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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주대은 기자(종로)] 구자철이 현역 은퇴 후 유스 어드바이저로 변신한다.
제주SK FC는 1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축구회관 2층 다목적홀에서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제주SK FC 유스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진행했다.
구자철은 지난 2007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제주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제주에서 2010년 K리그 베스트 11, 도움왕 등을 차지하며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거듭났고, 이듬해 독일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구자철은 독일 무대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볼프스부르크를 거쳐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등에서 뛰며 211경기 28골 17도움을 기록했다. 이후 카타르 무대로 넘어가 알 가라파, 알 코르 등에서 커리어를 보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서 활약도 좋았다. 구자철은 지난 2008년 A매치 데뷔 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 올림픽, 2014 브라질 월드컵 등 국제 대회를 경험했다. 통산 A매치 76경기 19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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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은 지난 2022시즌을 앞두고 제주에 복귀했다. 해외 진출 당시 K리그 복귀 시 제주 유니폼만 입겠다는 팬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3시즌 동안 28경기 1골 2도움을 기록했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구자철은 "은퇴를 마음먹고 준비를 하면서 홀가분했다. 더 빨리 나와서 한국 축구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무한한 책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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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유스 어드바이저 위촉식 전문]
은퇴를 마음먹고 준비를 하면서 홀가분했다. 더 빨리 나와서 한국 축구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무한한 책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많은 취재진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우선 수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해 왔다. 단지 한국 축구를 위해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서 내가 받은 사랑과 누렸던 경험을 통해서 우리 세대들은 자신의 역할을 간과하지 말자는 생각이 확고했다.
나 역시 수년간 준비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에 시간에 빠르게 융화되는 게 중요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유소년 파트를 비롯해 경영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특히 아우크스부르크에 있을 때 뮌헨에 찾아가서 조금씩 배웠다. 다행히 날 낳아주고 키워준 제주에서 나에게 유소년 어드바이저 직책을 주셨다. 서두르지 않고 매듭이 있는 일을 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실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메고 단상에 올라갔던 때가 가장 기억 난다.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 그때 기억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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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 한일전에서 지고, 다시 지면 축구화를 벗겠다는 각오를 했던 게 화제가 됐다. 이제는 진짜 축구화를 벗는데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2011년 8월 11일 삿포로에서 있었던 한일전이었다. 내가 유럽에 진출하고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린 A매치였다. 그때 비행기로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 하노버에서 프랑스, 프랑스에서 인천, 인천에서 삿포로로 경기 이틀 전에 도착했다.
대표팀에서 많은 멋진 순간을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골을 뽑는다면?
첫 번째 골은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페널티킥 골이다. 그때 골을 넣고 달려갈 때 팔을 벌리며 세리머니를 했다. '내가 이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 고통을 이겨냈구나' 생각했다. 그때 느낌이 아직도 팔에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호주와 경기에서 넣었던 골이다. 첫 경기였던 바레인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는 그저 좋았다. 바로 다음 경기인 호주전에서 두 경기 연속골 그리고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짜릿함. 내가 원하는 대로 터치가 되고 원하는 코스로 공이 가는 짜릿함은 아직도 발에 남아있다.
(런던 올림픽 한일전 골이 나올 줄 알았다.)
한일전 골이 빠지면 안 되는데…3+1은 안 되나?(웃음) 사실 난 내가 뛰었던 메이저 대회에서 골을 넣지 못한 적이 없다. 모든 대회에서 골을 넣었다. 그때 런던 올림픽에서 유독 골이 안 들어갔다. 첫 경기부터 골대를 맞고 두 번째 경기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한 골도 못 넣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사실 브라질전에서 골을 엄청 넣고 싶었다. 나는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라가는 대기록을 만들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에 사로잡혔다. 4강까지도 힘들기 때문에 내가 팀에 중요한 골을 넣어서 결승에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도 골이 안 나왔다. 그런 찰나에 정말 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갔던 한일전에서 1년 전 아픔과 부끄러움을 털어낼 수 있는 골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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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거나 미련이 남는 순간은?
너무 많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쉬움, 아픔, 속죄 같은 게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그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이다. 아쉬운 걸 떠나서 그때 내가 너무 어렸다.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프로필에 '대표팀 최연소 주장,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
돌이켜보면 너무 어렸다. 돌이켜보면 난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당시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경험이 없고, 부족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나의 부족함 때문에 월드컵에서 결과가 국민들에게 아쉽고,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덕을 볼 수 있었던 분들에게 책임감이 없지 않았나. 죄송하다.
말이 길어지는데 제주 후배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한다. 제주 선수는 제주라는 사회의 어린이들에겐 꿈,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 배울 수 있는 행동이나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게 프로선수로서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한다. 나는 제주가 제주도 전반의 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한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 또한 우리나라의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 비단 어린아이들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은 사회적 책임이 따라온다. 그 부분이 부족했다. 아쉬웠던 순간이 많지만, 2014년을 담아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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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서 구자철을 비롯해 이청용, 기성용은 황금 세대를 이뤘다. 큰 족적을 남긴 세 선수 중 가장 빨리 은퇴한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질문 감사하다. 청용이와 성용이는 나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 내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한다. 셋이 단톡방이 있다.사소한 이슈로도 단톡방이 시끄러워진다. 은퇴 이야기를 했을 때도 굉장히 아쉬워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해줬다.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나는 성용이와 청용이를 같은 선수로서 존경했다. 항상 그들의 장점을 보면서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너무 훌륭한 선수들이었다. 내가 흔들릴 때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로 잡았다. 그 친구들도 나만큼 한국 축구에 대한 생각이 크면 크지 작지는 않다. 은퇴에 대해서도 조언 해줬다. 먼저 은퇴를 하니까 잘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라. 친구들도 은퇴를 빨리할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잘 기다리고 있겠다. 선수 생활 동안 고마웠고 영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 은퇴 이후 한국 축구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했나?)
