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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美 유학에 꿈 접었던 아빠, 아이들 앞에서 마침내 '우승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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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16일 '제26회 DSD 삼호코리아컵 국제오픈볼링대회'에서 우승한 윤명한(왼쪽 두 번째)이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기념 촬영하고 있다. 한국프로볼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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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8년 만에 이뤄낸 감격의 우승이었다. 미국 유학으로 볼링 선수의 꿈을 포기할 뻔했지만 귀국해 다시 일어섰고, 마침내 딸과 아들,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국내 최고 권위 대회 정상에 올랐다.

윤명한(43·팀 MK글로리아)은 16일 경기도 동탄시 빅볼 라운지에서 열린 '제26회 DSD 삼호코리아컵 국제오픈볼링대회' 결승에서 베테랑 강종필(53·팀 트랙)을 연장 접전 끝에 눌렀다. 윤명한은 10프레임까지 204 대 204 동점을 이룬 뒤 서든 데스(승부치기)에서 스트라이크를 터뜨려 9핀에 그친 강종필을 제쳤다.

한국프로볼링(KPBA) 데뷔 14년 만에 거둔 우승이다. 윤명한은 2009년 KPBA 16기 테스트를 통과해 이듬해부터 활약했는데 기나긴 무관의 한을 풀었다.

기적과 같은 우승이었다. 윤명한은 당초 4명 중 상위 3명을 가리는 4위 결정전에서 초반 실수가 나오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장원식(26기·팀 ACME)이 9, 10프레임 부진으로 160점에 그친 사이 윤명한이 186점으로 간신히 커트 라인을 통과했다. 특히 238점을 올린 13기 강종필의 기세가 매서웠다.

하지만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윤명한은 결승 진출자 2명을 가리는 3위 결정전을 233점, 1위로 통과햇다. 216점을 얻은 강종필이 188점에 머문 김태현(23기·퍼펙트코리아)을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윤명한이 먼저 1~3프레임 터키로 리드를 잡았지만 4프레임 4-6-7 스플릿, 5프레임은 9커버에 그치면서 강종필에 역전을 당했다. 경기 중후반까지 리드를 잡은 강종필도 8프레임에서 커버 실수를 범해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둘은 10프레임에서 나란히 스트라이크를 터뜨리면서 204점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에서 먼저 샷을 구사한 윤명한이 통렬한 스트라이크로 압박했고, 강종필도 혼신의 힘을 다해 투구했지만 10번 핀이 넘어가지 않으면서 승부가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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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한이 '제26회 DSD 삼호코리아컵 국제오픈볼링대회' 결승에서 호쾌한 샷을 구사하고 있다.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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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윤명한은 "아직도 우승이 긴가민가 하고 실감이 잘 안 난다"면서 "연장에서도 경기를 치른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고 얼떨떨한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이내 "점수보다는 매 투구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으로 경기를 했다"면서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고 에너지를 쓰면서 긴장을 긴장을 풀었다"고 결승을 돌아봤다.

프로 우승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당초 윤명한 초등학교 6학년 때 볼링을 접한 뒤 중학교까지 선수로 뛰면서 다수 입상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꿈을 접어야 했다. 윤명한은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됐다"고 돌아봤다. 버지니아 공과대학을 졸업한 윤명한은 귀국해 군 복무를 마친 뒤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까지 이루게 됐다.

하지만 운명처럼 윤명한에게 다시 볼링이 찾아왔다. 직장 생활이 쉽지 않고,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는 윤명한은 취미 활동으로 볼링을 시작했다. 이때 유년 시절 스승이었던 퍼펙트 코리아 한창훈 대표의 "학창 시절 못 이룬 꿈을 이뤄보라"는 권유에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과정이 쉽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낚시찌를 생산하는 부모님의 가업을 이으면서 선수 생활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윤명한은 "1년에 10회 정도 대회에 출전했는데 처음에는 아내의 불만이 있었다"면서 "야구, 축구 등 인기 종목에 비해 프로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져 따로 밥벌이를 하면서 자비를 들여 도전해야 하는 현실에 마찰이 있었다"고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회상했다.

하지만 끈기와 열정으로 버텨냈다. 윤명한은 "실수도 많았고, 정답이라는 생각이 틀리기도 하고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 '왜 볼링이 안 되지?' 좌절감도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예전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우승하는 동안 나는 볼링을 떠나 있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짚었다. "틀리고 깨닫는 과정을 늦게나마 겪는 것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은퇴까지 우승은 못 해도 즐겁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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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DSD 삼호코리아컵 국제오픈볼링대회'에서 우승한 윤명한이 협회 김언식 회장(오른쪽 세 번째) 등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한 모습.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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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사고가 변화를 불러왔다. 윤명한은 "열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성적도 차츰 좋아지니 아내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답답함도 있었지만 팀 에보나이트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의 격려 속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가족의 응원 속에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가 됐다. 윤명한은 "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관중석에서 '아빠, 할 수 있어!' 작게 얘기해줬다"면서 "가족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편안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오늘 중학교 3학년 딸과 1학년 아들 등 가족이 보는 앞에서 우승한 게 제일 기쁘다"면서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우승이 없었음에도 그 과정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아이들도 좋아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자신 있게 하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프로 입문 14년 만이자, 미국 유학으로 선수 생활의 꿈을 접은 지 28년 만의 정상 등극이다. 윤명한은 "첫 우승이 목표였는데 큰 대회에서 우승하게 돼서 정말 좋다"면서 "멈추지 않고 다음 대회를 목표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방심하지 않고 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멀리 돌아온 만큼 간절한 마음이 가져온 값진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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