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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찐팬’이 말하는 오타니 우승 서사…“행운의 아이콘? 극복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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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운데)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승리한 뒤 라커룸에서 환호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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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다. 미국 동서부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자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우승이라 더 극적이었다. 정규 시즌에서도 승률 1위 팀이었던 다저스는 포스트시즌마저 우승을 거둠으로써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팀임을 증명했다. 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 50도루를 달성한 오타니 역시 3번째 최우수선수(MVP·엠브이피)가 확실시(배팅 사이트에서는 99%로 봄)된다. 지금껏 엠브이피를 3회 이상 받은 선수는 11명밖에 없다. 이번 엠브이피도 만장일치로 받는다면 3번의 엠브이피를 모두 만장일치로 받은 유일한 선수가 된다. 이미 만장일치 2번도 그가 유일하지만.



나도 주변에 오타니 팬으로 알려진 덕에 축하 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 우리 팬클럽 ‘쇼타임 코리아’ 역시 며칠째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다음 주 토요일 홍대에서 열릴 정모 파티는 환희의 정점이 될 듯하다. 얼마 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했고, 세계 각국의 오타니 팬클럽을 소개하는 기사에 소개되었다.



https://www.mlb.com/news/shohei-ohtani-has-fan-clubs-all-around-the-globe



2021년부터 매년 그렇듯 언론에서는 오타니의 화려한 경력과 성공을 다루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예전 팀 에인절스에서는 요원했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했으니, 맛있는 케이크 위에 예쁜 체리까지 얹은 셈이다. “이렇게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행운아가 어디 있냐”고 감탄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시선이 불편하다. 지금껏 오타니가 걸어온 길은 행운의 길이 아니라 위태롭고 가시 돋은 험로였고 올해 역시 위기와 좌절로 가득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행복했을 것만 같은 오타니의 이번 시즌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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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달 27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2차전 뉴욕 양키스와 경기 7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도루를 시도하다가 어깨에 충격을 받은 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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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야구 역사상 최초로 타자 40홈런 투수 10승을 거둔 오타니는 엠브이피를 받고 시즌을 마감하지만, 후반기에 팔꿈치 수술을 받는다. 문제는 하필 새로운 팀과 계약을 앞둔 시기였다는 것. 일단 1년 이상은 투수로 아예 나설 수 없고 그 후에도 기량이 얼마나 회복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역대급 계약은 물 건너갔다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을 갱신한 7억 달러 계약. 어떻게 된 일일까?



위기를 기회로 바꾼 회심의 카드는 지급유예(디퍼) 방식이었다. 오타니는 7억 달러 거의 전부(97%)를 10년 후부터 나눠 받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화폐 가치는 매년 하락하기에 팀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좋은 조건이다. 대신 그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 강팀을 만들어 달라고 팀 수뇌부에게 부탁한다. 이 방식으로 오타니가 본 손해는 현재가 기준 최소 2억 달러 이상이다. 많은 이들은 오타니가 연봉 외 광고 수입이 워낙 많으니 이렇게 제안했다고 하는데, 내 재산이 많으니 받을 돈을 덜 받겠다는 부자를 본 적 있나? 특히 스포츠 스타에게 몸값이란 기량과 상품성의 증명이기에 다들 조금이라도 더 큰 액수로 계약을 맺으려 한다. 이렇게 자진해서 자기 몸값을 낮춘 선수를 난 알지 못한다. 결국 이 결정은 대성공이었다. 오타니 덕분에 다저스는 좋은 선수들을 추가로 영입했고 그들은 월드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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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오타니 한국 팬클럽의 모습. 이재익 피디 제공


정규 시즌을 시작할 때도 오타니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투수와 타자 포지션을 모두 뛰는 ‘투웨이 플레이어’가 오타니의 본질인데, 팔꿈치 수술 여파로 투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투수 재활 시즌에는 수비도 불가능해 하필 다저스 첫 시즌부터 지명타자로만 타석에 들어서는 반쪽짜리 선수가 될 처지였다. 그래서 시즌 직전 대부분의 스포츠 매체가 예상한 올해 성적은 홈런 30개 안팎에 선수 랭킹 10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세 번째 엠브이피가 눈앞에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지난 겨울 한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에는 투수로 나설 수 없으니 더 적극적으로 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실제로 스프링캠프 영상을 보면 허리에 줄을 감거나 무거운 추를 단 채 달리기 연습을 하는 오타니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많은 선수 중에 그렇게 안간힘을 쓰는 선수는 오타니뿐이었다. 그때는 ‘쟤가 왜 저러나’ 의아했으나 이제 그 이유를 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40홈런 40도루 달성자도 5명뿐이었는데 오타니는 54개의 홈런을 치고 59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0.01초씩 단축되던 100m 기록을 갑자기 1초 당겨버린 셈이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누구보다 더 노력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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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는 지난 9월20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 방문 경기에서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해 한 시즌 50홈런-50도루라는 새역사를 썼다. 마이애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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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자 친구이자 훈련 파트너이기도 했던 미즈하라 이페이의 배신도 엄청난 시련이었다. 오타니의 계좌를 관리하던 그가 200억 원 넘는 돈을 몰래 빼돌려 불법 도박으로 날려버린 사건이었다.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온갖 억측과 조롱이 넘쳐났다. ‘오타니도 함께 도박했다’, ‘최소한 범행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사과는커녕 거짓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등등. 이 끔찍한 일들이 시즌 중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총 162경기 중 159경기에 출전. 다저스 선수 중 최다 기록이며 리그(NL) 전체로도 7번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일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터뷰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 시련과 좌절을 어떻게 견디냐고 물으면 오타니는 늘 같은 답을 내놓았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그 말대로 했을 뿐이다. 오타니는 사건 직후 기자 회견에서 배신감을 토로했을 뿐, 바로 다음 날부터 그저 최선을 다해 치고 달렸다. 결국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무혐의가 밝혀졌고 오타니는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 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모니터 한쪽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메모를 꽤 오래 붙여두었는데, 쓸데없는 공상과 걱정으로 날려 먹은 시간이 얼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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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관련 수집품 중 일부. 이재익 피디 제공


굵직한 악재만 이 정도다. 투수가 던진 공에 맞고, 심판의 오심에 손해 보고, 팀 동료들의 줄부상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등 다른 선수들이 겪는 불운을 오타니도 다 겪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어깨 탈구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경기까지 출전하며 투혼을 보여주었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오타니의 2024년은 행운의 해가 아니라 극복의 해였다.



우리 팬클럽에서는 오타니 같은 선수를 응원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너무 거창한 표현인가 차분하게 생각해 봐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특히 올해는 메이저리그 시즌 첫 경기를 서울에서 치른 덕에 입국하는 공항에서부터 오타니와 다저스 선수단을 환영하고 고척돔에 모여 응원해 줄 수 있었다. 그 추억 때문에 더 감격스럽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우리도 요만큼의 힘을 보탠 기분이랄까. 우리의 함성을 떠올려보면, 암, 그랬고말고.



내년에 오타니는 투수 재활을 마치고 다시 투웨이 플레이어로 복귀할 예정이다. 다저스의 에이스로 마운드에 오르는 길은 무수한 위기와 좌절로 가로막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게 믿는다. 태풍 같은 강속구를 던지고, 천둥 같은 홈런을 날리고, 번개처럼 베이스를 훔치는 오타니를 또 보게 될 거라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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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사장 프리드먼과 함께 한 이재익 피디. 이재익 피디 제공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한국 오타니 팬클럽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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