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내용 요약
작곡가 23(김성수)·박민주와 작업
리코더가 인상적인 '웨이 백 덴', 3·3·7 박수에 기초
리코더가 인상적인 '웨이 백 덴', 3·3·7 박수에 기초
[서울=뉴시스] 정재일. 2021.10.10. (사진 = 넷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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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까지 추가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와 '기생충'을 작업한 정재일(39) 음악감독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우리 콘텐츠의 중심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정 감독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에 대해) 너무 반응이 커서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요… 제가 막 실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계속 그냥 하다보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정 감독은 '계속 그냥'이라고 얘기했는데, '그냥'보다는 '계속'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불혹(不惑)을 앞둔 정 감독은 올해로 벌써 음악계에 몸을 담은 지 25주년이 됐다. 1996년 만 14세에 데뷔해 다른 곳에 미혹되지 않고, 음악만 톺아봐왔다.
정 감독은 "결국 영화는 이야기와 연출이 가장 그 중심에 있는데 운이 좋게 매우 훌륭하고 강력한 작품을 만나게 됐다"면서 "마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되다 보니 음악까지, 덩달아 주목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감사한 일"이라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정 감독의 작업 성과를 그의 '운'으로만 한정하는 건 부당하다. 세계적인 감독들이 그와 작업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마니아 층이 형성된 정 감독은 이미 음악계에선 장르를 불문하고 유명하다.
수퍼 밴드 '긱스' 출신으로 이소라·윤상·박효신·김동률·보아·아이유·이적 등 정상급 대중음악 뮤지션 음반의 연주자와 프로듀서로 나섰다. 국악 기반의 월드뮤직그룹 '푸리' 출신이라는 점, 소리꾼 한승석과 함께 작업한 '바리abandoned'와 '끝내 바다에'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뉴시스] '오징어 게임'. 2021.10.10. (사진 = 넷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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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다. 연극 '그을린 사랑', 양손프로젝트의 '배신',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무용극 '어린왕자' '사군자, 생의 계절' 그리고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장민승 작가의 '보이스리스'와 아트필름 '오버 데어' 등 연극, 뮤지컬, 미술과 전시 분야에서도 정 감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정규 2집 '정재일(Jung Jae Il)' 이후 약 11년 만인 올해 초 정규 3집 '시편(psalms)'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음악 백과사전쯤을 거뜬히 낼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 젊은 음악가는 마흔살도 안 돼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가 반열에 올랐다.
그런 정 감독임에도 '오징어게임'은 쉽지 않았다. 9개 에피소드, 485분 러닝타임의 '오징어게임' OST는 20곡. 정 감독은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면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항상 앞선다"면서 "('오징어 게임'은) 보통 영화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소화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야기와 미장센이 워낙 강렬했고 무엇보다 황동혁 감독님이 '잘 끌고 나가주시리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조금 헛다리 짚어도 열심히 따라가 보자! 같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정 감독이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을 만난 건 2018년 겨울. 황 감독의 전작들 중 특히 영화 '남한산성'(2017)의 감동이 그 안에 뜨겁게 살아있던 때였다. 황 감독은 음악을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몇 개월후 아주 두꺼운 스크립트를 건넸다.
[서울=뉴시스] '오징어 게임'. 2021.10.10. (사진 = 넷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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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감독은 정 감독에게 '음악 콘셉트'에 대해 따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스크립트를 펼치는 순간, 또 편집본을 받아 든 순간, 아…이 안에 다 나와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 감독의 심경이다.
다만 재즈 스탠더드인 바트 하워드의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은 황 감독이 직접 선곡했다. 살육·죽음의 테마로 두 번 사용되는데, 메인 테마 작업보다 정 감독은 이 곡의 편곡을 선행해야만 했다.
이와 함께 숙소나 게임장을 배경으로 할 땐, 대중에게 아주 익숙한 선율의 클래식을 선곡해야 했다.
