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선 까다로웠고 지도자로선 만만치 않은 승부사…자기 관리에선 교훈 남겨"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때 마라도나와 신경전 벌이는 허정무 이사장 |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심장마비로 향년 6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소식에 국내 축구인 중 남다른 인연이 있는 허정무(65)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허 이사장은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마라도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옛 생각이 나며 만감이 교차했다. '선수 시절 상대했던 세계적인 스타들이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싶기도 하고, '벌써 그렇게 됐나' 싶더라"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국내에서 마라도나의 얘기가 나오면 가장 많이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축구인이다.
선수와 사령탑으로서 모두 월드컵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친 이력 때문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시작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맞대결 때 마라도나 수비하는 허정무 이사장 |
당시 한국은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다.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그때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고, 한국 수비진의 주축이던 허 이사장은 '진돗개'라는 별명답게 거칠고 끈질기게 마라도나를 막았다. 이를 본 아르헨티나 언론에선 '태권 축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1-3으로 졌고, 조별리그에선 1무 2패로 탈락했다.
허 이사장은 "정말 까다로운 선수였다. 수비수의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해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이 좋았고, 패스는 구석구석 가야 할 곳으로 어김없이 정확히 보냈다. 키는 작지만 '생고무같이' 통통 튀었다"고 당시 마라도나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선수는 다르다고 느꼈고, 이런 선수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저로서도 많은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흘러 이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각각 한국과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조별리그 상대 팀으로 만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맞대결 당시 허 이사장과 마라도나 |
당시 허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1-4로 졌으나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멕시코 대회 때와는 한국 축구의 위상이 달라진 시기다.
허 이사장은 10년 전 대결에 대해 "점수 차이는 났지만, 역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가장 잘한 경기라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벤치에서 상대한 마라도나에 대해선 "지도자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당시 심리전이나 수 싸움을 펼치는 것을 보고선 만만치 않은 승부사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앞두고 마라도나가 조 추첨식을 위해 방한했을 때 사전 행사에서 이들은 다시 마주쳤다.
선수 시절부터 약물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으로 징계를 받고 은퇴 이후엔 과체중으로 위장 축소 수술을 받는 등 건강 문제를 겪었던 마라도나는 이때도 몸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허 이사장은 떠올렸다.
허 이사장은 "그때 봤을 때는 몸은 불어 있고, 맑아 보이지 않더라"면서 "마라도나가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축구인들에게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라는 교훈도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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