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람은 기자회견장에 앉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아침부터 계속 눈물이 났고, 은퇴사를 준비하면서 더 슬퍼졌다"고 털어놨다. 몇 번이나 울컥해 말을 멈춰야 했고, "한화 팬들에게 받은 사랑만큼 기쁨으로 돌려드리지 못해 죄송했다"며 또 울먹였다.
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이 마지막 등판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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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선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불펜 문을 열고 그라운드로 입장할 때부터 오열을 시작했다. 후배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직접 쓴 은퇴사를 읽어내려갈 때쯤엔 이미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 선수들마저 흐르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던 정우람도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또 한 번 울어버렸다.
정우람은 그렇게 눈물바다 속에서 마운드와의 이별을 고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마음으로 야구장에 왔다. 긴장을 많이 했고, 슬프고 설레면서 뭉클하기도 했다.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다"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2016년 한화에 왔는데, 9년간 팬분들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게 가장 아쉽고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정우람은 KBO리그 통산 1005번째 경기였던 이날 NC 다이노스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다. 2006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정우람은 이전까지 출전한 1004경기에 모두 구원 등판한 전문 불펜 투수였다. 지난해 10월 15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003번째 마운드에 올라 아시아 단일 리그 투수 최다 경기 출장 기록도 경신했다.
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이 마지막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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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이 마지막 등판을 마치고 팬들의 환호 속에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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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임무를 맡았지만, 등장하는 장면은 익숙했다. 정우람은 다른 선발 투수들과 달리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에서 달려 나와 마운드로 향했다. 이어 이날 NC 리드오프 최정원을 상대로 직구만 4개를 던졌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있는 온 힘을 실어 정면승부를 이어가다 4구째에 우전 안타를 맞았다.
아쉬운 미소를 지은 정우람은 어느새 마운드로 모여든 내야수들과 한 명씩 포옹한 뒤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만원 관중과 더그아웃의 동료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최정원은 "정우람 선배님의 현역 생활 마지막 상대 타자가 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선배님께서도 내가 최선을 다해 승부하길 원하셨을 거라 생각했다"며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선배님처럼 팬들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펼쳐질 선배님의 또 다른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의 은퇴식.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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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 은퇴식이 끝난 뒤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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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람은 그해 가을 한화의 유일한 승리 투수이기도 했다. 3-3으로 맞선 준플레이오프 3차전 8회 1사 1·2루 위기에서 구원 등판해 1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화가 9회 결승점을 뽑고 역전에 성공해 정우람이 구원승을 올렸다. 그러나 정우람이 머릿속에 떠올린 경기는 3차전이 아니라 패배로 끝난 4차전이다. 정우람은 "경기가 끝나고 많은 팬분이 선수단 버스 옆에 서서 '정말 고생 많았다'고 얘기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또 한 번 감정을 추슬렀다.
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 은퇴식이 끝난 뒤 후배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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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 은퇴식이 끝난 뒤 후배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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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투수'였던 정우람은 이제 야구공을 내려놓고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정우람의 두 아들 대한(13) 군과 민후(11) 군이 이날 시구와 시타를 맡아 아버지의 새 출발을 든든하게 응원했다. 정우람은 "그동안 여러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갈 길이 멀다"며 "진심으로 선수들과 소통하고,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일단 '좋은 지도자'보다 '좋은 사람' 먼저 돼보려고 한다"고 했다.
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 그의 두 아들이 시구와 시타를 맡았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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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대전 NC전에서 현역 은퇴한 정우람. 은퇴식이 끝난 뒤 가족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한화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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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우람의 목표는 이미 이뤄진 듯하다. 그의 은퇴 소식을 들은 한화의 후배 투수들은 최근 한마음으로 특별한 식사 자리를 마련해 뜻깊은 '미니 은퇴식'을 선물했다. 정우람이 팀에서 어떤 선배이자 동료로 지내왔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우람이 "내가 이런 걸 누려도 되냐"며 연신 고마워하자 후배 이태양은 "이렇게 해드릴 수 있는 선배가 있어 우리가 고맙다"며 고개를 저었다는 후문이다.
정우람은 "야구 선수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 준 후배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나 역시 계속 진심으로 후배들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대전=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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