년 IOC 위원에서 사퇴하면서다. 그나마 지난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회장 자격으로 IOC 위원에 선출됐지만 내년 1월 체육회장 선거 여부에 따라 거취가 달라질 수 있다. 자칫 유승민 IOC 선수위원 1명만 남게 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삼성 야구단 구단주, 레슬링협회장 등을 맡으며 의욕적인 투자로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왔던 고 이건희 회장. 그러나 이제 유명을 달리 하면서 삼성 스포츠 왕국도 예전의 영화를 되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이건희 회장의 유고와 함께 삼성 스포츠 왕국도 종언을 고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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