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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연재] '이현우의 MLB+'

[이현우의 MLB+] '야구 혁명가' 오타니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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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전인미답(前人未踏).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어떤 이가 이제까지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영역에 도달했을 때 쓰이는 사자성어다.

일본인 '투타겸업'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가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타니는 5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발표한 2021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AL) 선발투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타자와 투수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됐다. 1933년 MLB 첫 올스타전이 열린 후 한 선수가 타자와 투수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와테현 오슈시 출신인 오타니는 사회인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야구에 입문했고, 8살 때 지역 주말 리틀리그에서 뛴 것을 시작으로 중학 시절 시니어리그를 거쳐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에 진학했다. 같은 지역 출신으로 동경하던 선배이자, 올해 AL 올스타에 함께 선정된 기쿠치 유세이(30·시애틀 매리너스)의 출신 교교였기 때문이다.

고교 1학년부터 4번타자 겸 에이스로 활약한 오타니는 3학년 시절 도내대회 준결승전에서 일본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최초로 160㎞/h를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고시엔 통산 14.1이닝 평균자책점 3.77, 타율 0.333 1홈런으로 프로 진출을 노리는 고교 선수로서 표면적인 성적이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 힘든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교 시절 은사인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배려가 숨어있었다. 오타니를 처음 본 순간 일본 야구계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직감한 그는 일본 고교 야구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에이스 오타니의 투구수를 철저히 관리했다. 그 덕분에 혹사를 피한 오타니는 상대적으로 팔이 싱싱한 상태로 프로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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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대로 고교 졸업 당시 오타니의 목표는 '메이저리그 직행'이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진출했을 시 지명권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프로야구(NPB) 니혼햄 파이터즈 구단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선수로 오타니를 선택했고, 야마다 마사오 단장을 필두로 한 수뇌진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그를 눌러 앉히는 데 성공했다.

이때 오타니를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2006년 이후 한국에서 고교 졸업 후 미국에 직행한 선수들의 커리어'와 '2013시즌을 앞두고 다저스와 포스팅비 포함 약 6년 6,2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류현진'을 비교한 자료였다. 덧붙여서 니혼햄은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중요한 조건을 달았다. 바로 '투타겸업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명 이도류(二刀流)라고 불렸던 오타니의 투타겸업에 대해선 일본 야구계 내에서도 비관론이 많았다. 프로 레벨에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건 운동 메커니즘으로 보나, 체력적으로나 무모한 시도라는 것이다. 사실 오타니는 이런 투타겸업에 대한 비관론에서 프로 진출 후 8시즌이 지난 올해 초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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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이를 바라볼 때,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었으리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타니가 투타겸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데뷔 첫해부터 오타니는 타자와 투수로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두면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2년 차인 2014시즌 타자로서 두 자릿수 홈런과 투수로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면서 기대를 모으는 듯했으나, 이듬해인 2015시즌엔 타격 성적이 부진하면서 여론이 다시 회의적으로 돌아섰고, 2016시즌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하면서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빅리그 진출을 앞둔 2017시즌 발목 부상으로 다시 오타니의 투타겸업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상황은 빅리그에 진출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2018년 AL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진출 첫해였던 2018시즌 중반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2019년에는 1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고, 2020년에는 2경기에서 1.2이닝 투구에 그치면서 미국 진출 후 오타니의 투구 이닝은 지난해까지 3년간 53.1이닝에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올 시즌 시작 전, 오타니의 투타겸업에 대한 시선은 2013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으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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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타니에게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소속팀이 미국 진출 당시 투타겸업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준 에인절스라는 것이었다. 한편, 에인절스가 강력한 타선에 비해 선발진이 약하다는 점도 투타겸업을 지속할 수 있는데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오타니 스스로가 투타겸업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겨울 오타니는 광학 추적 카메라와 레이더 측정 장비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선수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훈련 시설인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을 찾아 몸에 밴 나쁜 습관을 교정했다. 이를 통해 2019년 왼쪽 무릎 슬개골 수술 후 타격 시 흔들리던 축발을 단단히 고정했고, 2018년 팔꿈치 수술 후 몸이 일찍 열리는 문제도 고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꾸준한 재활 운동과 좋아하는 계란을 끊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로 수술 이전의 건강을 되찾은 점도 올 시즌 오타니의 활약 비결 중 하나다.

아시아 타자 MLB 단일시즌 최다홈런

1위 32홈런 오타니 쇼헤이 (2021년 진행중)
2위 31홈런 마쓰이 히데키 (2004년)
3위 28홈런 마쓰이 히데키 (2008년)
4위 25홈런 마쓰이 히데키 (2007년)
5위 24홈런 추신수 (2019년)

그 결과 오타니는 9일(한국시간) 기준 타자로서 81경기에서 32홈런 69타점 타율 0.279 OPS 1.064, 투수로서 4승 1패 67이닝 87탈삼진 평균자책점 3.49라는 만화를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32홈런은 공동 2위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와 4개 차이로 전체 홈런 1위이자, 역대 아시아 출신 타자로서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다.

물론 올 시즌 타자로서 오타니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나, 투수로서 오타니보다 뛰어난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타율·타점·OPS에서 1위에 올라있는 게레로 주니어와 패스트볼 '평균' 구속 99.3마일(159.8㎞/h)에 평균자책점 1.08(1위)에 올라있는 제이콥 디그롬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투·타를 종합했을 때, 오타니가 현시점 최고의 선수란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 알렉스 코라는 보스턴 지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타니는 MVP 후보군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새로운 상을 만들어야 한다. 오타니는 최고의 타자도, 최고의 투수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합치면 그는 최고의 선수다. 솔직히 말해 난 오타니가 하는 모든 일에 경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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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타니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상징성'이나 '희소성'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오타니는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베이스볼레퍼런스> 기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에서 타자로선 3.7승(7위), 투수로선 1.9승(43위)에 그치고 있으나, 투·타를 종합했을 땐 5.6승으로 2위 디그롬(5.0승)과 큰 차이로 ML 전체 1위에 올라있다.

오타니는 빅리그 진출 후 4년 만에 투타겸업이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그리고 올시즌 그의 활약이 더 감동적인 이유는 수많은 역경과 비판을 딛고 일어서서 스스로 일구어낸 성과라는 데 있다. 하지만 그간의 부상 전적을 고려했을 때, 오타니가 현재 활약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과연 오타니는 시즌 끝까지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해 투타겸업 MVP라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투타겸업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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