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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나의 해리에게’ 이진욱-신혜선, 오래 돌아 더욱 길어진 입맞춤 [김재동의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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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저만치 그가 온다. 달려오고 있다. 날 세워두고 멀어져 갔던 그 계단 위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마음 먹었었다. 다짐했었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 준다면 말해야지. 말해줘야지. “고마워 내 사랑! 이런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22일 방송된 지니TV 오리지널 ‘나의 해리에게’ 속 주은호(신혜선 분)는 말할 겨를이 없었다. 정현오(이진욱 분)의 입술이 덮쳐왔을 때, 그의 젖은 품이 격정적으로 안아 왔을 때. 그러니 도대체 말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단 한 번도.”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아니었다. 옆에는 늘 정현오란 이름의 행복이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 행복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안녕, 주은호”하고 그가 떠났을 때, 세상이 무너졌었다. 그와 직장이란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마치 끔찍한 형벌처럼 느껴졌었고 그를 잊기 위해 그를 죽도록 미워해야 하는 자신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온통 떠안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럴수록 10년 전 실종된 동생 주혜리(김시은 분)가 궁금해져갔다. 근거없이 마냥 행복했던 아이. “너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런데 도대체 왜 행복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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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행복했던 근거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살아보기로 했다. 주혜리처럼. 아니 주혜리가 돼서. 동생이 동경했던 주차장 정산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주혜리도, 주차장도. 다만 PPS아나운서로서의 삶만 살고 있었다.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채 암울하기만 한 주은호의 삶만. 그렇게 믿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가 활개친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주은호의 ‘위장 주혜리’는 시나브로 ‘인격 주혜리’가 되어 미디어N서울 주차장에서 그 동안도 여전히 살아 숨 쉬었고, 하물며 그 주혜리는 기억 속 동생처럼 마냥 행복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강주연(강훈 분)과의 사랑이 주혜리를 행복에 겹게 만들었겠지.

그리고는 감히 요구했었다. “주은호씨, 당신이 이 몸의 주인이더라도 나에게 양보해주세요”라고. “왜냐하면 당신은 불행하지만 나는 행복하니까.”라고.

방송 중 갑자기 닥친 주은호의 공황장애는 그런 면에서 주혜리에게 악재였다. 주은호의 옆을 정현오가 지켰으니까. 그 덕에 다시 행복한 주은호가 되었으니까. 더 이상 주혜리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또 다시 찾아온 반전은 정현오의 결혼 소식이었다. 결혼 안한다던 정현오였다. 결혼하자 했더니 떠났던 정현오였다. 근데 결혼? 누구랑? 그 충격이 불러온 방송사고. 더 이상 PPS에 주은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당신은 행복한 것조차 실패했어요. 이제는 내가 나설 거예요. 나 주혜리가”란 글은 정말 주혜리의 인격이 썼다기 보단 주혜리고 싶은 주은호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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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주은호는 혜리의 마지막 그 곳, 기이숲을 찾았다. 혜리로 살고자 애썼다. 어느 순간 혜리의 인격이 찾아든 양 햇살, 바람, 발을 간질이는 물결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비바람 몰아치던 날 깨달았다. 뇌성이 몸부림치는 섬광의 순간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여전히 주은호였다. 다시 확인하자면 주은호는 주혜리가 될 수 없었다.

정현오의 손에 잡혀 서울로 돌아온 주은호. 그 앞에 주혜리를 사랑했던 남자 강주연이 나타났다. 그 강주연은 말했다. “나는 혜리씨가 누구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니까. 이런 나한테 와준 사람이라서, 그래서 좋아했던 거니까!” 주은호는 그런 강주연을 꼭 안아주었다.

“저는요. 아무래도 혜리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주연씨. 인사하고 싶었죠.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했던 나를 아껴줘서 고맙다고. 아까 주연씨가 했던 말은 내가 주연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예요. 누구라서 좋았던 게 아니구. 그저 와줘서. 이런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요. 주연씨.”

더 이상 주혜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강주연은 말했었다. “마음은 하나야!”라고. 주은호에게도 마찬가지다. 주은호의 마음은 1회용이다. 골수 구석구석까지 정현오에게 맞춤 세팅된 1회용 마음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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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정현오는 늘 주은호의 곁에 있었다. 사내 왕따 1호 주은호에게 리포트건을 마련해 주었고. 주은호의 정오뉴스를 위해 자신의 9시뉴스를 양보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런 그 남자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 모습을 신물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불행아 코스프레에 심취한 주은호 자신만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주은호는 깨달았다. 주은호의 행복은 주혜리 아닌 주은호로서만 가꿀 수 있음을. 불행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은 사실은 제 것이 아닐 수 있었단 걸. 주은호로서 행복하기에도 너무 바빠 거기에 뭔가를 덧붙일 순 없다는 걸.

오래 돌아온 길. 주은호-정현오의 입맞춤은 그렇게 길게 길게 이어졌다.

그러니 생기는 궁금증 하나. 두 주인공이 이렇게 제 길을 찾아 버렸으니 ‘나의 해리에게’ 남은 2회는 뭘로 채우나?

/zaitung@osen.co.kr

[사진]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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