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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타임] 독일의 암흑기를 짊어진 '리틀 카이저' 미하엘 발락 지금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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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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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강유 영상기자·장하준 기자] 축구 팬들에게 최고의 2인자로 불리는 선수.그럼에도 최고의 독일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독일의 암흑기를 홀로 짊어졌던 전차군단의 에이스.그리고 한국을 방문해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유명한 선수.오늘 지금 뭐하니의 주인공은 독일의 리틀 카이저 미하엘 발락입니다.

1995년 독일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발락은 1997년 카이저슬라우테른을 거쳐 1999년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는데요. 전성기 당시 발락은 특별한 단점이 없는 소위 육각형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발락이 축구계의 대표적인 2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요. 2001/02 시즌 당시 분데스리가, 포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발락. 특히 해당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지단의 역사적인 결승골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한일 월드컵 준우승과 첼시 소속이었던 2007/08시즌에는 4개 대회를 준우승하며 트로피 앞에서 많은 눈물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외에도 유로 2008 준우승 등 다양한 준우승 경력을 쌓았던 발락이지만 그럼에도 커리어 통산 1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요. 클럽 통산 604경기에서 151골을 넣었고 A매치 98경기에서 42골을 넣었던 발락의 커리어는 분명 뛰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락은 레버쿠젠 이후 2002년 바이에른 뮌헨, 2006년 첼시, 2010년 다시 레버쿠젠으로 돌아가며 2012년 은퇴를 선언합니다.

발락은 은퇴 후 광고모델과 이따금 스포츠 방송의 게스트 혹은 해설가로 출연했을 뿐, 많은 주목을 받는 활동을 하진 않았는데요.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경기였던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앞두고 2002 월드컵에서 자신이 한국을 상대로 득점한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은퇴 후 특별한 커리어가 없는 발락은 오히려 사생활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는데요. 2021년 친아들 에밀리오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큰 슬픔에 잠겼던 발락. 하지만 지난 6월 독일 언론 빌트는 ‘발락이 사망한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여사친과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발락의 근황을 알아본 지금 뭐하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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