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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이슈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

[기자의눈]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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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중국에서 열리니 별도 중국법이라도 있는 걸까'

뉴스1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리 웬룽이 은메달을 확정지은 뒤 김선태 감독에게 달려가고 있다. 2022.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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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바람만 스쳐도 반칙패를 당할 수 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맏형인 곽윤기(고양시청)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중국의 홈 텃세를 경계하며 입 밖으로 꺼낸 말이다.

처음엔 농담조로 받았다. '옷깃'도 아닌 고작 '바람'이라니. 우려가 다소 과한 게 아닐까 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의 촉은 정확했다.

올림픽 개최국의 선수들은 여러 '이점'을 안고 뛴다. 경기장 적응 등에 있어 아무래도 더 유리하고, 열성적인 홈 팬들의 응원도 있다. 바로 '홈 어드밴티지'다. 여느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널리 인정되는 부분이다.

우리도 그랬다. 4년 전 열린 평창 대회에서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 중 최다인 17개의 메달을 거머쥔 바 있다. 안방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일엔 선이란 게 있다. 지나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베이징 올림픽의 홈 어드밴티지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사실상 메달 몰아주기와 다를 바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여럿이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건 국민적 공분을 산 쇼트트랙 종목이다. 쇼트트랙 혼성계주는 반드시 터치에 의한 주자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5일 열린 준결승에서 터치 없는 주자 교대, 이른바 '와이파이·블루투스 터치'를 하고도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터치가 없으면 반칙이다. 룰이 그렇다. 그런데 심판진은 다른 나라의 방해 때문이라며 중국의 손을 들었다. 정작 훌륭한 레이스를 펼친 국가는 황당한 결과를 받았다. 팔이 안으로 굽다 못해 꺾였다. 스포츠는 공정이 생명이고 이를 지탱하는 건 바로 규칙이다. 이는 절대 홈 어드밴티지가 아니다.

한 번만 그랬다면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반복된다. 이쯤 되면 고의다. 꺼림칙한 심판 판정이 연이어 나오고, 그에 따른 수혜는 모두 중국에 돌아가고 있으니 곱게 보기 어렵다. 베이징을 향한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반응도 '아니올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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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이준서, 중국 우다징이 역주하고 있다. 이준서는 실격을 당해 탈락했다. 2022.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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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도 심판진의 석연찮은 판정이 이어졌다. 한국의 황대헌, 이준서는 이 종목 준결승에서 훌륭한 레이스를 펼치고도 반칙 판정으로 메달 획득 기회를 날렸다. 비디오 판독 결과 '인코스를 파고든 뛰어난 스케이트 기술'은 반칙으로 치부됐다.

중국 리원룽이 황대헌의 무릎을 손으로 밀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않은 판정에 선수는 물론 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말을 잃었다. 일부 선수들은 심리치료까지 받아야 할 정도였다. 더 이상 경기를 치르지 말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헝가리 리우 샤오린 산도르는 이 종목 결승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2개의 페널티를 받아 중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결승전 통과 직전 리우 샤오린과 몸싸움을 벌였던 런쯔웨이의 반칙은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태도다. 한국과 헝가리가 경기 후 판정에 대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항의한 게 모두 기각되자 되레 실력으로 얻어 낸 메달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상대 국가 선수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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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점프 혼성 단체전에서 복장 규정 위반으로 실격된 일본의 스키점프 스타 다카나시 사라.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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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목도 시끄럽다. 스키점프 혼성 단체전에선 심판의 오락가락 판정 탓에 무더기 실격 사태가 벌어졌다. 4개국 5명의 선수가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실격됐고, 메달 주인도 바뀌었다. 이들은 지금껏 별문제 없이 뛰었던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이다.

일본의 스키점프 스타 다카나시 사라도 피해를 봤다. 남녀 통틀어 스키점프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61승)을 보유한 다카나시는 이번 대회 금메달을 목표로 했다. 그는 첫 점프 이후 실격이 선언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경기 전 슈트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경기 후 심판진은 허벅지 부위의 슈트가 2㎝ 넘게 헐렁하다고 주장했다.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치수를 확인했다는 일부 선수들의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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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옆에 게양되고 있다. '함께하는 미래(Together for a Shared Future)'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축제에는 91개국 2900여 명이 참가하며 오는 20일까지 열린다. 2022.2.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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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고, 찝찝한 판정에 대해 외신도 격앙된 반응이다. '쇼트트랙은 리플레이 전까지 공식 결과를 알 수 없다'(월스트리트저널), '쇼트트랙에서 판정 의혹이 속출하고 있다'(도쿄스포츠), '스키점프에서 무더기 실격이 벌어진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AFP), '올림픽 대회가 공정하지 않다'(야후스포츠) 등 하나같이 쓴소리다.

'중국 체전'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의 공정 가치를 되찾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여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물론 판정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마련한 긴급 기자회견에 통역이 없었고,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함에 따라 원하는 효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야 낫다. 윤홍근 한국 선수단장은 기자회견서 "스포츠는 페어플레이가 담보돼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를 통해 인류가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격 판정을 받은 다카나시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림픽은 선수들이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장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개막 6일 차에 불과하나 지금까지 올림픽 무대를 보면 떠오르는 격언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다.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중국만의 룰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머리를 스친다. 가뜩이나 개막 전부터 중국 내 인권·정치 문제와 얽혀 위상이 쪼그라든 이번 대회가 역사에 어떤 올림픽으로 기억될지 관심이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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