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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EN:터뷰]"모텔 알바로 '화란' 낳아"…영화광, 화려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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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화란' 김창훈 감독 <상> '화란'의 시작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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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김창훈 감독.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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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화란'은 새롭고 본능적인 날 것의 매력을 선사한다." _뉴스 인 프랑스

"'화란'은 격렬한 파토스(충동, 격정적 정서)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_이동진 영화평론가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이 나타났다. '날 것의 매력'이란 표현이 들어맞는 데뷔작 '화란'으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돼 전 세계 영화인이 꿈꾸는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김창훈 감독은 분명 '화란'은 물론 그 이후가 더욱더 기대되는 '주목'해야 할 감독이 됐다.

어린 시절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그려보던 소년은 어머니가 사다 준 한글 자막도 없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키워갔다. 수업 시간에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비디오 가게로 달려갔다.

공룡을 좋아했던 소년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간 극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본 후 '영화'에 매료됐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이야기가 스크린에 구현된 걸 목격한 소년은 그렇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 그 꿈은 현실이 됐고, 모두가 꿈꾸는 칸에 입성하며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등 한국 감독부터 조엘·에단 코엔 형제, 마틴 스콜세지, 장-피에르·뤽 다르덴 형제의 영화 등 수많은 감독의 작품이 그의 영화적 삶에 스며들어 지금의 '김창훈 감독'을 이뤘다. 그리고 그의 삶의 경험들이 녹아들어 '화란'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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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칸영화제에 참석한 '화란' 송중기, 김창훈 감독, 김형서(비비), 홍사빈.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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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화란'으로 시각화되기까지


▷ '화란'이란 영화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폭력과 체념이 일상인 이들을 그린 이 무거운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고 시나리오를 써나갔나?

당시 굉장히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 환경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들, 환경에 떠밀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와 그게 내게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그 과정 자체를 담아내고 싶었다. 또, 살면서 목격하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온 크고 작은 물리적·정신적 폭력이 한 사람의 성장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 감독 데뷔 전 모텔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기억이 안 날 만큼 많은 일을 했고, 여러 과정을 통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면서 이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모텔에서 일하게 됐다. 낮에 일하고 새벽에 글 쓰는 패턴으로 두 가지 일을 병행했고, 그때 정말 영화도 많이 봤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감사한 경험이다. 덕분에 '화란'이란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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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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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란'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단순한 장르 영화로 읽히지 않길 바랐다. 장르적인 요소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진짜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한 영화 안에 동시에 담고 싶었고, 연규와 치건을 거울 같은 구도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 그런 게 흐려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면 이러한 지점을 연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직관에 의존해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정말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차이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전까지는 감독이란 자기 머릿속 비전을 정확히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그 비전을 이루는 매개는 소통이란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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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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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완성된 영화의 톤앤매너는 어떻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인가? 그리고 이를 구현해 내고자 각별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해 달라.

일단 극 중 가상의 도시인 명안시가 고인 물, 썩은 물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도 그곳에 갇혀 있는 걸로 느껴지길 바랐다. 그런데 인물이 느끼는 답답함과 폐쇄적인 감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 감각 자체를 어떤 식으로 시각화해서 느끼게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송중기, 김종수 등 선배님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우들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많이 캐스팅했다. 그랬을 때 이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또 송중기 등 배우들에게서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들과 반대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말했듯이 명안시라는 공간은 각 인물만큼이나 그곳에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또 인물들의 삶을 대변할 수 있게끔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연규의 집은 미술감독님에게 기형적인 형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층고가 굉장히 낮고 폭은 좁은데 길고, 문이 겹겹이 있어서 레이어가 많은 방식을 택했을 때 인물들이 느끼는 폐쇄적인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겠다고 봤다. 치건이 지내는 공간 중 2층 사무실은 버려진 다방을 개조해서 사용하는 콘셉트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을 때 고여 있음이 훨씬 더 잘 느껴지고,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다. 잘 보시면 그런 흔적들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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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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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빈, 김형서, 송중기를 포착하다


