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한국인 메이저리거 소식

위대한 24년 여정 마친 추신수 “한국 야구 위해 고민하겠다” [일문일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추추 트레인’ 추신수(42)가 24년간의 위대한 커리어를 마쳤다.

추신수의 은퇴 기자회견이 11월 7일 인천광역시 송도 경원재 앰버서더 호텔에서 열렸다. SSG의 팀 동료 김광현과 최정, 구단 임직원들이 함께 한 이날 자리에는 100여 명 이상의 미디어 관계자가 참석했다.

올 시즌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어깨를 수술 한 채로 나타난 추신수는 밝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선수 생활을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은퇴식에는 추신수의 등번호 17번을 형상으로 한 국가대표팀과 메이저리그 각 구단들의 유니폼 등 추신수를 상징하는 유니폼들이 담긴 조형물이 공개됐다. 또 추신수가 직접 뽑은 커리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인 ‘Legendary Moments TOP5’가 공개되기도 했다.

매일경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1년부터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메이저리그와 KBO리그 도합 2814경기에 나섰고, 무려 24년간 쉼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간 끝에 올 시즌을 끝으로 긴 야구 인생의 여정 1막을 마쳤다. 그만큼 야구에 진심이었기에 쉽지 않았을 은퇴 결정이기도 했다.

금나큼 기념비적인 프로 커리어였다. 추신수는 2001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메이저리그 통산 16시즌 동안 1652경기 타율 0.275,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961득점, 157도루를 기록했다.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기록도 세 차례나 달성했다.

2014년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맺은 7년 1억 3000만 달러는 당시 기준 아시아 선수 최고액 계약이었고, 역대 한국 선수 기준으로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최고액 계약이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가 그 이후 추신수의 뒤를 이어 2024년 1억 13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며 1억 달러의 벽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를 넘어서진 못했다.

아시아선수로 이치로 스즈키(은퇴) 외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빅리그 무대에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의 대표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한계를 부쉈다. 허슬플레이의 대명사와 같았던 추신수의 플레이에 매료된 메이저리그 팬들은 ‘추추 트레인’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사랑했다.

매일경제

사진=MK스포츠 DB


매일경제

사진=MK스포츠 DB


매일경제

사진=김재현 기자


추추 트레인의 질주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SSG가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재창단 한 이후 첫 번째 영입 선수로 2021년 SSG에 합류했다. SK가 2007 해외진출 특별지명 선수로 추신수를 지명한 이후 극적인 한국행이 성사됐다. KBO리그로 복귀한 이후 4시즌 동안 439경기서 추신수는 통산 타율 0.263/396안타/54홈런/266득점/205타점/51도루/출루율 0.388/장타율 0.424/OPS 0.812를 기록했다.

특히 추신수는 SSG에 합류한 이듬해인 2022년 역대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을 견인하며 프로 첫 우승의 감격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음은 위대한 항해를 마친 추신수의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이다.

Q.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아마추어로서 마이너리그를 겪은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하거나, KBO리그 프로야구에 진출 후 가는 선수들 모두를 존중한다. 두 경우 모두 장단점이 있다. 마이너를 경험하면 아무래도 선수들과의 소통이나 그 관계가 미국 생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저리그로 직행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금액과 최고의 자리서 야구만 해야 된다. 아무래도 선수들과 관계를 만들려면 야구만 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장단점은 있다. 요즘엔 어릴 때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선수보다 프로 생활을 하고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두 가지 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Q. ‘추신수’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냉정하게 추신수란 선수를 평가하면 뭔가 하나 특출난 것 하나 없는 것 같다. 파이브툴(Five-tool)이라고 하면 그 것을 평균적으로 할 수 있는 그것을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저 선수는 야구에 진심이었다, 야구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는 그것이면 저는 이때까지 해온 야구 인생을 다 보답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매일경제

사진=김영구 기자


Q. 가장 기억에 남는 타석을 꼽을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데뷔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너무 어려서 그것을 즐기지 못했다. 야구 외적으로 한 타석을 꼽으라고 하면 마지막 타석이었던 것 같다. 관중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관중 없이 야구를 하게 됐다. 텍사스 홈 관중들과 인사하지 못하고 7년 간의 텍사스 생활을 마무리 했다는 게 너무 아쉽더라. 부상으로 타격도 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7년의 계약을 벤치에서 끝내고 싶진 않았다. 코칭스태프와 상의 후 타석에서 반드시 번트만 하겠다고 약속하고 섰던 기억이 있다.

