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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방시혁 걸그룹 아일릿, 괄호의 미학…탈K팝·K팝 사이 '새로운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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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음반 '슈퍼 리얼 미'…"로틴·프리틴 겨냥"

세련된 음악·스타일링으로 '귀여운 걸그룹' 이미지 보여줘

뉴시스

[서울=뉴시스] 그룹 아일릿. (사진=빌리프랩 제공) 2024.03.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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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K팝 아이돌 걸그룹의 개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내용보다는 형식을 톺아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하이브(HYBE)의 새 걸그룹 '아일릿(ILLIT)'은 신흥 '걸그룹 명가'가 된 이곳 선배 걸그룹들인 '르세라핌' '뉴진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게다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하이브의 첫 걸그룹인 르세라핌의 프로듀싱도 맡아왔다. 스스로 차별화를 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여기에 하이브 레이블인 어도어의 걸그룹 뉴진스는 K팝 신의 패러다임을 바꾼 팀이다. 다시 말해 뉴진스는 K팝 걸그룹의 새로운 기준이 된 팀이고, 어떤 그룹이든 이 팀과 비교가 되는 건 불가항력이다.

아일릿은 막 데뷔했지만, K팝 신에서 꽤 발랄한 이벤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단 축약하면, 아일릿은 형식적으로 '괄호의 미학'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팀명은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의지(I WILL)와 특별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대명사(IT)를 결합했다. 두 단어 사이에 들어갈 동사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 될지 기대되는' 잠재력이 큰 그룹이라는 방향성이 녹아 있다고 하이브와 아일릿의 매니지먼트사 빌리프랩은 설명한다. 그 두 단어 사이는 내용이 비어 있는 일종의 괄호다. 그룹 자체가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이라는 질문이 되는 셈이다. 근데 그 안엔 문법 구조상 동사 원형이 와야 한다. 예컨대 나는 그것을 사랑할 거야(I will love it), 내가 옮길 거야(i will move it)가 된다. 그렇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원형, 즉 오리지널리티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읽힌다.

이번 아일릿의 챕터 1는 당연히 '시작하겠습니다(I wii start it)'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전속력을 동반한다. 아일릿 데뷔 음반인 미니 1집 '슈퍼 리얼 미(SUPER REAL ME)'의 타이틀곡으로, 방시혁 의장("hitman" bang)·슬로우 래빗·마틴이 프로듀싱한 '마그네틱(Magnetic)'이 함축한다. 좋아하는 상대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자석에 비유했다. 그래서 이끌림 정도가 아닌 '슈퍼 이끌림'이다.

이런 정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마코토'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이 만화는 학원물과 소프트 SF를 결합한 성장 이야기인데, 엉뚱함과 과몰입을 팀의 키워드로 삼은 아일릿과 접점이 있다. 아일릿 역시 당장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상상의 대상이 되는 가능성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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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아일릿.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4.03.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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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현실·판타지 접점의 세계를 빚어왔는데, 그건 태생부터 가상의 세계와 익숙한 접점을 만드는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의 전형인 아일릿의 세계와도 맞물린다. 지난해 자신들의 결성 계기가 된 서바이벌 오디션 '알 유 넥스트'의 서사부터 틱톡 등 10대들이 주로 사용하는 숏폼 등에 공유하며 '슈퍼 리얼 미'를 구축했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면서 데뷔 전부터 팬들 사이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진 셈이다. 아일릿을 설명할 때 '몽환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 역시 현실을 기반을 삼되 아이돌로서 책무이기도 한 판타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괄호의 미학은 팬들이 함께 채워갈 무엇이 되며 함께 성장할 가능성의 발판도 마련한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아일릿은 일상성을 추구하는 듯 하다가도, 보다 시끌벅적하고 엉뚱한, 자신들만의 역동성을 구축하고 있는 느낌"이라면서 "흔히 보는 이미지 같다가도, 어느 순간 예상을 확 비껴가 버리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들이 그룹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전해졌다"고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여러 학원물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나, 그 안의 캐릭터들이 반영돼 있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껴졌다. 브랜드 필름에서 특히 그런 면이 강하게 감지됐다"고 읽었다.

