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연재] 헤럴드경제 '골프상식 백과사전'

[골프상식 백과사전 295] PNC챔피언십과 윌리 파크 벨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윌리 파크 트로피라고 새겨진 pnc챔피언십 벨트.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이틀짜리 이벤트 대회인 PNC챔피언십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찰리 우즈 부자(父子)로 인해 올해 역대 최고의 흥행을 거뒀다.

자동차 사고 후 10개월 만에 대회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 그리고 그의 모습을 빼닮은 찰리의 잠재력 높은 경기력이 합쳐지면서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무리해가며 출전한 우즈에게는 진한 부성애와 함께 내년 시즌 출전에 대한 희망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우승은 역대 최저타인 기록인 36홀 27언더파를 몰아친 존 댈리 부자에게 돌아갔다. 장타력을 이어받은 댈리 부자는 챔피언 벨트를 차고 우승을 만끽했다. 여기서 잠깐, 트로피가 아니라 붉은 벨트였다는 점이 돋보였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윌리 파크 트로피’라고 새겨져 있다.

윌리 파크 시니어(1833-1903)는 1860년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제1회 디오픈 챔피언이다. 머셀버러에서 태어난 파크는 캐디로 시작해 서서히 랭킹을 올려 20세 때 골프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8명이 출전해 36홀을 겨룬 제1회 디오픈에서 파크는 당대 최고의 골퍼로 여겨지던 올드 톰 모리스를 2타 차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찼다. 지금이야 클라렛 저그를 트로피로 수여하지만 당시 우승자에게는 상금이 없었고 우승자가 1년 동안 벨트를 보유하도록 했다.

헤럴드경제

기록에 남은 윌리 파크 부자. 왼쪽 세번째가 주니어 파크, 다섯번째 피니시하는 이가 윌리 파크.



파크는 디오픈에서 총 네 번 우승(1860, 1863, 1866, 1875)했고 그의 아들 윌리 파크 주니어(1864-1925)는 1887년과 1889년에 두 번 우승했다. 또한 동생인 멍고 파크도 1874년 디오픈에서 1승을 했다.

1896년에 아들 파크 주니어는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골프에 관한 교습서적 <더 게임 오브 골프>를 출간했다. 그래서 후원사인 PNC는 파크 부자의 골프 열정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챔피언 벨트를 매년 우승자 부자에게 수여한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골프 역사를 보면 톰 모리스 부자 2대가 더 먼저 우승했고, 승수도 더 많다. 올드 톰 모리스는 1861년을 시작으로 1862, 1864, 1867년까지 통산 4승을 올렸다. 아들인 영 톰 모리스는 1868년 첫승에 이어 1870년까지 3연패를 했다. 당시 규칙에 따라 3연패를 하면서 챔피언 벨트를 처음이자 영원히 소유하기도 했다.

그의 우승으로 인해 1871년 디오픈은 트로피 벨트를 만들 돈이 모자라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1872년 디오픈부터는 포도주 주전자 모양인 클라렛 저그를 트로피로 쓰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영 톰 모리스는 디오픈에서 유일무이한 4연패를 달성한 선수였다.

그런데 PNC가 굳이 모리스가 아닌 파크 부자를 챔피언벨트의 모티브로 한 것은 평범한 삶을 산 파크 부자와 달리 모리스 부자의 여생이 너무나 불행했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타이거 우즈 부자.



사연은 1875년 제14회 디오픈이 열리기 일주일 전인 9월3일로 돌아간다.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 인근 노스베릭에서 4명의 골퍼가 승부를 벌였다. 톰 모리스 부자와 윌리와 멍고 파크 형제는 포섬으로 18홀 매치를 벌였다. 오랜 라이벌들의 진검승부여서 관중들도 몰렸다. 판돈도 갑자기 높아졌다.

피할 수 없는 승부였지만 사실 영 톰 모리스의 마음은 세인트 앤드루스의 집에 가 있었다. 몸이 약한 부인 마가렛이 출산이 임박했는데 심한 산고를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한 홀씩 업다운을 주고받으며 18홀 한 라운드가 끝났음에도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그렇게 34홀까지 계속됐다. 양 팀 모두 동타 승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경기 중에 전보 용지를 올드 톰 모리스에게 전했다. 며느리가 난산으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올드 톰은 전보 내용을 아들에게 감추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아들 영 모리스가 버디 퍼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톰 모리스 부자는 한 홀 차로 파크 형제를 이겼다.

경기를 마치고 한참 뒤에서야 전보를 받아든 영 톰 모리스는 경기가 늦어지면서 끊긴 기차편 대신 배편을 이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부자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난산으로 산모와 갓난아이 모두 사망한 것이었다.

헤럴드경제

올해 PNC챔피언십 우승자인 존 델리 부자



그날 이후 영 모리스는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식음을 전폐했다. 그렇게 석달 여가 흐른 크리스마스 아침에 결국 24살의 짧은 생을 뒤로 하고 잠들었다. 자신의 승부욕 때문에 전보를 일찍 전해주지 못했던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도 아들이 죽은 날부터는 여생에 어떤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고 조용히 은둔했다.

비극으로 파탄난 톰 모리스 부자 관계보다는 멍고와의 사이에 형제간에 우애도 깊었고, 아들과 부자간에도 가정적이었던 윌리 파크가 부자 2대가 출전하는 PNC챔피언십의 취지에 더 부합했을 것이다.

골프 대회에서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골프를 통한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가치의 발견이다. 올해 우즈 부자의 준우승 또한 골프팬들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리라 싶다. 비록 챔피언 벨트는 댈리 부자가 찼어도 말이다.
sports@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