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내가 받지 못했던 올림픽 메달의 기운, 다 준 것 같아"
"주변에선 기대 안 했을 것…이승훈의 경험과 노련함 믿었다"
지난달 태릉빙상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IHQ 이승훈(왼쪽)과 이규혁 감독 |
(베이징=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44) 감독과 장거리 간판 이승훈(34)이 힘을 합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두 레전드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신생팀 IHQ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2000년대 빙속 스타 이규혁과 2010년대 빙속 간판 이승훈이 손을 잡은 것은 큰 뉴스였지만, 많은 이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30대 중반인 이승훈이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기는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출전한 2021-2022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예상대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남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이승훈은 19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3위로 결승선을 끊으면서 동메달을 획득,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19일 연락이 닿은 이규혁 감독은 "주변에선 기대하지 않았지만, 난 (이)승훈이가 메달을 따리라 믿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이승훈은 그동안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졌지만, 전력 노출이 되지 않아 이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승훈의 경험도 한몫했다"며 "어제까지 (이)승훈이와 연락하며 전략과 전술을 고민했는데, 이승훈이 짜낸 작전이 충분히 먹힐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올림픽]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기록 세운 이승훈 |
이승훈은 후배 정재원(의정부시청)과 함께 (금메달리스트) 바르트 스빙스(벨기에)가 있는 그룹에 속해 다른 선수들을 쫓아가는 전략을 세웠고, 함께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이승훈의 노련한 전략과 경험이 두 선수에게 좋은 결과를 끌어냈다. 정재원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규혁 감독은 "이승훈은 경기 초반 치고 나가는 선수들을 쫓아가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특정 선수(스빙스)의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 막판 질주한 것이 메달 획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평했다.
이규혁 감독은 이승훈을 통해 무관의 아픔을 씻은 듯했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불모지였던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을 이끌며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냈다.
1997년 남자 1,000m, 2001년 남자 1,500m에서 세계기록을 세웠고, 세계선수권대회 4차례 우승, 월드컵 14차례 우승 등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이 감독은 1994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014 소치 대회까지 총 6번의 올림픽 무대를 밟으며 한국 스포츠 선수 사상 최다 올림픽 출전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다.
반면 이승훈은 이날 메달을 획득하면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동계올림픽 사상 한국 선수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또 동·하계 통틀어서는 사격 진종오(금4·은2), 양궁 김수녕(금4·은1·동1)과 함께 최다 메달 공동 1위에 올랐다.
[올림픽] 이번엔 함께 웃은 정재원-이승훈 |
이규혁 감독은 "이승훈을 보면서 '올림픽 메달 획득이 이렇게 쉽나'라는 생각도 했다"며 "내가 선수 시절 받지 못했던 올림픽 메달의 기운을 모두 (이)승훈이에게 준 것 같다"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만 36세였던 2014 소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아직 은퇴 생각이 없다. 그는 이날 경기를 마치고 "앞으로 1년 단위로 기량을 점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만 38세가 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도 출전할지 모른다.
이규혁 감독은 "(이)승훈이를 끝까지 도와주고 싶다"며 웃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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