김도헌 음악 평론가는 "K팝을 오래 좋아한 팬이라면 이끌릴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현실 팬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요소(숏 폼 트렌드, 플러그앤비 장르, 세기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한중일대 비주얼)를 신비롭고 몽환적이면서도 재치 발랄한 콘셉트로 녹였다"면서 "그로 인해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호함이 있지만, 그 모호함이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평했다. 다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멤버들의 댄스 퍼포먼스와 가창, 그리고 그룹을 상징하는 더 뾰족한 대표 언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희윤 음악 평론가는 "뉴진스가 Y2K 리바이벌을 통해 10대는 물론 20, 30대 이상까지 아울러 겨냥한 인상이 강했다면 아일릿은 이미지, 영상, 음악 등의 면에서 정확히 로틴(low-teen)과 프리틴(pre-teen)을 정면 겨냥했다는 느낌이 세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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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아일릿.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4.03.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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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일릿은 데뷔 원천 콘텐츠 역시 2D 애니메이션 등 잘파 세대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풀어냈다. 콘텐츠를 세로로 제작해 숏폼용 단독 콘텐츠로 선보인 것 등이 예다. 또 브랜드 필름에 나오는 교복 입은 멤버들을 애니메이션화하거나 유니콘, 퍼즐, 구슬 등의 오브제도 여러 콘텐츠에서 다양하게 활용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최근 유행하는 알파 세대의 메커니즘을 매뉴얼로 정리해 K팝에 하나씩 적용시켜 나가는 프로세스는 하이브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이브라서 가능한 제작 능력은 좋은 편집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런 가운데 현재 K팝 시장에서 멸종하다시피한 '귀여운 걸그룹' 이미지를 향해 아일릿은 잘 파고들었다. 한국 국적의 윤아(20)·민주(20)·원희(17), 일본 국적의 모카(20)·이로하(16) 등 평균 나이 18.6세인 다섯 멤버로 구성된 아일릿은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세련된 트레이닝과 스타일링으로, 예전 귀여움을 콘셉트로 한 걸그룹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었던 맹목적인 순진무구함을 현명하게 피한다. 선배 걸그룹의 아우라에 갇혀 그를 변주하면서 파생된 인기를 노리는 게 아니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음악도 같은 결이다. 최근 이지리스닝 붐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약간 비켜나 경쾌하고 밝은 톤의 무대에서 춤추기 좋은 귀여운 곡이다. 한마디로 축약하면 '틱톡 감성'이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사운드로 출발해 후렴구에 찹핑 보컬(짧게 툭툭 끊어지는 부분)이 삽입한 점이 특징이다.

임희윤 평론가는 "가창은 헐렁하고 비트는 타이트한, 그러니까 트랙 자체는 일렉트로닉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레프트필드 하우스 성향이 강하면서도 보컬만은 특별한 기교나 가창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음의 고저 낙차가 적은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라는 면에서 뉴진스의 음악과 대동소이하다"고 들었다. 다만 "'마그네틱'을 보면 뉴진스의 대표곡들보다 템포는 조금 더 빠르고, 킥이 '저지 클럽' 타입의 엇박이 아니라 정박으로 계속해 비트를 찍어준다는 느낌에서 약간 다르다"면서 "후렴구 중간에 박힌 포즈(pause)나 '슈퍼 이끌림'이란 구절은 귀를 잡아끄는 신선함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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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그룹 아일릿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첫 번째 미니 앨범 '슈퍼 리얼 미(SUPER REAL ME)'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3.25. jin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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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 평론가도 "곡 자체는 이지 리스닝을 지향하지만, 안무와 후렴 등은 명확히 숏폼을 노림과 동시에 장르적으로는 세계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플럭앤비를 주요 재료로 삼았다. 그 안에서 생성되는, 휘몰아치는 대중성과 마니악함의 소용돌이가 자못 흥미롭게 다가온다"고 들었다.

아일릿은 데뷔하자마자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마그네틱'은 발매 당일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데일리 글로벌 톱송 차트에 160위(3월25일자)로 진입하더니, 다음날(3월26일자) 50위로 수직 상승했다.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에서 K팝 아티스트의 데뷔곡이 빠르게 톱50에 진입하는 건 드문 일이다. 주류 팝 시장인 미국에서도 바로 반응이 나온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26일 자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미국에서 92위를 차지했다. 특히 같은 날 미국 내 '마그네틱' 데일리 스트리밍은 47만1737회로 이날 르세라핌의 영어싱글 '퍼펙트 나이트'(38만회)보다 많았다. 국내에서도 '마그네틱'은 멜론 톱100(29일 자 0시 기준 52위)에 진입했다. 또 막 데뷔한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중국 QQ뮤직 6개 차트 모두 '톱10'에 랭크됐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같은 하이브 걸그룹으로 보자면 뉴진스는 탈K팝을 통해 새로운 노선을 구축한 사례고, 르세라핌은 그동안 구축된 K팝 시스템으로서의 노하우가 극한까지 발휘된 결과물이었다"면서 "아일릿은 딱 그 중간에 있는 느낌이다. 탈K팝과 K팝의 중간점에서 새로운 균형감을 발견해 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봤다.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 특히 음악이 완성도 있게 잘 나온 덕분에 앞으로 아일릿이라는 지신재산권(IP)이 어떻게 확장돼 갈 지에 대한 기대감이 많은 이들에게서 커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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