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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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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박철우 “백업으로 뛴 막판 3시즌 큰 자산… 나중엔 장인같은 지도자 욕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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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19년 선수생활 마감 ‘기록의 사나이’ 박철우

고졸신인 2호로 현대캐피탈행

“형편 어려워 선택… 후회는 없어”

1경기 50점… 최다득점 1위 기록

삼성화재서 4연속 우승 위업

“백업 뛰며 마음 많이 다져져

해설위원으로 다음시즌 기약”

2024년 봄은 유독 배구 레전드들이 떠나는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2005년 V리그 원년부터 여자부를 지켜왔던 한송이, 김해란이 은퇴를 선언한 데 이어 남자부에서도 ‘기록의 사나이’가 코트를 떠난다.

통산 6623점으로 V리그 남자부 역대 최다득점 1위 기록 보유자인 한국전력 박철우(39)가 19년간의 프로배구 선수 생활을 접는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돌아오게 될 박철우를 지난 23일 춘천의 강촌 엘리시안에서 진행된 2024 한국배구연맹(KOVO) 워크숍에서 만나 은퇴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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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 쭉 주전으로 뛰어온 박철우지만, 최근 세 시즌 동안 코트보다 웜업존이 더 익숙해졌다. 박철우는 “올 시즌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이미 마음이 좀 잡혀 있었던 것 같다. 구단에서 연봉계약 대상자에서 제외했다는 얘길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구단에서 얘기하기 전까지 마치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빨리 얘기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은퇴 과정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고교 졸업 후 프로 직행이 흔해졌지만, 박철우가 고교를 졸업하던 2004년만 해도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박철우는 역대 두 번째 고졸로 성인배구에 직행한 선수가 됐다. 박철우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영입 경쟁이 붙었고, 현대캐피탈을 선택했다.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집안 사정이 힘들었기 때문에 빨리 실업배구로 가서 집안을 일으켜야 했다”고 20년 전을 돌아봤다.

199㎝의 장신이지만, 유독 마른 유망주였던 박철우에게 당시 현대캐피탈 사령탑을 맡고 있던 김호철 감독(현 IBK기업은행)은 많은 기회를 부여했고, 박철우는 현대캐피탈을 넘어 단숨에 V리그를 대표하는 토종 최고의 아포짓 스파이커로 성장했다. 2010년 1월30일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전에서는 50득점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국내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한 경기 득점 기록이다.

그렇게 현대캐피탈 간판스타로 성장한 박철우는 2009∼2010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되자 프로배구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선택을 했다. 현대캐피탈의 최대 라이벌 삼성화재로의 이적한 것이다. 박철우는 “욕을 참 많이 먹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당시 박철우는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둘째 딸이자 아내인 신혜인씨와 연인 관계여서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기도 했다. 삼성화재로 옮긴 2010∼2011시즌부터 박철우는 숙원이었던 챔피언 반지를 2013∼2014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 갖게 됐다.

다만 분업과 시스템을 중시하던 신치용 감독 아래서 박철우 개인의 기록은 손해를 본 측면이 있다. 에이스는 외국인 선수의 몫이었고, 박철우는 보조 공격수였다.

이에 대해 박철우는 “삼성화재 이적 첫 시즌에 잘 풀리지 않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다. 배구가 공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기본기의 중요성, 팀을 위한 희생이라는 가치의 소중함 등 배구에 대한 시각을 많이 바꿀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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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시즌까지 10시즌을 삼성화재에서 뛴 박철우는 마지막 소속팀이 된 한국전력으로 FA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엔 주전 아포짓으로 뛰고 V리그 한 시즌 개인 최다인 596점을 올리며 이름값을 다 했지만, 2021∼2022시즌부턴 백업 선수가 됐다.

그는 “백업 선수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위치에 가보니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다. 자신을 상처 내면서 깎아내는 과정을 통해 다져졌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구상도 많이 하게 됐다.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백업으로 뛴 3시즌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철우는 다가오는 2024∼2025 V리그부터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나선다. 박철우는 “선수 시절 해설을 들을 때면 김상우 감독님이 톤이나 기술적인 이야기 등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해왔다. 여기에 이세호 교수님처럼 재밌는 이야기도 섞어주고 경기가 고조될 때는 같이 흥분도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두 분의 장점을 잘 담아내는 해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도자로서의 꿈도 있다. 한국배구의 최고 명장이자 장인인 신치용 감독이 롤모델이다.

박철우는 “장인어른의 배구는 보이지 않는 데서 강함이 있다. 배구란 게 결국 18m×9m 규격의 코트에서 공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의 싸움인데, 그 공간을 모든 선수가 잘 채워주면서 원활하게 움직이는 배구를 했던 것 같다. 장인어른 밑에서 진짜 많이 배웠다. 이를 참고해 나만의 배구도 추구하며 이기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춘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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