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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단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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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창경궁 명정문 회랑 위로 회화나무와 수많은 별이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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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1. 寧越郡樓作 영월군 어느 누각에서 짓다
一自寃禽出帝宮 한 많은 어린 새 한 마리 궁궐 밖으로 나오니
孤身隻影碧山中 외로운 그림자 푸른 산속에 홀로 서 있구나
假眠夜夜眠無假 밤마다 잠을 청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窮恨年年恨不窮 해마다 응어리진 한을 삭여도 그 한 끝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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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영향을 받아 문살이 다소 화려하게 만들어진 낙선재 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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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선의 국왕 중 가장 비극적이고 비통한 삶을 살았던 왕이 바로 단종이다. 보령 12세에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단종은, 임금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훗날 세조)에게 강제적으로 선위하고 강원도 영월에 있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단종은 3년 2개월 동안 정치를 펼쳤지만, 수양대군 때문에 늘 좌불안석이었다. 1457년(세조 3) 음력 10월, 단종은 사육신의 복위 사건에 휘말려 ‘노산군’으로 강등된 채 창살 없는 유배지에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단종이 처음 영월로 유배를 왔을 땐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청령포에 거처했으나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길 우려가 있어 동헌으로 옮겼다. 이때 단종은 밤마다 누각에 올라 사람을 시켜 피리를 불게 하고 슬픈 심정을 시로 승화시켰다.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영월군 어느 누각에서 짓다)’라는 제목의 이 시는 《열성어제》에 2수가 실려 있다. 단종은 촉나라 임금 두우杜宇가 신하에게 쫓겨나 죽은 뒤, 자규새(두견새)로 환생해 밤마다 피나게 울었다고 하는 고사를 떠올리며 애달픈 자신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노래하였다.
이 작품은 단종이 17세 때 지은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인의 억울함과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였다. 1구의 ‘한 많은 어린 새’는 곧 단종을 의미하고, 2구의 ‘푸른 산중’은 곧 영월의 유배지를 말한다. 3구에서는 멀리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고, 4구에서는 작은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서러움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써도 없어지지 않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1457년 음력 6월, 영월로 유배된 어린 단종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함과 참담함 그 자체였고, 그해 10월 24일 죽기 전까지 단종은 몇 편의 시를 남겼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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