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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재소자들은 가석방 심사관을 최후의 판사라고도 하죠. 최후의 판사답게 잘 판단하겠습니다.”
tvN 월화드라마 ‘가석방 심사관 이한신’(극본 박치형, 연출 윤상호)의 주인공 이한신(고수 분)이 심사관 임용 당시 밝힌 소감이다.
교도관 출신 변호사 이한신의 멘토 천수범(조승연 분)은 말했었다. “난 교도관이다. 협박에 굴복해서 양심을 저버리고 죄를 저지르면 재소자들하고 다를 바가 없다. 그럼 무슨 자격으로 재소자를 상대하고 교화하겠나?”라고.
하지만 그 천수범은 교도소에 있다. 오정그룹 지동만(송영창 분) 회장의 외아들 지명섭(이학주 분)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 위반, 마약, 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받은 지명섭은 자신의 가석방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천수범에게 교도소내 마약류 반입 혐의를 씌워 투옥시켰다.
그 모습을 보며 이한신은 멘토가 제시한 길을 저버렸다.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우리만 룰 다 지키면서 점잖게 싸울 수는 없잖습니까.” 최후의 판사 이한신의 스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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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신의 타깃은 비자금 조성 및 배임 혐의로 3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인 지동만이다. 사채업으로 출발해 그룹을 일군 지동만의 좌우명은 “법 위에, 사람 위에, 돈이 있다”다. 그 잘난 재력을 앞세워 하루 속히 출소하고 싶어하는 지동만은 이한신이 보기에 형기를 꽉 채워야 마땅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같은, 큰 형 같은 천수범을 교도소로 보낸 악연도 있다.
점잖게 싸우는 길을 포기한 이한신은 지동만의 집사변호사를 자처했다. 아양 떨고 비위 맞추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동만의 힘을 빌어 소원하던 법무부 가석방 심사관의 지위를 따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행보가 지동만의 뒤통수 치기.
이한신은 지동만의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전처인 최원미(황우슬혜 분)를 종용해 지동만을 상대로 ‘악플로 인한 명예훼손’ 고소를 진행한다.
5인의 심사관 중 대법관을 미끼로 회유하려다 실패한 오반석을 제외, 4인의 찬성을 기대했던 지동만은 이한신이 부적격 판정을 내리자 놀란다. 하지만 3인의 적격 판정을 믿고 여유를 부리다 뒤늦게 최원미의 고소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 담당 형사로 광역수사대 안서윤(권유리 분)까지 출석, 가석방 심사 보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가석방 심사가 보류되자 광분한다.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이 개자식아!”
이한신이 굳이 ‘너는 나한테 왜 그랬는데?’ 물을 이유는 없다. 이유는 그동안의 지동만이 충분히 보여줬으니. 다만 프락치 노릇까지 해가며 목적을 관철시킬 수 있는 가치관의 변화만을 향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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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변화를 체험한 이는 또 있다. 성공한 사채업자 ‘장충동 엘사’ 최화란(백지원 분)이다.
최화란에겐 뼈아픈 실패가 있다. 준봉홀딩스 투자 사기사건이다. 그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최화란으로선 씻을 수 없는 수치다. 그 사건 공범 김봉수(김형묵 분)가 가석방 심사명단에 올라 이한신이 찾아왔을 때 최화란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장충동 엘사’도 못 받아낸 돈을 햇병아리 변호사가 무슨 수로 받아내?
하지만 이한신은 주범 박희준(유정호 분)의 조바심을 이용한다. 김봉수가 먼저 가석방 될 경우 숨겨놓은 범죄수익금 400억원을 챙겨 잠적할 것이란 위기감을 조장하고 이 이간계가 성공하며 금괴로 바꿔두었던 이들의 범죄수익금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돈을 자신을 포함해 당장 생계에 몰린 사기 피해자들에게 무상으로 돌려준다.
‘법 위에 돈, 사람 위에 돈’이란 가치관은 지동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최화란 역시 그렇게 살아온 인물이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도망간 엄마란 인생의 출발점부터 믿을 건 돈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범죄수익금 모두를 피해자에게 무상으로 돌려준다고? 왜? 이한신이 내린 결론은 최화란에게 낯설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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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결과정에서 이한신은 범죄수익 은닉처로 추정된다며 건물 하나를 사라고 종용했었다. 외지고, 장사 안되고, 맛조차 없는 식당 건물을. 손해가 빤히 보여 돈을 빌려줄테니 본인 명의로 사라고 했더니 겁 없이 사들인다. 문제는 범죄수익금 회수하고 났더니 그 앞으로 인터체인지가 생긴단다. 떼돈 벌게 생겼다.
살살 배 아픈 판에 이한신이 원금에 넘기겠다고 제안한다. ‘이런 호구, 아니 이런 천사가?’ 싶은 순간 조건을 내건다. 가석방 심사를 앞둔 허은지(황세인 분)란 재소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야 한단다. 돈이 얼만데. 당연히 수락했다.
그 역할은 어이 없으면서 즐거웠다. 자신과 같은 어린 날의 불행 끝에 허접한 사내 놈에게 눈이 멀어 교도소에서 애까지 낳은 허은지는 챙겨줘야 할 딸 같고, 1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기는 한없이 귀엽다. 손녀같다. 어쩐지 남들 같아진 기분. 나쁘지 않다. 그제야 알았다. 어쩌면 사람은 돈보다 귀할 수 있다.
그리고 들이닥친 지동만. 최화란은 안도했다. 자신은 저런 천박한 괴물과는 급이 다른 인간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기꺼이, 당당하게 악다구니를 퍼부을 수 있었다. “너는 값도 못받아. 기름덩어리 돼지새끼야! 넌 불판닦개로밖에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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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변화를 겪은 것은 안서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형사로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정의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안서윤이다. 그 때문에 동생의 억울한 죽음조차 물증이 없어 응징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엮이게 된 이한신 변호사는 뭔가 달랐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지만 언제나 정의롭다.
그에게 준봉홀딩스 범죄수익금의 국고환수를 주장해 보았다. 그리고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목도했을 때, 안서윤은 국고환수 대신 피해보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엔 법의 손길을 기다리기엔 절박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최화란의 각성은 인류애 차원에서 훈훈하지만 이한신과 안서윤의 각성은 통쾌해서 씁쓸하다. 그들이 날기 위해 깬 알이 바로 법이다. 시청자로서 그 알 속의 두 주인공은 고구마처럼 답답했다. 그들이 즐탁해 알을 깼을 때 사이다 마신 듯 후련했다. 법감정이 그런 정도이니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은 아닌 것 같은 자괴감이 든다.
어쨌거나 고쳐 못쓸 두 인간 지동만과 지명섭의 준동은 여전하다. 천수범에게 덮어씌웠던 교도소내 마약반입의 유탄은 3년을 돌아 이제 이한신을 충격했다. 자, 이한신아! 이 난관은 어떻게 헤쳐나갈래?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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