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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코치로 변신한 ‘영원한 리베로’ 여오현...“지도자 생활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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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호흡하고, 같이 소통하는 지도자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IBK기업은행 코치로 인생 2장을 연 여오현 코치. /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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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한국 시각) 프로배구 여자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열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NAS 스포츠 컴플렉스. ‘신참’ 여오현(46) IBK기업은행 코치의 목소리는 여전히 걸걸했다. 아직 ‘코치’보단 ‘선수’가 더 어울릴 법한 탄탄한 체형도 그대로였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만 같이 했지만, 옆에서 개수 크게 세주면서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쳤다. 나 혼자 운동하는 게 아니다. 선수들 모두를 북돋우려면 선수 때보다 소리를 더 질러야 한다”고 웃었다.

여 코치는 아직 팀에 합류한 지 보름도 안 된 ‘새내기 코치’다. 지난달 29일 아시아쿼터 드래프트 때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느라 팀 선수들과 훈련한 시간은 사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여자부 선수들 영상을 많이 봤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여 코치는 ‘기록의 사나이’ ‘영원한 리베로’라는 수식어로 유명하다. 2005년 V리그 남자부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삼성화재를 거쳐 현대캐피탈에서 총 20시즌을 꽉 채워 소화했다. 역대 최다인 625경기를 뛰며 리시브 정확 1위(8005개), 디그 성공 1위(5219개) 등에 올랐다. 각 부문 2위 기록과는 1000개 이상 차이난다. 2023-2024시즌에도 22경기에 출전해 건재를 과시했다. 45세에 은퇴하겠다는 ‘45세 프로젝트’도 무난히 달성한 그는 “45세나 600경기 같은 타이틀보다는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출전을 했다는 것에 더 자부심을 느끼고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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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코치로 인생 2장을 연 여오현 코치(오른쪽)와 김호철 감독. /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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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코치의 성실함, 끈기, 투지를 눈여겨본 지도자가 있었다. 바로 김호철(69) IBK기업은행 감독. 김 감독과 여 코치는 과거 현대캐피탈에서 사제(師弟)의 연을 맺은 바 있다. 김 감독은 은퇴를 앞두고 있던 여오현을 불러 코치직을 제안했다. 여 코치는 당시를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솔직히 두려움이 더 컸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감독님한테 누를 끼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감독님께서 ‘잘할 수 있다’고 힘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여 코치는 40대까지 선수를 할 만큼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성실하다.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선수들이 수비와 리시브 면에서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그런 점을 기대하고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현역 시절 여 코치는 숱한 우승을 맛봤다. 그는 유광우(39·대한항공·11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우승(9회)을 차지했다. 열 번째 우승반지도 내심 노렸던 여 코치는 “솔직히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선수로서는 진짜 채울 만큼 채우고 싶었는데 한 조각의 퍼즐을 남겨 놓고 은퇴해 아쉽다”고 말했다. 언젠가 지도자로 이 부분을 채우길 꿈꾼다.

여 코치의 아들인 여광우(송산고 3)는 아버지와 똑같은 포지션인 리베로로 ‘가업’을 잇고 있다. 부전자전인 셈이다. 여 코치가 좀 더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아들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드래프트에 나선다면 부자(父子)가 함께 뛰는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여 코치는 “아들이 (은퇴하겠다고 하니) ‘레알(진짜)? 아빠 왜?’라고 말했다. 아빠도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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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코치로 인생 2장을 연 여오현 코치. /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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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지만, 여 코치에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했던 현대캐피탈의 연고지인 천안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당장은 못 하지만 멀리 떠난 게 아니다. 계속 배구계에 있으니까 언제든 팬 여러분들한테 정식으로 인사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동안 많이 응원해주시고 박수 쳐줘서 감사했다. 지도자로서도 성장할 수 있게 많이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여 코치는 이젠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이 분야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각오다. “(여자부는 처음이지만) 배구는 어차피 똑같이 선수가 하는 것이라고 김호철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선수 시절 저는 파이팅이 있고, 열성적인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젠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되도록 돕겠습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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