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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살면서 잘한 일? ♥아내 만난 것"..조폭설→아내폭행설 해명(옥문아)[Oh!쎈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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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나연 기자] 이재명 대선 후보가 아내를 향한 사랑꾼 면모를 드러냈다.

30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는 이재명 2022 대선후보가 출연했다.

이날 이재명 후보는 "바쁘실텐데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에 "솔직히 제가 뿔난 사람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찔러도 피도 안나올 것 같고 소위 추진력이라는게 잘못 인지되면 탱크로 밀어버릴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실제로는 아닌데. 그런걸 교정하고 싶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토크 수위를 정해달라"는 요청에 "최고 수위로 편하고 자유롭게 해달라. 왜냐면 이미 있는 얘긴데 억울한게 많다. 질문하면 설명할 기회를 얻으니까. 아이템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이후 김용만은 "몸 안 좋았는데 괜찮냐"고 아내 김혜경의 낙상사고를 언급했다. 이재명 후보는 "토하고 이러다가 심하면 의식 잃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안경에 눌려서 눈 위쪽이 찢어졌다. 제가 어찌했다는 썰이 쫙 퍼지고 있다. 처음에는 무지 화난다. 요즘에는 화 안난다.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요 기회를 이용해서 어떻게 되치기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조폭설도 언급했다. 이재명은 "시장실에 아무나 와서 사진 찍으라고 했다. 그중에 여러 사람이 책상에 다리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많이 찍어갔다. 재밌지 않나. 그런데 그걸 누가 올렸는데 이재명이 조폭인 증거라더라"라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는 '옥문아'를 통해 어필하고 싶은 이미지를 묻자 "사실 다정다감하고 교감도 잘되는 편이다. 그런 측면들이 전혀 안보이고 일방적으로 보이고 세게 밀어붙이는 이미지가 있다"며 "살아온 과정이나 삶의 과정이 선입관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저는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이다. 용만씨와 별로 다를바 없는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싸움닭', '인간사이다'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이재명은 '아내사랑꾼', '애교쟁이'라는 반전 별명에 대해 "아내하고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 쌓일때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내하고 장난치고 놀때다. 아내가 잘 받아준다. 출근하면 아내가 배웅 해주지 않나. 저한테 향수를 뿌려주는데 애교를 부린다. 좋아한다"고 뜻밖의 면모를 드러내 놀라움을 안겼다.