Q. 한국에서의 마지막 타석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정이 복받쳤던 건 사실이다. 경기 중에 그런 걸 표현하는 게 싫어서 많이 참았다. 그 전 텍사스에서 마지막 타석에서 인사를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됐다. 한국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즌을 뛰었다. 한국에서 야구 하면서 한국 야구팬에게 인천 야구팬에게 꼭 ‘인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순간에 한 타석이 중요한 상황에서 부상 때문에 마지막 한 달을 훈련을 못했는데, 그렇게 마지막 한 타석에 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타석에서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타석에 섰다. 결과는 의미가 없었지만 야구팬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내겐 가장 큰 목표였다. 야구 생활 하면서 시간들이 정말 빠르게 기억에서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Q. 제 2의 야구인생, 지도자로서 계획은 없나

마지막 경기를 끝나고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것 같다. 그 어떤 자리에 가는 것보단 그 자리에서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가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뭔가를 한다고 하는 게 이를 것 같다. 휴식기를 갖고 천천히 생각해볼 것 같다.

Q. 감독 추신수 상상?

(웃음)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많은 짐을 갖고 있는 자리인 것 같다. 항상 평가를 받아야 하고 쉬운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안이 와도 안 할 것 같다. 제안이 와도 준비가 됐을 때 열정이 있을 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쉬면서 정말 야구를 잘할 수 있는게 뭘까. 한국야구 4년을 뛰면서 보고 느낀 것이 있기에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더 선진야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감독이란 자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선수로 뛰었지 감독으로선 한번도 생각해보거나 준비를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매일경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야구에 진심이었던 만큼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은퇴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마지막에는 부상 때문에 많은 경기를 나가지 못하니까 선수로서의 미련은 없어지더라. 내가 인정을 하게 됐다. ‘선수로선 할 수 없겠구나’라고 인정하게 되더라. 부상을 당해서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을 보면 야구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게 원래는 당연하다. 그런데 부상으로 1년을 힘들게 하니까 경기장에 나가고 싶단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선수로서 미련을 끊게 해준 것이 어떻게 보면 부상인 것도 있다. 물론 은퇴는 부상 전에 결심했다.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이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퇴를 결정한 것 같다.

Q.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소감은?

예전에 박찬호 선배의 기자회견을 봤다. 그 자리엔 없었지만 지켜보면서 나 역시 눈물을 흘렸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가 이렇게 이 자리에 오게 됐다는 게 감회가 새롭다. SSG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잘 준비해주셨다. 굳이 안 해도 됐는데, 정말 감사드린다.

Q. 커리어에 아쉬움이 남는 포인트가 있다면

부상으로 거의 한 시즌을 쉬게 된 2016년이 아닐까 싶다. 당시 텍사스 선수였는데 종아리 부상으로 8주, 햄스트링 부상으로 6주, 사구로 손목이 골절되어서 6주, 허리 통증으로 8주 결장했다. 그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왜 이런 힘듦을 주셨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생각하면 ‘어차피 올 거라면 1년에 한 번에 오는 게 낫겠다’ 싶더라. 커리어를 통틀어서 부상이 없던 해가 없었을 정도로 항상 부상이 많았던 선수였다. 8번 수술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재활만 3년을 했다’고 말하는데 이제 내 몸에 남아있는 부상의 흔적들은 훈장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2016년 부상으로 많이 결장했던 시즌이 가장 아쉽다.

