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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주민규 "A매치 골까지 34년...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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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데뷔골 당시 세리머니를 재현하는 주민규.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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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골을 넣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텼나 봅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감격을 첫 골을 터뜨린 주민규(34·울산 HD)는 활짝 웃었다. 그는 지난 6일 열린 싱가포르와의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5차전 원정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1골 3도움을 몰아치며 한국이 7-0으로 이기는 데 앞장섰다. 지난 3월 태국전에서 '만 33세 343일'의 나이로 역대 한국 최고령 A매치 데뷔 신기록 작성했던 주민규는 세 번째 출전이었던 싱가포르를 상대로 '34세 54일'의 나이로 A매치 데뷔골을 맛봤다. 한국 축구 최고령 A매치 데뷔골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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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전에서 1골 3도움을 몰아친 주민규.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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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그리고 더 소중하게 듣겠다는 의미의 세리머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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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11일 중국과의 아시아 2차 예선 최종경기에선 결승골에 힘을 보탰다. 후반 16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은 뒤 페널티박스를 파고들자, 그에게 중국 수비수들이 몰렸다. 그 덕분에 2선 공격 이강인(파리생제르맹)에게 슈팅 찬스가 열렸다. 주민규를 중국전 이튿날인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의 굿대디스포츠클럽에서 만났다. 그는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한 덕분에 부담감은 사라지고 대신 여유가 생겼다.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넣은 골 중 가장 값지다"라고 말했다. 주민규는 K리그에서만 138골을 기록 중이다. 이동국(228골), 데얀(198골·이상 은퇴)에 이어 통산 최다골 3위에 올라있다.

주민규는 A매치 데뷔골을 넣은 뒤 양손을 귀에 갖다 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대표팀 경기에서 팬들이 '주민규'를 외쳐주기까지 무려 34년이나 걸렸다. 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그리고 더 소중하게 듣겠다는 의미의 세리머니다. 앞으로 더 자주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들은 주민규에게 '주리 케인'이라고 부른다. 주민규와 잉글랜드의 간판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31·바이에른 뮌헨)을 합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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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토트넘 방한경기 당시 해리 케인(가운데)와 볼 경합하는 K리그 올스타팀의 주민규(왼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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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전에서 손흥민(오른쪽)의 골을 어시스트한 주민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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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은 지난 시즌까지 토트넘에서 손흥민(32·토트넘)과 콤비를 이루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듀오로 불렸다. 한국에선 '손-케 콤비'라고 불렸다. 싱가포르전에서 손흥민의 골을 어시스트한 주민규의 플레이는 케인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민규는 "(손)흥민이와 뛰면 오래 전부터 호흡을 맞춘 것처럼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나온다. 주리 케인이란 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민규가 국가대표 공격수가 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가장 밑바닥인 연습생으로 시작해 축구 선수로는 최고 무대인 대표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2013년 참가한 K리그 드래프트 참가했다. 하지만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연습생으로 당시 2부 리그 팀 고양HiFC(해체)에 입단했다. 당시 연봉은 2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처우나 팀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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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홍명보 감독의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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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싱가포르전이 마지막 대표팀 경기라는 마음가짐으로 간절하게 뛰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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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팀 훈련 후 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슈팅 훈련을 했고, 거친 몸싸움을 버텨내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2015년 2부 창단 팀 서울 이랜드FC로 이적하면서 포지션도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바꿨다. 주민규는 "연습생 때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됐고, 이랜드에선 평생 뛴 포지션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땐 슬퍼하는 것도 사치다. 프로에선 살아남는 것이 곧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탄탄한 체격(1m83㎝·82㎏)에 정교한 킥 능력을 앞세운 그는 이랜드 입단 첫 시즌에 23골을 터뜨리며 2부리그를 평정했다. 2019년엔 울산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1부 무대를 밟았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이듬해 22골을 터뜨리며 생애 첫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23년 다시 울산으로 이적한 그는 같은 해 또다시 득점왕(17골)에 오르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전성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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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K리그를 평정한 대표 골잡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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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에도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는 주민규.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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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이었던 태극마크의 꿈은 지난 3월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황선홍(56) 임시 감독의 부름을 받으며 이뤄졌다. 주민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면서 사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끝까지 해낸 덕분에 지금 웃는 것 같다. 연습생, K리거들 그리고 나이가 많아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처지가 비슷했던 저 사람도 해내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2026 북중미월드컵이 개막할 때면 36살이 된다. 그는 "팬들이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라는 걸개를 만들어 응원해주셨다. 나이가 더 많아질수록 세울 기록들도 생기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늦었지만, 활짝 폈으니 다음 A매치만 보고 열심히 달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을 넣을 수만 있다면 머리, 발, 배,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겠다. 최대한 오래 버티겠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서른넷 주민규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다'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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