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팩트체크] 박항서 감독의 '소신 발언'…쓸데없는 얘기였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우리 아들한테 혼났습니다. 왜 쓸데없는 얘기 하느냐고."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은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차기 사령탑 선임 과정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앞서 박 감독이 소신을 밝힌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축구협회의 내국인 지도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이고, 또 하나는 외국인 기술위원장 선임 문제입니다. 박 감독은 "한국을 떠난 지 오래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몰랐다"며 일부 발언을 주워 담았지만 한국과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해 평생을 힘써온 노장(老將)의 소신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내국인 감독 역량 충분…협회, 역할 제대로 했는지 돌아봐야"



처음 쓴소리를 꺼낸 건, 동남아시안컵을 마친 뒤. 베트남 사령탑으로서 지난 5년을 돌아보는 화상 인터뷰 자리였습니다. 박 감독은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먼저 "내국인 지도자의 역량도 대표팀을 이끌기에 부족하지 않다"며 사실상 차기 사령탑 후보군에서 배제된 후배 지도자들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을 비롯해,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 등 우리 지도자들은 동남아시아 무대에서 유럽 출신 명장에 못지않은 성과를 내며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 사령탑은 국내에서 외국인 감독에 준하는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2002년의 아픈 기억이 겹쳤을 겁니다. 수석코치로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 감독은 월드컵 직후 부산 아시안게임 사령탑에 오릅니다. 하지만 계약 기간과 연봉 등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무보수'로 태극전사를 지도했고, 결국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경질됐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박 감독은 "단순히 연봉을 비교하는 게 아니다"면서 "협회는 내국인 지도자가 맡았을 때도, 외국인 사령탑 시절과 똑같이 지원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역차별'을 지적했습니다. 협회는 "연봉은 세계 시장에서 형성된 가치를 반영한 것이고, 지원엔 차별이 없었다"고 반박할 수 있지만 이러한 역차별을 호소한 건 박 감독이 처음이 아닙니다. 어떤 지도자가 대표팀을 맡든 철학과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협회가 사령탑을 지지하고 지원해 달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오해라면 풀어야 할 책임, 또 우수한 지도자를 육성해야 할 책임 역시 협회에 있습니다.

"기술위원장을 외국인이 맡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 감독의 '소신 발언'이 화제가 된 뒤, 호응과 비판이 교차했습니다. 주된 비판은 베트남에서 외국인 사령탑으로서 성공한 박 감독이기에 '자국 지도자'만 감싸는 건 모순이라는 겁니다. "우리 아들에게 분위기 파악 못 한다고 혼났다"는 농담에 담긴 함의도 적지 않습니다. 박 감독 아들 또래의 2030, 이른바 MZ세대는 벤투 감독의 성공 요인을 '공정성', '합리성', '뚜렷한 철학'에서 찾습니다. 학연과 지연 등에서 자유로웠기에 공정하게 선수를 선발해, 합리적으로 팀을 운영하며 확고한 철학을 고집한 결과 카타르 월드컵 16강이 가능했다고 평가합니다. 감독이든, 감독 선발 권한이 있는 기술위원장(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든, 축구 선진국 출신 외국인인 게 강점이면 강점이지 문제가 될 게 무엇이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축구를 '업'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일부 축구인들에겐 외국인 기술위원장 선임은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입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뿐 아니라 한 나라의 축구 철학을 확립하고, 유소년 육성부터 A대표팀의 기술 발전 청사진을 그리는 기술위원장은 자국민이 맡는 게 관례입니다. 아무리 축구 기술과 지식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인프라, 제도, 문화를 모르면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강소국, 벨기에가 훌륭한 기술 정책에 힘입어 '황금세대'를 키워내고, FIFA랭킹 1위에 오르자 그 주역들이 일부 중동 국가와 중국 등에서 기술위원장(Technical Director)에 선임된 전례가 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박 감독도 "차기 사령탑 선임 과정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기술위원장을 자국민이 해야 한다는 건 소신이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독일 출신의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주도할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신임 위원장이 한국 지도자의 역량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나"라며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뽑기 위해 외국인 위원장을 선임한 게 아니냐"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뮐러 위원장도 이 지적에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유소년 정책 수석으로서 축구협회에서 근무를 시작한 뮐러 위원장은 이후 국내 지도자 교육에 몰두해 왔습니다. 5년 가까이 최상위 자격인 P급 지도자 교육과정을 총괄해 왔기에 국내 지도자와 접촉면이 좁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이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고, 소통 능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협회는 기술위원회를 유소년 정책 등을 총괄하는 기술발전위원회(위원장:이임생)와 성인 대표팀 발전을 주도하는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로 역할을 나눠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정찬 기자(jaycee@sbs.co.kr)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 02-2113-6000 / 카카오톡 @SBS제보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