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챔프전 3차전 패배후 우리카드 상대로 투지 불살라
평소 내색 않던 태도 바꾸고 느슨한 플레이 다그치며 경기
대한항공 첫 통합우승 이끌어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이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구단 사상 첫 통합 우승(정규리그 1위, 챔프전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우승을 확정한 대한항공 선수단이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인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탈리아)을 헹가래 치고 있다. KOVO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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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다.”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36)는 15일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 승리 기자회견에서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벼랑 끝에서 되살아난 안도의 한숨 같은 건 없었다. 한선수는 “상대가 베스트가 아니라서 그렇다. 5차전은 승패를 떠나 두 팀 모두 100% 전력으로 맞붙었으면 한다”고 했다. 구단 첫 ‘통합 우승’에 도전하는 그의 비장한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날 우리카드 공격의 핵심인 외국인 선수 알렉스는 배탈로 결장했다.
이틀 뒤인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 5차전에는 한선수의 당부처럼 양 팀이 100% 전력으로 맞붙었다. 1∼3세트 연속 듀스가 나올 정도로 뜨거운 승부 끝에 마지막에 웃은 건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은 이날 우리카드에 3-1(24-26, 28-26, 27-25, 25-17)로 역전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통합 우승의 희열을 맛봤다. 2017∼2018시즌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챔프전 우승이다.
세터상 2회, 베스트7 세터 부문 3회 수상에 빛나는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도 숙원이었던 통합 우승을 커리어에 더했다. KOVO 제공 |
정규리그 3라운드부터 선두로 고공비행한 대한항공이 이처럼 ‘해피엔딩’을 맞은 데는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56),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레프트 정지석(26) 등 여럿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심장 한선수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 데뷔 3년 차(2009∼2010시즌)부터 세터상을 받으며 리그 대표 세터로 거듭난 한선수는 봄 배구에선 늘 조연에 가까웠다. 2017∼2018시즌 어렵사리 첫 챔프전 반지를 꼈지만 통합 우승의 기회는 늘 그에게 닿을 듯 비껴 지나갔다.
이번 시즌도 쉽지만은 않았다. 산틸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의 훈련 강도는 전보다 강해졌고, 외국인 선수 비예나(28)가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다. 대체 선수 요스바니(30)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팀 전력을 이끌어야 했다. 시즌 막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벽만 보며 자가 격리를 하기도 했다. 힘든 티를 낼 수 없다는 게 더 힘들었다. 팀의 유일한 동갑내기 유광우(36·세터)는 “주장으로서 자신의 눈빛 하나, 행동 하나에 팀이 좌우된다는 부담감을 선수가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챔프전에서도 우리카드의 기세에 밀려 1, 3차전을 내주는 등 쉽지 않은 승부를 펼쳤다. 평소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그도 이번 시리즈에서는 코트 위 후배들의 느슨한 플레이를 다그치는 등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공만 올려주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뛰었다. 버티고 또 버텼다”고 소감을 밝혔다.
큰딸 효주 양(8)과의 일화도 뒤늦게 털어놓았다. “효주 반 친구가 ‘너희 아빠 어제 우리카드한테 졌지?’라고 했다더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처음으로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 아빠로서 지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선수는 이날 챔프전 5차전에서 마지막 퍼즐인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동시에 세트(토스) 46개를 추가하면서 남자부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첫 2000세트 성공(총 2039개)의 주인공이 됐다. 세 딸 효주, 수연(3), 소현(1)의 아버지인 한선수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V리그의 전설이 됐다. 한선수는 이제 세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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