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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방탄소년단의 보수적인 美 문화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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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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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2주 연속 한국대중문화계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 미국시장 성과 관련. 이제 방탄소년단 컴백 때마다 벌어지는 ‘다반사’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매번 남다른 이슈들이 되는 이유가 있다. 그 성과가 연이어 이전의 그것을 넘어서는 기록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11월30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 디럭스에디션 앨범 ‘Be’와 그 타이틀곡 ‘Life Goes On’이 ‘동시에’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핫200과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건이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은 한국어 곡으로 처음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한 아티스트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핫100과 핫200 동시 데뷔 1위 아티스트가 됐고, 핫100 1위 데뷔곡을 2개 보유한 첫 번째 그룹, 그리고 비지스 이후 최단기간 3곡을 핫100 1위로 올려놓은 그룹이 됐다.

한편 그 전 주, 10월24일(현지시간)엔 미국 최고 권위 대중음악시상식 그래미상에서 K팝 아티스트 중 최초로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디지털 싱글 ‘Dynamite’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수상여부는 내년 1월31일 개최되는 제6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확실히 대단한 소식들이다. 한국대중문화산업 전체 입장에서 늘 결정적 동반동력을 선사해주는 게 방탄소년단 존재란 점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같은 성과 뒤 가려진 ‘미국시장’ 그 자체의 특징적 면면과 그 숨은 딜레마들도 근래 인터넷상에서 조금씩 거론되는 실정이다. 소위 영광 뒤 가려진 위협요소들. 하나씩 살펴보자.

일단 이번 빌보드 성과 중 핫100 1위 부분. 사실 진짜 ‘힘겹게’ 얻어낸 1위다. 이번에도 또 라디오 에어플레이 점수 탓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11월30일자 기사도 이 부분을 지적한다. “‘Life Goes On’은 발매 첫 주 단 한 군데 라디오채널만 2자리 수 라디오스핀을 해주며 고작 41만 라디오 청취자들에 노출되는, 거의 전무한 라디오플레이로 핫100 1위를 차지했다”며, “반면 ‘Dynamite’는 발매 첫 주 1160만 청취자들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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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하다. ‘Life Goes On’은 ‘Dynamite’와 달리 비영어 곡이기 때문이다. 이번 핫100 1위는 막강한 미국팬덤의 어마어마한 세일즈와 스트리밍, 즉 ‘충성도’로 얻어낸 것이지, 비영어 곡에 대한 미국 라디오스테이션 거부감은 방탄소년단이 아무리 미국 내 화제 중심에 있더라도 변함이 없더란 것. 거기다 같은 비영어라도 남미 쪽 언어들은 미국 내 사용인구라도 많아 그나마 대접이 좀 낫다. 그러나 아시아 인구는 미국서 불과 5.9%에 불과(히스패닉 18.5%의 1/3도 안 된다)하고, 그마저도 각 나라 별로 언어가 잘게 흩어져있다.

이는 결국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노래’에 대한 미국대중의 전반적 인식이 변화하지 않고선 해결이 안 될 문제다. 대중이 변해야 무려 1만5000여 곳에 이르는 미국 라디오스테이션들도 힘을 얻어 플레이리스트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왕성한 문화적 흡수력과 그 유행교체주기 차원에서 아마도 세계 첫 째 갈 한국과 달리, 그 문화적 인식과 취향 변화가 매우 느린 ‘고인 물’들의 판이다.

한편, 그래미상 관련은 좀 더 복잡한 문제다.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은 엄밀히 주요부문, 즉 ‘제네럴 필드’는 아니었단 불만들이 쏟아진다. 제네럴 필드는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베스트 신인상’ 등 4개 부문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이중 ‘올해의 레코드상’과 ‘올해의 노래상’ 부문에 신청을 했었다.

이 같은 불만은 사실 수 십 년 걸친 그래미상 자체에 대한 불만과 궤를 함께 한다. 그래미상은 애초 좀 까다롭고 희한한 상이다. 일단 상업적으로 괄목할 성과를 보인 아티스트들이 주 대상이 된다. 시상식 자체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화계에서 아카데미상과 성격이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장르 편견 내지 편식(?)이 심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팝 댄스나 일렉트로닉, 힙합 등에 인색한 편이며, 특히 ‘근래 트렌드’에 잘 적응하지 못할뿐더러 일종의 반감까지 감지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밥 말리나 지미 헨드릭스 같은 전설적 아티스트들도 그래미상은 타본 적이 없고, 올해도 어떤 의미에선 방탄소년단보다 괄목할 성과를 남긴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가 ‘0개 부문’ 후보란 이변을 낳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들 원인은 단순하다. 그래미상을 결정짓는 레코딩 아카데미 1만1000여 회원들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빌보드 측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은 74%가 남성, 73%가 백인이며, 72%가 만 40세 이상으로 구성돼있다. 쉽게 ‘나이 든 백인 남성’이 절대 중심이다. 정확히 2016년 아카데미상이 ‘오스카 소 화이트(Oscar So White)’ 비판에 직면하기 직전 상황과 같다. 새로운 장르나 문화형식 등에 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상당부분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편견들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

물론 레코딩 아카데미 측도 변화를 위해 애쓰긴 한다. 2020년만 해도 전체회원 12%에 해당하는 1345명 새 회원들을 맞아들이며, 그중 40%를 여성으로, 47%를 비백인으로, 그리고 55%를 만 39세 이하로 구성했다. 그런데도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온 건, ‘오스카 소 화이트’ 캠페인 이후 똑같이 새 회원들을 맞이한 아카데미상 상황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2019년 가장 주목받던 멕시코영화 ‘로마’를 제치고 진부한 할리우드영화 ‘그린 북’이 작품상을 타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기존 회원들이 느낀 위협감’이 작용했단 분석까지 나온 바 있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비영어 영화 ’기생충‘에 최초로 작품상에 돌아가게 된 순서. 변화는 몇 차례 진통을 거치고서야 이뤄지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여러모로 참 보수적인 환경이란 얘기다. 한국과 정치외교적으로 늘 민감한 관계인 일본보다도 훨씬 뚫기가 어렵다. 일본이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단 얘기가 아니라, 이미 ‘영미 팝’ 및 ‘할리우드영화’가 시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다른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노래’나 ‘외국드라마’ ‘외국영화’ 등에도 근본적 거부감은 잘 못 느끼는 환경과 그렇지 않은 환경 간 차이가 극심하단 얘기다.

어찌됐건 와중에도 방탄소년단과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등 ‘기적’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사실상 한국만큼 대중문화 미국진입에 성공하고 있는 나라도 전 세계에 또 없다. 미래는 밝다. 다만 그 ‘진통기’ 또는 ‘과도기적 현상’들에 대해선, 다소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도 있단 얘기다. 어차피 그런 불만도 ‘미국 내에서’ 다 알아서 제기되고 수면 위로 떠오른다. 탄탄한 글로벌 팬덤을 지닌 대중문화산업이란 그래서 다소 수월(?)한 경향이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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