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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프로게이머와 e스포츠

260억 中러브콜도 퇴짜…'롤의 메시' 페이커, 한국 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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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전설 ‘페이커’ 이상혁이 서울 T1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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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을 라이브로 보면서 메시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시는 분명 10~15년 가량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차가 거듭될수록 실력은 물론 리더로서 성장하면서 첫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을 보면서 배웠다.”

‘e스포츠계의 메시’로 불리는 프로게이머 페이커(Faker·본명 이상혁)는 리오넬 메시(38·아르헨티나) 이야기를 꺼냈다. 페이커는 2013년 SK텔레콤의 T1에 입단한 이후 PC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에서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야구에 베이브 루스가 있고, 축구에 리오넬 메시가 있다면 e스포츠에는 페이커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올해로 프로 10년째를 맞는 그를 최근 서울 강남구 T1 사옥에서 만났다.

닉네임 페이커처럼 상대를 속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면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3회, MSI(미드시즌 인비테이셔널) 2회, LCK(국내리그) 10회 우승을 거둔 페이커는 올해 27세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는 25세면 은퇴하는데, 페이커는 2023 LCK 스프링 정규시즌 1위(17승1패)를 이끌었다. 다음 달 9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LCK 결승은 물론 올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롤드컵’에서 정상에 도전한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23 언팩 행사는 페이커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영상을 내세웠다.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마우스는 완판됐다. ‘스타들의 스타’라 불리는데 티어가 ‘챌린저’인 축구선수 손흥민(토트넘)이 비 시즌에 페이커와 만난 적도 있다.

페이커는 FA(자유계약선수)가 될 때마다 중국에서 연봉 2000만 달러(약 260억원) 제안를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의 백지수표 제의도 고사했다. “계약상 연봉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의 연봉은 국내 프로 스포츠 선수를 통틀어 최고 수준인 연봉 50억~70억원으로 추정된다. 페이커는 겸손했지만 그 안에 당당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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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23 언팩 행사에서 페이커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영상을 내세웠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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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난해 12월에 T1과 3년 재계약 했다. 10년 넘게 국내 한 팀에만 머물게 됐는데

A : “e스포츠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인 한국의 LCK에서 계속 경쟁하고 싶었다. 팀원들의 실력도 뛰어나 함께 충분히 우승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팀에서 대우도 잘해줬고,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미도 분명 있었다.”

Q :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10년 동안 월드클래스를 유지하는 비결은.

A : “열정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오랫동안 한 가지 작업과 일에 몰두하다 보면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 꾸준히 게임을 좋아한다. 마음 속에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승부욕이 있다. 스스로 ‘실력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래서 힘든 시기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진단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이뤄낸 성취들은 분명히 실력 외에 외부적인 요소와 운도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우리 혁’이라고 불러주는 팬들의 응원도 힘이 된다.”

Q : 작년 롤드컵 결승전 패배 후 감정을 억제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려 동생들이 괜찮은지부터 살폈다. 맏형이자 주장으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A : “일단 팀 구성원으로서 승리가 중요하고, 그 승리를 위해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도 실력으로 본인의 자질을 평가 받는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경우엔 남을 이끌어주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스스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다른 팀원들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좀 더 동화되고 화합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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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T1 사옥에서 만난 페이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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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018년에 잠시 슬럼프에 빠져 비판도 받았다.

A : “당시 힘들었지만 스포츠심리학 박사님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 이겨냈다.”

Q : 요즘 훈련 시간은. 연습을 많이 한 탓인지 손가락이 휘었는데.

A : “정오부터 새벽 3~4시까지, 약 10시간 정도다. 손가락이 휘었지만 불편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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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는 경기 중에도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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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경기 중 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다.

A : “틈틈이 스트레칭과 요가·명상을 한다. 머리를 쉬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가끔 피아노도 친다 (최근 SNS에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는 영상을 올렸다).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기도 한다. 『행복의 기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Q : 10년 동안 논란이나 구설 없이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고 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분들이 엄청 많은데, 지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아하는 게임을 많이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 좋아하는 취미가 정작 일이 되면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많다. 개인 시간도 없고, 다른 어떤 일보다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 일 년 내내 남들과 경쟁하며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경쟁심도 있어야 한다.”

Q : 3년 전 예능에서 ‘국민 MC’ 유재석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거꾸로 페이커에게 게임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A : “최근 배운 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해야 하는 일’은 당장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있다. 퍼센트로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하고 싶은 일’처럼 하고 있다.”

Q :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 “프로게이머는 다른 직업과 다르게 객관적인 지표가 있다. 프로 데뷔를 위해선 랭크와 티어가 필요하다. 게임을 하는 자녀와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가 열정이 있다면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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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메시라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마우스는 완판됐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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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 10% 였는데, 서울 마포고 2학년 때 게임에 전념하기 위해 중퇴를 결심했다.

