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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라비다] 멕시코 '양궁한류' 이끈 이웅 전 감독…"최강 한국양궁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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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초등 지도자 덕에 기본기 탄탄한 韓 양궁, 10∼20년 정상 지킬 것"

멕시코 대표팀 20년 지도 후 현재는 멕시코 e스포츠협회장 겸 사업가

연합뉴스

20년간 멕시코 양궁 대표팀 이끈 이웅 전 감독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0년간 멕시코 양궁 대표팀을 지도하고 현재는 멕시코 e스포츠협회장 겸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웅 전 감독. 2021.8.2 mihye@yna.co.kr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020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단체전에서 김제덕과 안산이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을 때 멕시코도 같은 종목에서 대회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결승에서 한국을 만나 패한 멕시코 팀이 3∼4위전서 터키를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은메달을 딴 네덜란드팀의 여자 선수도 사실 네덜란드 남편과 결혼해 귀화하기 전까지 멕시코 국가대표로 뛰던 선수였다.

당시 경기를 누구보다 흐뭇하게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웅(59) 전 멕시코 양궁 대표팀 감독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이 전 감독은 "한국이 금메달을 따고, 두 제자가 나란히 은·동메달을 따서 내게는 더없이 기쁜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번 혼성 동메달을 포함해 멕시코는 역대 올림픽 양궁에서 3개의 메달을 땄다. 전체 메달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멕시코에도 양궁은 제법 쏠쏠한 메달밭이다.

멕시코가 양궁에서 메달을 기대할 수 있게 된 데엔 20년간 대표팀을 이끈 이 전 감독의 역할이 컸다.

우리 대표팀 코치도 지낸 이 전 감독은 1997년 멕시코 측의 요청에 따라 멕시코로 건너와 양궁 대표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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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우리는 챔피언
(도쿄=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안산과 김제덕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네덜란드(은메달), 멕시코(동메달)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7.24 ondol@yna.co.kr


이 전 감독의 지도 덕에 세계 최하위 수준이던 멕시코 양궁이 국제대회에서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멕시코 여자 선수들이 개인전 은·동메달을 땄다. 멕시코 역사상 첫 양궁 메달이었다.

당시 금메달은 한국의 기보배였다. 멕시코 입장에선 슛오프에서 극적으로 갈린 승부가 아쉬울 법도 했지만 이 전 감독은 결과에 기뻐했다.

"어차피 한국은 못 이깁니다. 외국에 있는 다른 한국 지도자들에게도 한국이 잘해야 한국 지도자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하곤 했죠."

이 전 감독도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을 편히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멕시코의 후안 레네 세라노가 예선에서 한국 선수들을 모두 꺾고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킨 후 기세를 몰아 4강까지 진출했다.

4강 상대가 박경모였는데, 이 전 감독은 차마 한국 선수를 이기기 위한 코칭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경기 내내 선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고 세라노는 박경모에 패해 대회를 4위로 마쳤다.

"양심의 가책도 느꼈고, 아끼는 선수의 패배에 마음도 너무 아팠죠. 못 할 짓이다 싶어서 돌아와 사표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멕시코 측에서 '언제 우리가 올림픽 4등을 했냐.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며 붙잡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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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 당시 이웅 전 감독.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 이후 포옹하는 기보배와 멕시코 선수 옆에서 흐뭇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게 남아 2016 리우올림픽까지 총 다섯 번의 올림픽에서 멕시코팀을 지도한 이 전 감독은 리우 대회 이후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이번 올림픽은 그가 멕시코로 온 후 감독이 아닌 '시청자'로 지켜본 첫 대회다. 제자 세라노의 해설을 들으며 밤늦은 시간까지 양궁 경기를 빠짐없이 시청했다.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더 많은 것을 느꼈다는 이 전 감독은 다른 나라들이 "어차피 한국은 못 이기는 이유"로 가장 먼저 "훌륭한 초등학교 지도자들"을 꼽는다.

"우리 초등학교 지도자들이 대부분 선수 출신이라 기본기를 정말 탄탄하게 가르칩니다. 그 기본기가 국가대표 때까지 이어지죠. 빛나지 않는 곳에서 정열적으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지도자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대한양궁협회의 지원과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전 감독은 양궁 중계화면에서 땡볕 관중석에 앉아있는 정의선 양궁협회장의 모습을 보고 "물질적 지원보다 어려운 양궁에 대한 큰 관심과 사랑"에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많은 대회 참가 덕에 향상된 경기력, 서로 다른 지도자들 밑에서 훈련한 선수들을 한 팀으로 만들어내는 대표팀 지도자들의 노력, 그리고 실력 향상을 위한 선수들의 노력과 정신력이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5가지 비결이라고 이 전 감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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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 당시 이웅 전 감독(오른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정한 선수 선발도 물론 중요하지만 멕시코 대표팀도 공정하게 선수 뽑거든요.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대회 개최지 환경에 맞춘 훈련도 하고요. 하지만 이들 5가지 이유로 한국 양궁이 독보적이죠. 앞으로 최소 10∼20년 정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궁장을 떠난 이 전 감독에겐 이제 사업이 본업이 됐다.

그는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도 개인 사업 겸직이 가능하다는 멕시코 협회의 말에 2001년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 마케팅부터 시작해 멕시코시티 공항 디지털 광고까지, 양궁에서 그랬듯 사업 분야에서도 선구자 정신으로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이전 개업을 준비 중인 그의 카페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멕시코인들의 사랑방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체육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어서 멕시코 e스포츠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가깝게 지내는 멕시코올림픽위원장이 '한국이 양궁뿐 아니라 e스포츠도 강국 아니냐'며 요청해온 것이었다.

양궁 한류에 이어 e스포츠 한류 전파라는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양궁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다. 최근까지도 중남미 국가들에서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온다고 이 전 감독은 귀띔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다른 나라에서 양궁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런던에서 첫 메달을 딴 후 멕시코에 있는 한인이 '감독님 덕분에 한국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고마움을 전하더라고요. 양궁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널리 전파할 수 있죠."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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