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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고액 연봉 구기 종목 ‘우물 안 개구리’ 안주… 실력 하향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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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는 왜 추락했나

남자 축구마저 올림픽행 열차를 놓치면서 한국 올림픽 선수단 규모는 당초 예상했던 170명 선에서 150명대까지 더 줄 것으로 보인다. 1984년 LA 올림픽 210명 이후 올림픽마다 유지했던 마지노선 200명이 무너졌다.

메달 전망도 비관적이다. 양궁·펜싱·태권도 등에서 5~6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 477명 출전 금메달 12개 종합 순위 4위, 2012년 런던 올림픽 248명 금 13개 5위 등 화려한 시절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주요 구기 종목(축구·농구·배구·하키·핸드볼·럭비 등) 중 파리 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건 여자 핸드볼뿐. 이 역시 1976년 몬트리올(여자 배구) 이후 가장 적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메달은커녕 출전권 확보도 어렵다

한국은 1988 서울 대회부터 지난 도쿄까지 줄곧 4~7개 단체 구기 종목에 출전했다. 남녀 핸드볼은 올림픽 통산 금 2개, 은 4개, 동 1개(역대 종합 5위)로 활약했다. 남녀 하키(은 3개), 여자 농구(은 1개), 여자 배구(동 1개), 남자 축구(동 1개)도 올림픽에 단골로 출전했다. 그런데 2016 리우 대회엔 단체 구기 4종목, 지난 도쿄 대회 땐 6종목이 출전하고도 연거푸 노 메달에 그쳤다. 이젠 메달은커녕 올림픽에 나가는 것마저 힘겨워지고 말았다.

다른 종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효자 종목이었던 유도와 레슬링에선 2012 런던 대회 이후 ‘금맥’이 끊겼고 메달 자체도 버겁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 출전 종목 중 최다인 46개(금 11개) 메달을 딴 유도는 파리에서 남자 7체급 중 3체급, 여자부 2체급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전 체급 출전이 당연시되던 과거와 다르다. 레슬링(역대 메달 36개)은 도쿄 노메달 충격에 이어 파리는 출전권 확보에도 애를 먹고 있다. 김기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앞으로도 경기력이 계속 떨어진다면 어떤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수 부족·국내용 전락... 아시아 2류 위기

이런 침체는 예견된 일이었다. 저출산 여파로 선수 자원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지방 중·고교 단체 구기 종목은 선수 모집 자체가 어려운 실정. 선수들은 학습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압박에 훈련 시간이 줄었다. 프로 리그가 활성화된 일부 종목에선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농구·배구는 아시아권에서도 이미 강호가 아니다. 반면 국내 리그 선수들 연봉은 최고 10억원 가까이 뛰었다. 이들은 국가대표 차출을 반기지 않는다. 이미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대표팀 성적이 나쁘면 질타가 따르는 데다,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전처럼 선수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강도 높은 훈련을 집중하는 것도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진천(선수촌)은 선수가 외출하든 아파서 쉰다 하든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다. 태릉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긍심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국제 대회는 병역 특례 수단일 뿐 국가를 대표해서 나간다는 사명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도 많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로 병역 특례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이번 U-23 아시안컵에 대거 불참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선찬종 대한유도회 전무는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 선수들은 운동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헝그리 정신’으로 땀 흘린다”면서 “우리 체육계에선 점점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훈련 방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통 구조를 연구하는 대신 해병대 캠프 같은 정신력 강화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 지도자들도 문제다.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여러 종목에 구시대적 관습이 배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새로운 육성 방식을 발굴해야 저변이 엷어진 종목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갈림길에 서 있다. 기존 선수 육성 방식을 고수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좀 더 할지, 생활 체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리면서 지변을 넓혀 선수를 찾아낼지 선택의 순간이 오고 있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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