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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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사를 수놓았던 명승부와 사건, 인물, 교훈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별별스포츠+', 역사와 정치마저 아우르는 맥락 있는 스포츠 이야기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와 만났습니다. 그냥 맞붙어도 빅매치가 분명한데 4년 전인 1982년 두 나라가 9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포클랜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그야말로 세계의 관심이 온통 이 한 경기에 쏠렸습니다. 세계 축구사에 라이벌전은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이 경기야말로 가장 유명했던 라이벌전으로 꼽을 수 있는, 그야말로 정말 많은 스토리와 논란을 남긴, 한마디로 '레전드 매치'였습니다.
마라도나의 선제골은 '신의 손'
유서 깊은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 무려 11만 4,580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킥오프 휘슬이 울렸습니다. 경기 시작부터 잉글랜드 선수들은 당연히 마라도나를 집중 마크했습니다. 마라도나가 공을 잡으면 잉글랜드 선수들이 여러 명 달려들어 태클을 가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여러 차례 넘어지며 파울을 유도했는데 전반전은 양 팀이 이렇다 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하고 득점 없이 끝났습니다.
'신의 손' 골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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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6분 그 유명한 '신의 손' 골이 나왔습니다. 잉글랜드 골문 앞에서 수비수가 걷어낸 공이 튀어 오르자 마라도나가 점프한 뒤 머리를 갖다 대는 과정에서 슬쩍 왼손으로 쳐서 골을 넣은 것입니다. 이 장면을 눈앞에서 본 피터 쉴튼 골키퍼를 비롯해 잉글랜드 선수들이 일제히 핸드볼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주심은 골로 인정했습니다. 마라도나는 골을 넣은 왼손을 치켜들고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당시 영국 방송 중계캐스터도 처음에는 "잉글랜드 선수들이 마라도나의 오프사이드 반칙이라고 항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리플레이 화면을 본 뒤 "핸드볼이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중계 방송의 느린 화면을 보면 마라도나의 핸드볼 반칙이 거의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의 거센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르헨티나가 1대 0으로 앞선 채 경기가 재개됐습니다.
6명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잉글랜드 선수에 맞서 드리블하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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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분 뒤인 후반 10분, 마라도나는 하프라인 뒤에서 공을 잡은 뒤 환상적인 드리블을 선보였습니다. 무려 60m를 단독 드리블하면서 잉글랜드 선수 6명을 차례로 제치고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영국 중계 캐스터도 탄성과 찬사를 쏟아낼 정도로 만화 같은 골이었습니다. 영국 중계 캐스터는 "정말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 골에 대해서는 논란과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완전히 축구 천재입니다. 첫 번째 골이 불법이었다면 두 번째 골은 이번 대회 최고의 골입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이 골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가장 유명한 골로 꼽히고 있는데 2002년엔 FIFA가 '세기의 골(Goal of the Century)'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마라도나는 4분 사이에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골'과 '최고의 골'을 모두 터뜨린 것입니다.
'포클랜드 패전' 통쾌하게 설욕한 아르헨티나
2대 0으로 뒤진 잉글랜드는 교체 카드를 썼습니다. 보비 롭슨 감독은 후반 29분 왼쪽 윙어 존 반스를 투입했는데 이게 답답하던 잉글랜드의 흐름을 돌려놓았습니다. 당시 23살 신예 반스는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으며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는데 장기인 스피드와 드리블을 발휘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후반 36분 반스가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정확한 크로스로 리네커의 골을 어시스트했습니다. 상대 수비수 2명을 제친 뒤 리네커의 머리에 정확하게 공을 배달하자 리네커가 놓치지 않고 6호 골을 터뜨렸습니다.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리네커의 대회 마지막 골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마라도나가 그림같은 '마르세유 턴'으로 잉글랜드 선수 2명을 한꺼번에 제치고 들어간 뒤 동료(타피아)에게 패스했습니다. 타피아가 강슛을 날렸는데 골대를 강타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로서는 쐐기 골 찬스를 아쉽게 놓쳤습니다.
가슴 철렁한 위기를 넘긴 잉글랜드는 후반 43분 또 한 번 존 반스의 발끝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반스가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정확한 크로스를 리네커에게 연결했습니다. 머리에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들어가는 상황이었는데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훌리오 올라르티코에체아가 말 그대로 간발의 차이로 머리로 걷어냈습니다. 잉글랜드로서는 정말 통한의 순간이었고, 올라르티코에체아가 아르헨티나를 구해낸 순간이었습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마라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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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대 1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모여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4년 전 포클랜드 전쟁 패전의 아픔과 울분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쁨을 넘어 아르헨티나로서는 정말 통쾌한 승리였던 것입니다. 최대 고비를 넘은 아르헨티나는 준결승에서 벨기에, 결승에서 서독을 꺾고 8년 만에 통산 2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우승을 이끈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민 영웅은 물론, 펠레와 함께 축구 레전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마라도나 "신의 손, 후회 안 해"
뜨거웠던 승부만큼이나 경기가 끝나고 그 후폭풍도 거셌습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논란의 첫 번째 골에 대해 "내 머리와 '신(神)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신의 손'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입니다. 반면, 패장이었던 보비 롭슨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그 골로 승부가 났다. 이렇게 매우 중요한 경기에서 나온 심판의 나쁜 판정이었다. 월드컵 레벨에서 이와 같은 판정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신의 손' 운운하는 마라도나를 겨냥해 "추악한 사기꾼의 손"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보비 롭슨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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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신의 손' 골 오심를 범한 심판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주심 알리 벤 나세르(튀니지)는 훗날 200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나는 마라도나의 핸드볼을 보지 못했다. 그가 머리로 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심이 나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어서 그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당시 부심의 시그널을 기다렸는데 없어서 골로 인정했다." 그는 이렇게 부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그단 도체프(불가리아) 당시 부심은 2007년 인터뷰에서 이를 반박했습니다. "주심이 먼저 골로 인정해 버렸기 때문에 나는 깃발을 들 수 없었고, 그 골이 무효라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주심의 결정이 최종 결정이다."
벤 나세르 주심은 이 경기 이후 더 이상 월드컵에서 심판을 맡지 못했습니다. 마라도나와 벤 나세르 심판은 훗날 재회했습니다. '신의 손' 사건이 터지고 29년이 지난 2015년 8월 마라도나가 튀니지에 광고 촬영을 하러 갔다가 벤 나세르 심판의 집을 방문한 것입니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사인이 담긴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 티셔츠를 선물했는데 유니폼에는 '나의 영원한 친구 알리에게'라고 적었습니다. 벤 나세르 심판은 2020년 11월 마라도나가 타계했을 때 "마라도나는 아주 훌륭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2005년 마라도나의 기자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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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는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신의 손' 골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2005년 8월 아르헨티나 TV 토크쇼에서 비화와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당시 그 골은 눈속임을 위해 자신의 왼팔을 살짝 구부려 넣은 골이란 점을 '당당하게' 시인한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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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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