매일 일기를 써왔다는 이재명은 "인생살이하면서 잘한게 있다. 제일 잘한게 아내를 만난 것이고 일기를 쓴게 잘한것중 하나다. 매일매일 저를 되돌아본 계기가 됐다. 78년에 검정고시 공부 시작 직후부터 사법시험 합격해서 연수원 간 시점까지 10년정도 썼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용만은 "사모님한테 프러포즈 하면서 일기장을 줬다더라"라고 물었고, 이재명은 "결혼하고 싶어서 매일 쫒아다니다가 나흘만에 청혼했다. 그런데 답을 안하더라. 나름 도박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도박이었다. 내가 어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내면을 통채로 보여주고 처분을 맡기겠다 한거다. 당황하더라. '다이아도 아니고 이걸 왜 주지?' 했는데 그걸 보고 청혼 받아주기로 했다더라"라며 "읽고 답하는데 오래 걸렸다"고 초고속 결혼 스토리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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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문제를 풀던 이재명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문제가 등장하자 "여동생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가 새벽에 목숨을 잃었다. 소송까지 갔는데 산재 인정을 못 받았다"고 공감했다. 그는 "제가 보기에는 새벽에 출근해야되니까 그것 때문인것 같은데 산재인정을 못 받아서 소송까지 갔다가 패소하고 포기했다. 제가 그때 그 마음이 들었다. '판단하는 사람이 이렇게 한번 해봐라'고. 새벽에 근무시간 바뀌어서 5시에 출근하고 일하는데 누적되면 쓰러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법고시 준비를 준비한 이유가 "탈출하고 싶었다. 너무 환경이 나쁘니까.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해서 인정받는 거었다"고 털어놓은 그는 "대학을 장학금 받고 갔다. 제일 안정적으로 많이 주는 대학을 선택했다. 거기서 커트라인 높은게 법대였다. 갔더니 사법고시가 있는데 그걸 합격하면 고위 공무원이 될수 있다더라. 제가 장애가 있어서 취업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이것만이 갈길이라 생각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또 판사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객기일수 있다. 그때가 80년대였다. 젊은 마음에 군사정권에 임명받을수 없다, 군사정권에 어떻게 부역하냐고 임용 거부를 한거다"라고 말했다. 결국 26살에 노동자를 위한 법률사무소를 차렸다고. 이재명은 "제가 노동자 출신이기도 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로 알아서 제 입으로 비난을 많이했다. 대학 가보니 반대였다.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가난을 탈출했지만 탈출 못한 형제, 가족들의 상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 뭐하나' 싶더라. 거기다 짧게 판검사 하면 전관예우를 해준다는 권유 많이 들었다. 그래도 안한 이유는 한번 들어갔다가 나올 자신이 없었다. 못 나올 것 같다. 욕망과 의지가 충돌하는거지 않나. 욕망을 이겨낼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상황에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털어놨다. 이재명은 "세상이 좀 공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권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가 시립 의료원만들기 운동을 하다 두번째로 수배가 됐다. 시립의료원 조례안을 냈는데 날치기로 폐기하더라.화가 나서 거기서 엉엉 울었다. 그게 점거가 된거다. 특수 공무집행 방해라고 구속되게 생겨서 교회 지하실에 숨었다. 그때 같이 면회 온 운동가랑 '이래서 세상이 바뀌겠냐. 우리가 시장 돼서 직접 하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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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재명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후보 선출하고 출범식을 했다. 행사중 가족들 사진 몇개가 나왔는데 어머니 사진이 딱 나오니까 참았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더라. 작년에 돌아가셨다. 아픈게 많다. 세상 사람들한테 속을 다 공개했으니 어머니가 계속 고통스러웠다. 형님이 시정에 관여하려고 하니 차단했고, 어머니를 이용해서 저한테 접근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막으니 어머니에게 가해를 한거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7남매중 가장 효성스럽던 아들이 변해서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눈으로 보시고 해결도 안된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버지와는 과거 "사이가 안 좋았다. 갈등이 심했다"고 털어놓은 그는 "아버지는 대학을 중퇴하고, 할아버지 모시러 귀농해서도 남의 밭을 봐주셨다. 그러다 못살게 돼서 성남으로 와서도 청소부를 했다. 또 제가 공부하는것도 탐탁치 않아했다. 본인 인생을 반추해보니 많이 배워봤자 쓸데없더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저는 공부를 정말 하고싶었고 그것대문에 충돌이 발생해서 안좋았는데 시간 지나고 제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까 아버지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명은 "그때는 아프니까 원망 많았는데 굳건하게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내고 포기하지 않은건 아버지의 도움 같다. 아버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도와줬다. 검정고시할때 야간학원 다녔는데 학원비를 주시고, 고시공부할때도 사법고시 떨어져서 장학금을 못 받는바람에 공부하기 어려울때 몰래 숨겨놨던 돈을 보내주셔서 1년 공부 더 했다. 졸업 하면서 아버님이 지원해줘서 사법고시 공부를 다시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86년 3월에 위암이 재발해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합격할때까지만 살아달라고 했다. 그게 6~8개월 정돈데 실제로 살아주셨다. 제 생일날 제 출생시에 돌아가셨다. 의식도 거의 없던 상황이었는데, 마지막에 합격소식 알려드린걸 인지하신 것 같다. 눈물 흘리더니 가셨다"며 "화해를 제대로 못했다"고 후회했다.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린 이재명은 "말로 화해를 했어야 하는데 못했다"며 "지금의 저를 보신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 대학 갈때까지도 반발심에 학과도 마음대로 정했다. 도움 받은것도 아니고 장학금 받고 생활비를 대줬으니 아버지도 말 못했는데 어느순간 동네 어르신한테 자랑을 하고 계시더라. 그걸 우연히 들었다. 그때 '나를 미워하는게 아니구나. 뿌듯해 하시는구나'라는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이재명은 "이루고픈 꿈이 있냐"는 질문에 "기다리는 답이 대통령일수 있지만 아니다. 합리적이고 공정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재밌지 않나. 희망도 있고 과감히 도전해도 불안하지 않고 누군가 듬직하게 버텨주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죽을텐데 마지막 순간에 '재밌었어. 후회되지 않아'라고 말할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워낙 기대하지 않은 것들을 많이 성취해 왔다.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경우보다 빨리 여기까지 와서 지금상태로 충분히 만족한다. 가능하면 내가 꿈꾸는 세상을 좀 더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다. 시장이라는 호미로 농사를 지었는데 그거 믿고 사람들이 쟁기를 맡겨줘서 쟁기로 농사 짓다 이제는 트랙터를 구한다면 훨씬 농사를 잘지을수 있다. 못한다 해도 다른거 할거 많으니까 상당히 여유 있다"고 덧붙였다.

/delight_me@osen.co.kr

[사진]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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