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스 나가려면 5년 안에 인프라·유소녀 팀·법인화 등 정비해야
협회·연맹은 자체 라이선스 시작했지만…재정 여건이 걸림돌
FIFA에 '낮은 상업성' 지목…"女축구 사회적 의미 다지고 시장 탐색"
WK리그 데뷔골 넣는 지소연 |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우리나라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실업축구 WK리그는 적은 선수 수급·낮은 시장성·운영상 문제 등 각종 어려움과 결부되면서 종종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 등 유럽 쪽이 급격히 발전하며 WK리그의 '정체 상태'도 더 부각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2009년 출범 이후 여러 팀이 사라지는 고난을 겪은 리그는 8개 팀 체제를 지키는 것만으로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자극'이 생겼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아시아 각국과 호주 등 리그를 묶어 여자 챔피언스리그를 실시한다. 이는 WK리그에도 변화를 주문한다.
이번에 상설화한 챔피언스리그는 2028-2029시즌부터는 AFC 라이선스를 획득한 팀에만 출전 자격을 허용한다.
아시아 무대를 꿈꾸려면 5년 안에 구단 안팎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과제를 받은 것이다.
이는 그간 실업팀 체제와 결별을 요구한다. AFC, 국제축구연맹(FIFA), 나아가 스포츠중재재판소까지 적용되는 체계에 무리 없이 녹아들도록 법인 지위가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외 기반 시설, 인사·행정, 법적 지위, 재무 등 19개 세부 요건에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한다.
2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WK리그엔 15∼17세 유소녀 팀 운영 의무화, '충분한 인력'의 사무국 등 기준을 충족하는 팀은 없다. 각자 어려움이 있다.
2022시즌 WK리그 챔프전 MVP 이민아 |
최다 우승팀 인천 현대제철도 법인화·유소녀 팀 확보가 숙제다. 3년 연속 현대제철과 패권을 다툰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은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를 만한 규격의 구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서는 유소녀 팀 운영도 쉽지 않다. 세종스포츠토토가 자리 잡은 세종시에는 중·고등학교 여자축구부가 없다. 지역 학교를 활용하지 못하면 비용이 더 드는 창단을 택해야 해 고민이 깊어진다.
수원FC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구단 관계자는 "프로인 남자팀과 같은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준비해왔다"며 "유소녀 팀은 없지만 출범하려 준비 중이다. 나머지 조건은 대부분 맞출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자축구연맹은 일부 구단이라도 라이선스 획득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챔피언스리그가 장기적으로 리그와 한국 여자축구를 세계적으로 홍보할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 봐서다.
연맹 관계자는 "챔피언스리그는 우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리그를 홍보하는 데 이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라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발전이 있으려면 긍정적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힘들다고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WK리그를 대표할 자격을 받을 팀이라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충분히 우승할 전력이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연맹은 대한축구협회와 협업 끝에 'WK리그 클럽 라이선스'를 마련해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유소녀 팀의 공식 대회 출전을 '권장'하는 등 개별 팀 여건을 고려해 AFC 기준을 대폭 완화한 자체 규범으로, 미비한 부분은 차차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2022년 퀸컵 우승팀 수원 삼성 |
발전 의지가 드러난 부분이지만, 이는 리그의 질적 향상을 꾀할 구체적 기준이 이제야 정립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라이선스는 AFC와 달리 강제력이 없어 재정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각 구단이 시스템을 보완할 유인이 될지 미지수다.
이같이 리그 발전 시나리오를 전개하다 보면 항상 재정 문제라는 막다른 길로 몰린다.
FIFA는 23일 공개한 전 세계 여자축구 리그 조사 보고서에서 WK리그를 문서로 정리된 '상업화 전략'이 부재한 곳으로 분류했다.
34개 리그 중 이런 전략이 없는 데다 TV 중계권 판매 수익도 내지 못하는 곳은 WK리그를 포함해 칠레, 탄자니아 등 6곳이다.
여기서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리그는 포르투갈·잠비아 등 4곳인데, 여기에도 WK리그가 들어간다.
FIFA에 따르면 전 세계 각 구단이 보유한 후원사는 평균 8개다. 여행·교육·헬스케어·금융·유통 등 분야는 다양하다.
한편으로는 개별 팀당 후원 기업이 1개가 채 되지 않은 나라가 4곳인데, 모로코·나이지리아·탄자니아 그리고 한국이다.
FIFA는 미래 여자축구 성장이 결국 상업화 전략 유무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여자축구·여성 스포츠에 담긴 '가치'를 소개하고 시장을 설득하는 게 핵심 전략이라 본 것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도 WK리그를 비롯한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시장성'을 끌어 올리려면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게 제일이라 본다.
호주 여자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 |
경기력·국제 대회 성적만 들고 시장을 마주하는 기존 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생활체육 분야에서 축구를 즐기는 여성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축구를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이 각 분야 지도자급이 되는 15년 후에는 여자축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공산이 크다"면서도 "이 기간을 줄이면서 이런 미래를 대비차 '연결 국면'을 마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과도기적 국면을 거쳐 성공적으로 여자축구 발전을 이룬 예시로는 호주가 언급된다.
호주는 럭비가 인기 스포츠라 축구가 경시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 덕에 '여성의 축구'에 관심·지원을 쏟아야 한다는 여론이 오히려 힘을 받았고, 정부·시장도 조금씩 움직였다.
양성평등 등 규범을 언급한 이 교수는 "지금 여자축구는 강한 상징성을 품고 있다. 긍정적 메시지를 전파할 여지가 크다"며 "단순히 경기 수준이 주는 매력보다 큰 의미를 찾을 기업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를 잘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면 여자축구는 '열린 시장'일 수도 있다. 기업도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후원할 때 미디어에 언급되는 걸 안다"며 "여자축구의 의미를 다질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 이런 '시장 시뮬레이션'을 전제로 운영해야만 리그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 |
pual0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