Q. 늘 분주하게 비시즌을 준비했다. 처음으로 다음 시즌을 생각하지 않는 겨울은 어떤 느낌인가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시원섭섭하냐’ 였던 것 같다. 그렇다. 시원섭섭하다. 그런데 정말 편안한 겨울이다. (다시 한 번) 정말 편안한 겨울이다. 선수들이 좋은 시즌을 보내거나 기대이하의 성적을 보내든 항상 스트레스가 있다. 잘했으면 더 잘하기 위해, 못하면 반등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시즌이 끝나면 하루 이틀 후에 곧바로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번엔 눈을 떴을 때 이렇게 기분 좋게 눈을 뜬 게 언제였나 싶더라. 다음 계획이나 목표가 없다는 것이 참 좋더라. (웃으며) 식사를 해도 살 찔 걱정도 안 하고.

매일경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그렇게 철저하게 지켰던 루틴은 사라졌나

(어깨) 수술한 지 이제 2주 됐는데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운동은 바로 시작했다.

Q. SSG에서 4년간 지켜보면서 더 좋은 팀이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충분하게 기량이 좋은 선수들은 많다. 너무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강팀이 되려면 조금씩 세대교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팀이 가야 한다. 우리가 다른 팀보다 연령이 높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베테랑 선수들이 밑에 있는 선수들을 도와가면서 서서히 잘해 나간다면 좋은 팀이 될 것이다. SSG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일 같다. 한국에서 정말 기량이 좋은 선수들을 많이 봤다. 감탄을 하면서 그 선수의 플레이를 본 기억들이 있다. 그 선수에게 메시지를 전하자면 그 자리가 영원히 자기 자리인 것처럼, 항상 내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협하는 선수가 늘 있다고 생각하고 밑에 있는 선수들을 또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게 선수 개인으로도 나아지는 부분이고 한국야구를 위해서도 더 성장하는 모습들이 될 것 같다.

Q. 부산 태생의 야구인이었던 추신수에게 이제 인천야구와 SSG 랜더스는 어떤 의미일까

알다시피 저는 부산 사람이고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기도 했다. 또 롯데 야구를 보면서 야구선수의 희망을 키워왔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롯데에서 뛰지 못하게 된 것은 정말 아쉬운 상황이다. 하지만 돌아왔을 땐 롯데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첫 발을 내딛었던 곳이 인천이었다. 그렇기에 SSG는 내겐 말그대로 ‘첫 팀’이다. 김광현, 최정과 같은 대선수와 함께 하면서 선배이긴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동료로서 그런 선수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매일경제

사진=김재현 기자


Q. SSG의 차기 주장을 꼽자면

앞으로는 최지훈, 박성한, 올해부터는 또 박지환, 정준재, 조병현과 같은 선수들이 앞으로 SSG의 얼굴이고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잘 할 것이다. 차기 주장은 (최)지훈이나 (박)성한이가 아닐까 싶다. 성한이도 충분히 잘 할거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조용한 성격이다. 주장은 아무래도 앞에 나가서 통솔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웃으며) 너무 조용해서, 최지훈 선수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Q. 야구인생에서 자신의 점수를 매긴다면

마지막 타석을 마치고 엄청나게 많은 연락을 받았다. ‘아쉽다’, ‘시원섭섭하겠다’, ‘1년 더 해라’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경기 다음 날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9살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어제 야구가 끝난 타석까지 생각해봤는데 되짚어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라. 내가 원하는 선수가 되지 않았을진 몰라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야구에 대해선 내게 주어졌던 24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잘 쓴 것 같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겨울이 행복하다고 한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 점수를 매기는 것은 그렇고 내게 점수를 매긴다면 ‘고생했고, 잘 살았네’라고 말해주고 싶다.

Q. 은퇴경기 계획이 있나

은퇴식은 들어봤는데 은퇴경기는 처음 들어본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몸이 안되기 때문에 억지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인사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구단에서 준비해주셔서 은퇴식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퇴 경기는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다.

매일경제

사진=김영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은퇴 과정에서 가족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다른 많은 팬의 말씀도 기억에 남지만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인 와이프나 아이들이다.