A :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고 지지해주셔서 (실력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게임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는지 아신다. 선생님도 (중퇴를) 반대하지 않았다 (페이커는 어릴적 15평 아파트에서 할머니,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자랐다)

Q : ESPN은 “봉준호(영화감독), 손흥민(축구선수), 방탄소년단(가수), 페이커는 대한민국 엘리트4”라고, 중국 시나닷컴은 전 피겨선수 김연아까지 더해 ‘한국의 5대 국보’라 평가했다.

A : “국보라 불리면 당연히 기분 좋고 영광스럽다. 저 같은 경우에 노력도 있겠지만, 운이나 시대적인 수요가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Q : 바둑 이세돌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이 화제였고, 2019년에 AI 알파스타가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와 대결에서 승리했다. 만약 AI와 맞대결 한다면.

A : “나중에는 언젠가 지는 날이 올 것이다. AI는 인간보다 앞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롤은 경우의 수가 많고 AI로 흉내 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아직 (구글이) AI와 롤의 대결에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질 수도 있겠지만, 진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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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가 시그니처 포즈인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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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e스포츠 선수 중 25세 이상 선수는 13.2%(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두뇌 회전이 가장 빠르고,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을 나타내는 곡선)’가 빠른 종목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을 느낄 때가 있나.

A : “항상 게임만 하니 신체 활동이 부족하고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기량 하락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이와 기량 하락은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근거도 딱히 찾기 어렵다. 많은 선수들이 30대에도 프로 생활을 했으면 한다.”

Q : 3년 재계약 기간을 다 채우면 첫 롤 30대 프로게이머가 된다. 언제쯤 은퇴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A : “프로선수들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예측은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10년이 더 주어진다면 지난 10년보다 더 발전하는 게 목표다.”

■ ▶‘Z세대 월드컵’ 롤드컵

● 공식 명칭: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줄여서 월즈)

● 대회: 2011년부터 라이엇 게임즈가 매년 연말 개최

● 우승: 12회 대회 중 한국팀 최다 7회(페이커의 T1이 3회)

● 시청자: 전세계 2억명, 결승전 515만명

● 총상금: 223만 달러(28억9000만원)

● 2023 대회: 한국 개최(시기 미정)

■ ▶페이커는...

● 이름: 이상혁

● 출생: 1996년 서울(27세)

● 소속: SK텔레콤 T1(2013~, 서울 마포고 중퇴)

●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포지션은 미드)

● 주요 우승: 월드 챔피언십 3회, MSI 2회, LCK 10회

● 별명: e스포츠 메시, 불사대마왕, 우리 혁

● 연봉: 70억원 이상(추정치)

■ 2억명이 보는 결승전…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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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열린 LoL 월드챔피언십 5차전 전광판에 등장한 페이커. [USA TODAY=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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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LoL·롤)’는 2009년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PC 온라인 게임이다. 5명씩 한 팀을 이뤄 163개 챔피언 중 하나씩 선택해 상대 팀 넥서스를 파괴하면 승리한다. 포지션은 탑, 정글, 미드, 바텀, 서포터가 있는데 ‘미드 라이너’ 페이커는 위기에 처한 팀원을 돕는 핵심 역할이다.

매해 연말에 개최되는 ‘월드 챔피언십’은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다. 전 세계 2억명 이상이 지켜본다. 지난해 결승은 515만명이 동시 시청했다. Z세대들은 축구 월드컵에 빗대 ‘롤드컵’이라 부르며 열광한다. 한국 리그인 LCK를 비롯해 LPL(중국), LCS(북미), LEC(유럽) 등 지역별 리그 22팀이 참가하며, 총상금은 29억원이다.

2011년 롤드컵 출범 후 한국은 12번 대회 중 가장 많은 7차례 우승했다. 그중 3번을 페이커의 T1이 이뤄냈다. 중국팀이 2018년과 19년, 21년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을 위협 중이다. 2023 롤드컵은 2013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된다. 페이커는 “롤드컵은 프로선수로서 가장 목표로 하는 대회다. 당연히 올해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특히 국내에서 열려 기대가 된다”고 했다.

한국인은 왜 e스포츠를 잘할까. 페이커는 “한 나라의 문화와 환경적인 요소가 스포츠에 끼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풋살을 해서 축구를 잘할 수밖에 없듯, 한국에는 인재양성 시스템이 잘 돼 있다. 바로 ‘PC방’이다. 난 5~6세 때 집에 컴퓨터가 생긴 영향이 컸다”고 했다. 2020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8조원이 넘는다. T1은 2020년부터 훈련센터를 운영 중이다.

롤은 올해 9월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다. 앞서 페이커는 시범종목이던 2018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은메달을 땄다. 당시 점심으로 식빵 3봉지만 제공되고 통신 장애로 경기가 중단되는 등 열악한 환경이었다. 페이커는 “사실 부족하게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웃음). 아시안게임 음식은 원래 이런가 어리둥절했다. 힘들기보다는 되게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올해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할 가능성이 큰 페이커는 “항상 어떤 대회든 필사적으로 나서지만 아시안게임 최초로 정식종목이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만큼 국가를 대표해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중요한 대회”라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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