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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올가을은 함께하고 싶었는데…" LG 유영찬의 사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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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승리한 뒤 유영찬의 아버지를 애도한 LG 선수들. MBC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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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그러더라고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많이 도와주실 거라고."

지난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LG가 7-2로 앞선 9회 초 2사 만루에서 LG 좌익수 문성주가 KT 마지막 타자 강백호의 타구를 점프하면서 낚아챘다. 실점 위기를 넘긴 LG 마무리 투수 유영찬(27)은 비로소 담담한 표정으로 땀을 닦았다.

곧 그라운드에 있던 LG의 모든 야수가 마운드 위로 모여들었다. 활기찬 세리머니로 승리를 자축하는 대신, 서로의 어깨를 감싸고 침묵 속에 고개를 숙였다. 세상을 떠난 동료의 아버지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이었다.

유영찬은 지난 3일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었다. 포스트시즌 대비 합숙 훈련이 한창이던 시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날벼락을 맞았다. 유영찬은 부랴부랴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달려갔고, LG 선수단은 4일 훈련을 마친 뒤 단체로 빈소를 찾았다. 발인은 5일. LG의 가을야구 첫판인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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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발인식 다음날인 6일 KT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9회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는 LG 유영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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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찬은 자신의 부재로 팀에 피해가 갈까 염려했다. "오전에 발인식을 마치고 곧바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만류했다. "조금이라도 더 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말렸다. LG는 그렇게 소방수 없이 첫 경기에 나섰고, 유영찬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그날 밤 팀에 합류했다.

LG 베테랑 투수 김진성은 2차전을 앞두고 "지금 영찬이는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무척 힘들 거다"라며 "우리 불펜 투수들이 영찬이 대신 더 힘을 내서 던졌다. 괜히 팀에 미안한 감정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독였다.

다른 선수들의 마음도 모두 같았다. 이날 경기 전 더그아웃 앞에 모여 짧은 묵념으로 다 함께 애도한 뒤 그라운드로 달려나갔다. 유영찬은 그렇게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을 등에 업고 다시 공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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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KT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승리한 뒤 포수 박동원(오른쪽)의 격려를 받는 LG 유영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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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사 후 볼넷을 내줬고, 2사 후 내야안타와 몸에 맞는 볼을 연거푸 허용했다. 그러나 끝내 점수를 주지 않고 무사히 경기를 마무리했다. 염경엽 감독은 "2스트라이크를 선점한 뒤 투구 수가 많아졌는데, 다행히 실점을 안 했으니 다음 경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다"며 "(부친상 이후) 첫 경기 아닌가. 앞으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면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날 선발승을 따낸 임찬규도 "(부친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일이다. 곧바로 복귀해서 정말 힘들었겠지만, 잘 던져줘서 기특하고 고맙다"며 유영찬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임찬규 역시 2021년 시즌 도중 아버지와 영원히 작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비통한 후배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임찬규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이 아프고 힘들 거다. 나도 그랬다"라며 "그래도 경기에 나가 좋은 투구를 한 게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큰 위안이 됐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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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KT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승리한 뒤 하이파이브하는 LG 유영찬과 염경엽 감독(오른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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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찬은 경기 뒤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엔 솔직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하지만 마운드 위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똑같은 마음으로 던지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형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와주실 것'이라고 많이 격려해주셨다. 나도 그 응원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며 고마워했다.

유영찬은 올해 미국으로 떠난 고우석 대신 LG의 새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정규시즌 62경기에서 63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7승 5패 1홀드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97로 제 몫을 했다. 올가을에도 LG의 뒷문은 그가 책임진다.

유영찬은 "아버지가 작년 한국시리즈를 직접 못 보셨다. 그래서 올해 가을야구는 꼭 함께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프다"라며 "(그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 내가 더 힘차게 잘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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