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감독 선임 방향 설정·소통 등 너무 아쉬워” 김판곤 감독 “전강위에 모든 권한 줬을 땐 전연령 가장 강한 대표팀 나왔다” [MK대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판곤 감독은 울산 HD FC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부터 한국 축구 대표팀이 겪고 있는 혼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김 감독은 2018년 1월부터 2022년 1월 말레이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기 전까지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일했다. 김 감독은 2018 러시 월드컵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해 한국의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숨은 주역이었다.

김 감독은 지금껏 말을 아꼈다. 울산 지휘봉을 잡은 만큼 ‘울산과 관련된 질문만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매일경제

울산 HD FC 김판곤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울산이 9월 27일 대전하나시티즌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둔 후엔 달랐다. 김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 축구가 겪고 있는 혼란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혔다.

김 감독은 “울산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 질문에 답해야 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면서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고 말을 시작했다.

“코끼리의 다리만 보면 그 다리만 가지고서 코끼리의 형상을 이해한다.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 검증한 부분을 두고 모든 감독을 ‘검증해야 한다’고들 생각하는데 오해가 있는 듯하다. 벤투 감독 선임 당시엔 우리가 더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벤투 감독이 중국, 브라질, 그리스 등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이 우리가 원하는 1순위 후보도 아니었다. 대표팀 감독은 최고 수준의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에게 무조건 PPT 같은 걸 요구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김 감독은 전력강화위원장 시절 에르베 르나르, 카를로스 케이로스, 키케 플로레스 감독을 만났던 경험을 들려줬다.

매일경제

파울루 벤투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울산 HD FC 김판곤 감독의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시절. 사진=AFPBBNews=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르나르 감독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한 지도자였다. 라커룸 리더십, 선수단 장악력, 인품, 경기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능력 등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감독이었다. 제삼자를 통해 알아봐도 르나르 감독은 아주 좋은 지도자였다. 르나르에겐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내가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와달라’고 사정했다. 내가 르나르에게 ‘PPT로 전술을 제시해달라’는 식의 말은 할 수 없었다. 내가 르나르에게 확인할 수 있는 건 한국행이 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한국에서 일할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정도였다”고 했다.

“케이로스 감독도 모든 것이 검증된 지도자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코치로 오랜 시간 일했다. 이란에서도 능력을 검증했다. 그런 감독에게 어떻게 PPT를 요구하나. 키케 플로레스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키케 플로레스 감독에게 한국 대표팀의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설득했다. ‘네가 한국으로 오면 대박 난다’고 했다.” 김 감독의 설명이다.

매일경제

울산 HD FC 김판곤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계속해서 소신을 밝혔다.

김 감독은 “스카우트는 말 그대로 스카우트일 뿐”이라며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전력강화위원장의 발언을 유심히 봤다.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모셔와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부터 설정해야 했다. 선·후배, 아래위도 없는 오합지졸이 된 팀을 어떻게 해야 한 팀으로 뭉치게 할 수 있을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많은 이들을 설득했다면 이런 상황까진 안 왔다. 정말 방향성이 명확해야 했다. 이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아쉬움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김 감독이 말을 이었다. 김 감독의 말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김 감독은 “전력강회위원회가 방향 설정을 제대로 했나 싶다. 어떤 사람은 내국인 지도자, 또 다른 이는 외국인 지도자를 바랐다.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오해가 있었다. 에너지를 모아서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지혜롭게 팀을 재정비할 시간을 완전히 허비하고 있다. 벌써 월드컵 3차 예선 2경기를 치렀다. 차주 월요일엔 10월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다. 감독에게 면박 주고, 팀을 와해시킨다. 감독의 힘을 빼고 있다. 정치하시는 분이나 유튜브 하시는 분이나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에 관해 묻고 싶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나는 정말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매일경제

김판곤 감독. 사진=프로축구연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잠시 숨을 고른 뒤 ‘협회’란 단어를 꺼냈다.

김 감독은 “협회에 한마디 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전력강화위원장에게 대표팀 운영 및 감독 선임, 평가 등의 권한을 주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었나. 가장 강력한 대표팀이 나왔다. A대표팀은 물론이고 U-17~23 모두 안정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나아갔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고, 공정하게 나아갔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프로세스였다. 그런데 대체 왜 그 권한을 빼앗은 건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계약기간 중인 사람에게 왜 권한을 빼앗은 건가. 협회 내부에서 누군가 건의를 해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건지 돌아봐야 한다.”

매일경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사진=천정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 감독은 “지금 중요한 건 이 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수습하는 것”이라며 “감독과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됐다면 ‘잘못됐다’ 평가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이후 감독을 평가할 시기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월드컵이 중요한 때”라고 했다.

[대전=이근승 MK스포츠 기자]

[ⓒ MK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