황 감독의 세대를 거쳐 정 감독 세대까지 익숙한 프로그램 '장학퀴즈'의 오프닝 곡인 요제프 하이든의 트럼펫 콘체르토가 숙소 내 기상음악으로 사용된다. 또 매회 죽음의 게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살육의 현장에서 생존해낸 사람들의 공포, 무력감 위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흐른다.
정 감독은 "원래 감독님께서 촬영전부터 생각하고 계셨던 음악들인데 저와 함께 더 색다르고 특이한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다가 '그래도 이것만한 음악이 없구나'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시리즈의 음악을 이번에 처음 작업했다. 그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함과 동시에 더 길고 큰, 영화와는 조금 다른 집중력을 요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뉴시스] '오징어 게임'. 2021.10.10. (사진 = 넷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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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간 주로 '나홀로 작업'을 해온 정 감독이 다른 작곡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다. "길고도 유기적이지만 지루할 틈 없는 스코어링을 위해서는 저와는 다른 결의 음악이 꼭 필요하겠다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 감독의 오랜 친구인 작곡가 23(김성수)와 박민주가 힘을 실었다. 작곡가로 활동할 때 예명 '23'을 내세우는 김성수는 뮤지컬계에서 유명한 음악감독이다.
정 감독이 음악 수퍼바이저로 나섰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음악감독이었던 김성수는 우리나라 대표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을 모두 작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뮤지컬 '페스트'(서태지)·'광화문연가'(이영훈)·'미인'(신중현)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거나 맡고 있는 중이다. 박민주는 에일리, 다비치, 케이윌 등의 노래 작·편곡을 맡았고 뮤지컬, 드라마도 작업했다.
특히 전 회에 걸쳐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테마이자 분홍 옷을 입고 가면을 쓴 진행요원들이 등장할 때 흐르는 '핑크 솔저스(Pink Soldiers)'는 23의 작품이다.
'오징어게임'의 문을 여는 곡이자 얼굴 곡이자 리코더 멜로디가 강렬한 '웨이 백 덴(Way back then)'은 정 감독이 작업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연습했던 리코더나 소고, 캐스터네츠, 멜로디언같은 악기들이 떠올랐다"면서 "기본이 된 박자는 (주로 게임에서 응원할 때 사용되는) 3·3·7 박수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의 악기로 결투의 음악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었죠. 아이들의 '오징어 게임'이 마치 그들의 모든 것을 건 결투, 유치한 코리안 시골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이 아닌)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이 '이게 뭐냐?'라고 할 것 같은 마음에 아주 조심스럽게 들려드렸는데 매우 좋아해주셔서 깊이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뉴시스] '오징어 게임'. 2021.10.10. (사진 = 넷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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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뮤지션' '천재 음악가'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는 정 감독의 음표들은 사실 벼락같은 영감으로만 찍히지 않는다. 그는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성실한 노동자로서 꾸준히 악보를 꼼꼼히 그려나간다.
이번 '오징어 게임' 음악 작업을 앞두고 역시 "영감을 채우려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매일매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편린들이 언젠가 무엇인가 돼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해선 "아주 단순한 게임을 통해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교활함과 잔혹함을 만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까지 오게된 서로를 위하며, 자신을 내려놓기도 하는 마음"을 들여다봤다.
"내가 과연 이기고 있는지 아니면 지고 있는건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알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속에 갇힌 절망이 생각났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시작점을 되돌아 보면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정 감독의 향후 스케줄은 가득 차 있다. 내년 3월 국립창극단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창극으로 풀어낸 신작 '리어왕'에선 연출 정영두, 극작 배삼식, 작창 한승석 등 공연계 어벤저스와 작업한다.
"음악은 모두의 친구이고 에스페란토(국제 공용어)이기 때문에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습니다. 근데 팝 음악은 조금 자신이 없고, 재주가 없이 느껴져서, 아주 신중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악기가 목소리인데 훌륭한 목소리를 만난다면 백의종군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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