▷ 영화는 많은 말 대신 인물들의 행동, 표정, 몸짓 등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전달하고자 한다. 비언어적인 방식을 관객들에게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출이나 촬영 등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단 인물의 움직임은 동적인 반면 동적인 순간에 가진 정서는 변화가 다이내믹하고 세세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걸 포착하는 방식은, 촬영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정적이고 절제돼 있어야 함께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시나리오 때부터 대사보다 지문에 치중했다. 이는 모두 배우들이 해석하고 표현하는 거다. 그렇기에 배우가 열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열어뒀다. 그리고 그 여러 순간 중 가장 적합한 표현을 선택하기 위해 잘 관찰하고 있다가 제대로 포착하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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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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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규와 치건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중심에 뒀던 이미지나 특성은 무엇이었나?

치건은 삶에 아무런 희망도 욕망도 없이 그저 조직의 도구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모든 순간이 한숨처럼 느껴지고 공허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연규 같은 경우는 그렇게 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는 인물이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 살고 있는 인물이길 바랐다. 오토바이를 설정한 것도 조금만 잘못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운송수단이다. 그런 위태로움이 연규와 닮았다고 봤다.

▷ 연규나 치건만큼 중요하고, 연규와 치건의 결말을 가르는 캐릭터가 하얀이다. 하얀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랐는지 궁금하다.

난 하얀이가 명안시에서 가장 내면이 단단하고 강인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연규에게 조건 없는 사랑, 숭고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연규와 치건은 거울처럼 동일한 인물이지만 다른 결과를 맞이한 건 하얀과 같은 온전한 보호자의 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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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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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이야기했듯이 대사보다 지문이 많은 시나리오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이를 연기한 배우들이다. 신예 홍사빈은 올해의 발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홍사빈 배우는 전체를 보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어떤 한 장면을 표현해야 한다고 하면, 장면 자체에만 집중해서 그 장면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들여다봤을 때 여기서 필요한 게 어느 정도일까, 이런 걸 알고 있는 배우다. 그리고 사빈 배우는 기존 우리가 봐 온 배우와 다른 느낌으로, 어딘가 모르게 묘하고 낯선 분위기를 풍긴다. 연기할 때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게 훨씬 많았다.

▷ 첫 연기, 첫 영화에 도전한 가수 겸 배우 김형서(비비)는 여러 의미에서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느껴졌다. 날것의 연기를 선보이는데, 빨리 다음 연기가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형서 배우는 계산 없이 몸이 가는 대로 직관을 따라가는 배우다. 그럼에도 거친 부분이 전혀 없이 너무 훌륭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실 내가 형서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해놓고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해 주저할 때가 있었다. 그때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님이 '김형서는 뭘 해도 할 친구니 믿어봐'라고 하셨다. 정말 형서 배우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본능적으로 표현하더라. 대표님 이야기를 듣고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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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란'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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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 감독 그리고 장편 영화로는 신인인 두 배우가 주축인 현장에서 베테랑 송중기란 어떤 존재였나?

나도 그렇고 사빈이도 신인, 형서도 신인이었다. 내가 첫 연출이고 현장 경험도 없다 보니 헤매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 선배님이 뒤에 조용히 계시다가 여러 가지로 제안도 해주시고, 아이디어도 내시고, 경험이 많으니 노하우도 알려주셨다. 또 후배들도 잘 이끌어 주셨다.

▷ 송중기로부터 끌어내고 싶었던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는지, 왜 그런 얼굴을 끌어내고 싶었던 건지 궁금하다.

선배님의 다른 작품을 보면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 한 이미지가 많이 있는 거 같은데, 난 선배님을 보면서 어떤 순간순간에 송곳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서늘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선배님에게 저런 모습이 있는데 왜 아무도 그 모습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선배님과 작업할 수 있다면 그런 모습을 극대화한 캐릭터를 갖고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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