남자 아이 2명은 야구를 같이 하고 있다. 아직 프로에 지명 되지 않았고, 이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지만 메이저리그에 지명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어릴때는 잘 몰랐는데 크고 나선 ‘아빠가 왜 그렇게 일찍 나갔는지를 이제는 이해한다’는 말을 하더라. 어릴땐 ‘아빠는 왜 맨날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아이들이 많이 묻곤 했다. 그땐 ‘우리는 이 사람들보다 가진 게 없어서, 약하기 때문에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제) 아이들에게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했다.

Q. 추신수를 만들어준 아마추어 은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다 좋은 분들이었다. 내가 이런 선수가 될 때까지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장식 (수영초등학교) 감독님과 조성옥 (부산고) 감독님 두 분이 안계셨다면 미국에 진출하기도 어렸을 것이다. 두 분이 고인이 되셨는데 살아계셨다면 이 자리에 초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야구 인생의 기쁜 순간들을 같이 나누지 않았을까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을 때 쯤 돌아가셔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 마음 속에 두 분을 묻었다. 감사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

Q. 먼저 은퇴한 1982년생 친구들은 어떤 조언을 해줬나

(웃으며) (이)대호나 (김)태균이 같은 선수들은 아마 오늘 기자회견하는지도 모를거다. 워낙 바쁘니까.내년에 은퇴식하면 올 것 같다.

매일경제

사진=천정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이 기대되는 선수가 있다면

메이저리그는 도전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4년을 뛰면서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선수는 이정후였다. 그리고 김도영 선수, 또 김혜성 선수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엔 평균인 선수는 없다. 모두가 평균 이상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때론 조금 쉬어갈 만한 선수도 만나야 하는데 메이저리그는 항상 1선발 선수를 가장 만나는 기분이 든다. 불펜 투수들 역시 만나면 오히려 더 힘들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평균(선수들)이 없어서 아마 힘든 경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접 뛰어보니 많은 선수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Q. 은퇴 후에는 이제 어떤 아빠가 되고 싶나

어느새 큰 아이가 대학생,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어 있더라. 이제는 아빠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항상 아빠 없는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년 동안에도 와이프가 한국과 미국을 오갔지만 한국에 있는 기간이 더 많았다. 내년에는 아이들의 야구 경기를 직접 보면서 실력이 향상됐는지 보고 싶고 아빠 역할을 많이 하고 싶다.

Q. 야구팬들에게 역대 최고의 타자로 ‘추강대엽’이 언급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손사래를 치면서) 저는 좀 빼주시면 안 됩니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진심으로 부담스럽다. 이승엽 선배님이나 (이)대호가 해온 것에 비해서 견주는 것이...그저 뛰는 리그가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대호나 이승엽 선배가 미국에서 기회를 많이 받았으면 정말 잘했을 것 이다. 강정호는 정말 좋아하고 친한 동생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최고의 선수이고 좋은 선수였지만 미국에서 뛰었던 시간은 제 생각엔 짧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담을 섞어 두 번째 있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매일경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취재진 일동 웃음

내가 첫 번째인 것을 왜 부정을 하냐면 한국에서 뛴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서 뛰었다고 더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선수들에게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기회가 있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나 이승엽 선배는 최고의 선수였고 대호도 그렇다. 그렇기에 내 생각에 이승엽 선배나 대호가 그 앞자리에 있어야 될 것 같다.

Q. 오랫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이 안난다. 미국에서 뛸 때도 새벽부터, 아침부터 내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 한국에서도 사인회를 하면서도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있다. ‘멀리 있어서 못 볼 줄 알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줘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표현은 안했지만 마음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야구선수로 뛰면서 많은분에게 응원도 많이 받았고, 질타도 많이 받았다. (질타 역시) 그것도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한국야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잘 한번 생각해보겠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잠시 고민 후 웃으며) 다음 생에 태어나도 야구 하겠습니다.

[송도(인천)=김원익 MK스포츠 기자]

[ⓒ MK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