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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카스페르 루드와 엘링 홀란, 노르웨이에 뜬 두 개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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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테니스 세계 2위 루드 방한

홀란과 함께 노르웨이 대표하는 수퍼스타

“사실 리버풀 팬이지만,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는 다 챙겨보고 있어요. 골을 워낙 많이 넣잖아요. 또 저희는 같은 스폰서의 후원을 받기도 해요. 그도 제 경기들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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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페르 루드가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 테니스 정상에 우뚝 선 그가 서울의 가장 높은 곳을 찾았다.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 대회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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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르웨이엔 ‘두 개의 태양’이 떴다. 축구에선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22)이 빛나는 중이다. 홀란은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폭격하고 있다. 지난 17일 리그 11호 골을 터뜨려 6골을 넣은 공동 2위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풀럼)와 해리 케인(토트넘)보다 5골이나 앞서 시즌 초반부터 득점 1위를 독주하고 있다. 홀란은 리오넬 메시(PSG)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뒤를 이을 축구 수퍼스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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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엘링 홀란의 모습.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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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홀란의 인기를 위협하는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테니스 불모지로 여겨졌던 노르웨이에 깜짝 등장한 세계 2위 카스페르 루드(24)다. 루드는 “아직 홀란과 만난 적은 없다”면서 “축구가 더 인기 많은 종목이니 당연히 그가 나보다 더 수퍼스타”라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 출전을 위해 입국한 루드를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나달 이을 차세대 ‘흙 전문가’

지난 201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루드는 올 시즌에 만개했다. 올해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에서 두 차례(프랑스오픈·US오픈)나 결승에 진출하며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른 첫 노르웨이 출신 선수가 됐다. 비록 프랑스오픈에선 라파엘 나달(스페인), US오픈에선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에게 패배해 준우승했지만 루드의 상승세는 뜨겁다. 올해 전까지 그가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2021년 호주오픈 16강이었다.

루드에겐 ‘테니스 피’가 흐른다. 그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루드도 테니스 선수였다. 아들이 등장하기 전까진 아버지가 ‘노르웨이 전설’이자 ‘개척자’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이형택 같은 존재였다. 1990년대에 활약하며 호주오픈 16강(1997)에도 진출했던 크리스티안은 세계 39위까지 오른 실력자였다. 아들이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진 노르웨이 출신 선수 중엔 가장 상위권 랭커였다. 카스페르는 “테니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39′라는 숫자를 넘어야 한다고 많이 듣곤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들은 2020년 2월에 세계 34위를 차지하며 아버지를 뛰어넘었다. 크리스티안은 현재 아들의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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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페르 루드(오른쪽)와 라파엘 나달이 같이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에서 훈련하는 모습. /ATP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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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피는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를 통해 더욱 진해졌다. 나달은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인 22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루드는 “2017년에 처음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했다”며 “이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2018년 9월에 본격적으로 들어가 스트로크를 다듬었다”고 말했다. 당시엔 아카데미가 있는 마요르카에서 거주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현재 루드는 고향인 오슬로에 산다.

나달 아카데미 출신이고, 나달을 자신의 테니스 우상으로 삼아서 그런지 루드는 그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탑스핀을 섞은 까다로운 샷으로 상대방의 실책을 유도한다. 그래서 공의 회전수가 늘어나는 클레이코트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점도 비슷하다. 나달은 클레이코트에서 치러지는 프랑스오픈에서만 무려 14회 우승했다. 루드가 쟁취한 ATP 투어 타이틀 9개 중 8개가 클레이코트에서 나왔다. 나달이 ‘흙신(King of Clay)’이라면, 루드는 ‘흙 전문가(Clay Court Specialist)’로 불렸다. 루드는 “‘차세대 흙신’이라는 애칭은 내겐 아직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클레이코트에서의 성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힘 줘 말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는 하드코트에서도 꾸준히 잘 해야 지금의 랭킹과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본격적으로 올어라운더(All-arounder, 모든 코트에서 잘하는 선수)로 거듭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레이버컵은 전율의 무대, ATP 투어 노르웨이 대회는 꿈

지난 25일 막을 내린 레이버컵 출전에 대해 루드는 “이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수많은 화려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다”며 “자라오면서 본 테니스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게 초현실적이었다”고 했다. 루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레이버컵에 출격했다.

레이버컵은 2017년에 창설된 실내 하드코트 대회다. 각각 6명으로 이뤄진 유럽팀과 월드팀(유럽 이외 대륙 선수들로 구성된 팀)의 단·복식 남자 테니스 대항전으로, 3일간 매일 단식 3경기, 복식 1경기를 치러 승부를 가린다. ‘유럽’과 ‘월드’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 선수들로 엄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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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페르 루드(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레이버컵에 출전해 동료들과 함께 웃고 있다. 라파엘 나달(앞줄 왼쪽), 로저 페더러(앞줄 오른쪽), 노바크 조코비치(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도 보인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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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 레이버컵은 로저 페더러(스위스)의 은퇴 무대로 예전보다 더 많은 팬의 관심이 쏠렸다. 루드는 페더러,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앤디 머리(영국) 등 남자 테니스의 전설적인 ‘빅4′와 함께 유럽팀의 일원으로 뛰었다.

루드는 대회 1일차 단식 경기에서 미국의 잭 속을 기선 제압하고 1점을 보탰다. 이에 대해 그는 “매우 감격스러운 무대였다. 여러 선수들과 농담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아직도 열정적으로 뛰는 ‘빅4′를 보면서 동기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팀 단장인 비에른 보리와 ‘빅4′와 함께 한 방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이들을 다 합치면 메이저 대회 타이틀이 대체 몇 개 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루드는 아직 꿈이 많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랜드슬램 경기를 보면서 자라왔다. 앞으로도 결승에 계속 오르는 게 목표”라며 “부지런히 훈련해 자주 그랜드슬램 결승에 오르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엔 노르웨이에서도 ATP 투어 대회가 열리면 좋겠다”며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높은 랭킹의 선수가 있다면 그 나라에서 대회가 열릴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어느덧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루드는 “내가 노르웨이의 대사라고 생각하고 코트 안팎에서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코리아오픈은 루드가 세계 2위로 맞이하는 첫 대회다. 루드는 29일 16강전에서 니콜라스 제리(칠레)와 맞붙는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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