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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영화인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택해 논란이 됐다. 영화계가 OTT의 발전으로 힘겨운 상황에서, ‘맏형’ 영화제인 부산이 OTT 영화로 개막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이었다.
배우 박정민은 이달초 개막식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를 둘러싼 질의응답을 지켜봤다. 당시만 해도 그는 영화 완성본을 못 본 상태였다. 개막식에서 보려고 아껴놨었다.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전,란’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전,란’과 관련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과 만난 박정민은 OTT 영화를 둘러싼 영화계의 복잡미묘한 상황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영화관보다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가 훨씬 많다. 그 정도로 관객 사이에 OTT 플랫폼이 깊숙이 스며들었다”며 “두 매체를 다 즐기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전 (플랫폼이)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계속 극장 영화를 하고 싶긴 하다. 극장에서 관객에게 영화 보여드리고 무대인사·관객과 대화로 소통하고 싶다”며 “그렇다고 넷플릭스 영화에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넷플릭스에서도 좋은 영화를 많이 봤고, (플랫폼에 대한 선호도는) 개개인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만 감독이 연출한 ‘전,란’에서 박정민은 대대로 고위 무관을 지낸 양반가 자제 종려를 맡았다. 종려는 신분에 대한 고정관념은 확고하지만 몸종 천영과 허물없이 지낸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가족을 모두 잃고 천영에 대한 오해가 생겨 극적으로 성격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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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각본을 맡아 화제였다. 박정민은 박 감독의 대본을 처음 읽고 ‘글이 진짜 우아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되게 우아하면서 동시에 ‘헤어질 결심’ 때도 느낀 바인데 소설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소설책으로 내도 충분히 성립될 수 있는 글인 것 같은데. 배우들이 상상하며 연기하기 편하게 쓰여 있었어요. 중간중간 자세히 보면 ‘어, 이거 유머구나’ 하는 부분도 확실히 섞여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소설 같은 시나리오가 한 편의 영화로 태어난 결과물을 보는 것도 신선했다. 박정민은 “가장 큰 차이는 미장센이었다”며 “대본에는 영화에서 표현한 화면 구성이나 카메라 움직임, 색감은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본은 굉장히 문학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어쨌든 카메라 이동이나 음악, 색감은 정확히 적혀있지 않기에 (읽으면서) 제 경험 안에서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며 “영화를 보니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구도들이 나오고 생각보다 웅장했고 심지어 제가 찍은 장면임에도 ‘이렇게 나온다고?’ 싶던 앵글, 색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지점이 되게 많아서, 사람은 역시 자기 경험 안에서밖에 상상할 수 없구나를 다시금 깨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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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맛’을 주는 배우다. 직접 에세이집을 내고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사유의 시간과 내공이 쌓인 덕분으로 보인다.
그는 출판사 운영에 대해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밌어서 한다”고 했다. “어쨌든 한번 시작을 했고 저를 믿고 글을 주신 분들이 계시고 그러다보니 책임감이 생긴 상황인데, 마침 요즘 들어서 이게 재밌어져서 재밌게 해볼까 하는 찰라”라고 말했다. 다만 출판사는 설립 이래 쭉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제가 글만 쓸 때는 몰랐는데 책이란 게 너무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고가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작가가 저한테 준 원고가 좋을 때 이걸 어떻게든 잘 포장하고 싶어서 인재들을 찾고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배우는 어쨌든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 무언가를 해내야 하잖아요. 반면 출판은 제가 포장지에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서 또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과 일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행복해지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와 일해준다면’ 하고 생각해보니 김상만 감독님이 ‘전,란’에서 강동원 배우를 캐스팅할 때 이런 기분일까 싶고.”
박정민은 각종 글로도 독자와 만나왔다. 그럼에도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마감은 정말 최악이고 항상 편집자님께 죄송스럽다”고 한다. 그는 “진짜 2시간 만에 ‘에라 모르겠다’ 쓰고 원고를 보내버릴 때도 있다”며 “그럴 때마다 죄송스러운데 그래도 가끔 내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면 그런 마음이 사그라든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데뷔 이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책임감의 크기’를 들었다. 촬영 현장에서, 작품 속 연기에서 생각할 거리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는 내년에 새 작품에 돌입하기보다 잠시 쉬어가려 한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가졌는지 찬찬히 살피기 위해서다.
“제가 갖고 있는 걸 벗어난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채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썼던 표정을 계속 쓸 수 없으니까요. 나한테 어떤 표정이 있는지 저도 다는 모르니까요. 거울도 보고 내가 누구를 만나면 이런 버릇이 있고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살펴보려고요. 이게 나중에 다 자원이 될텐데, 제가 그걸 너무 무시하고 산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자진해서 브레이크를 걸어보면 어떨까 했습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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