성용이 같은 경우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지도자와 행정 수업을 받고 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둘 다 배우자는 말을 한다. 성용이도 외국 다녀오고 계속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어떤 걸 하겠다고 그들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지도자 자격증을 따야 한다. 행정적으로도 제주를 위해 유소년에 내가 가진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욕심을 내서 일을 그르치는 건 싫다는 게 공통적인 생각이다.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일들을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혼자의 생각으로 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기성용, 이청용이 있다. 열심히 해보겠다.
제주의 유스 어드바이저로 어떤 노하우를 전하고 싶나?
급하게 무언가를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한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있다. 내가 우월하거나 더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며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내가 할 일이 늘어 났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내가 뭔가 하자고 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아는 것과 현장의 어려움은 다르다. 난 아직 현장의 어려움은 모른다. 유소년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매듭을 지을 때까지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보겠다.
K리그에서 데뷔했을 때와 현재 K리그는 어떤 차이가 있나?
12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다. K리그에서 배출하는 유럽 선수들도 많아졌고 기회도 많아졌다. 전반적으로 꾸준히 K리그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행정적인 부분도 그 시간에 맞게 좋아졌다. 하지만 난 한국 축구 시장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많다. 나는 '어떻게 축구판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 너무 하고 싶은 게 많다.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아직 한국 축구가 좀 더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긍정적인 것을 보고 이야기하면 훌륭한 인프라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변해야 할 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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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잔디를 바꿨으면 좋겠다. 가장 기본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제주에도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도 우리 팀 잔디 상태가 리그 정상급이다. 감사하다.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구단에서 선수들의 부상과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 잔디를 신경 써주셨다. 무엇보다 잔디는 파고들어서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잔디가 상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날씨로 핑계를 삼아 방치할 수 없다.
잔디로 인해 피해 보는 건 첫 번째로 선수들이다. 두 번째는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이다. 나는 축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선수들을 보러 오는 그 지역의 축구 팬들이라고 생각한다. 선수와 팬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인 개선을 해서라도 바꿔야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 축구 국가대표 주장인 손흥민과 구자철의 리더십은 무엇이 다른가?
내가 주장으로서 흥민이의 리더십은 보지 못했다. 말을 함부로 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하게 말할 건 없다. (내 리더십은) 워낙 오래전 일이다. 난 선수들이 최대한 편안함, 부담과 압박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주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경기를 집중하고 즐기느냐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부담이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은퇴를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최종 꿈은 무엇인가?
일단 내 근육이 버티질 못한다. 무릎과 발목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부상 후 회복에 대한 감이 있었다. 유독 한국에 돌아와서는 회복 기간에 대한 감이 잡히지 않더라.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런 시간이 반복됐다. 그게 은퇴 결정에 있어서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겠다,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내 꿈은 한국에 돌아와서 나를 발굴해 주고 키운 제주에서 은퇴하는 게 꿈이었다. 그걸 이룰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은퇴 후 최종 꿈은 아직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서 지금 입 밖으로 뱉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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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감사하다. 나보다는 여기까지 나를 만들어준 우리 아빠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일찍 했다. 내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고생했다. 특히 독일에 있을 때 첫째를 낳고, 내가 대표팀 경기를 하러 가면 10일씩 자리를 비운다. 외국에서 애 둘을 키우면서 행복한 가장을 만들어줬다. 너무 고맙다. 그 옆에서 도와준 처제도 고맙다. 나는 나한테 이야기한다. 가정이 생기고 일을 하게 되면 더 책임감을 갖게 된다. 가족한테 고맙다. 유년기에 키워준 고모한테 감사하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전부 가족의 힘이었다. 가족이 부각됐으면 좋겠다.
제2의 구자철을 꿈꾸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우리 팀에 입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웃음) 농담이다. 목표를 정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목표가 청소년 월드컵 나가는 거였다. 그때 백지훈 선배가 공항에서 인터뷰했던 게 아직 머리에 있다. 밤에 줄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 대표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몇 년을 뛰었다. 너무나도 가지고 싶은 목표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목표가 없으면 동기부여가 있는 사람과 차이가 있다. 목표를 명확하게 갖는 게 중요하다.
최근 한국 축구에서 주목하는 선수들이 있다면?
(박) 지성이 형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갈 때 엄청 놀랐다. 흥민이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할 때도 정말 멋있었다. (이) 강인이가 파리 생제르맹 갈 때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구단을 가는구나'했다. (김) 민재는 뮌헨에서 뛰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후배들의 꿈을 크게 하는 것 같다. 눈여겨볼 선수는 이제부터 더 찾아보겠다.
분명히 우리나라 수준이 높아졌다. 후배 선수들이 꿈을 크게 갖는 원동력이 됐다. 단지 해외 진출이 목표가 아니라 정말 더 큰 구단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 옛날에서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꿈이라고 하면 '어떻게 그러냐'는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흥민이가 이뤄냈다.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도전을 해서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도 잘 따라가 줬으면 좋겠다.
제주 유스 어드바이저로 목표는 무엇인가
제주 선수 구성에 탄탄한 결실을 맺는 게 목표다. 선수들을 키워내서 재정적으로 팀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유소년 시스템의 기본 목표라고 생각한다. 목표에 충실해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선수들이 제주에 왔을 때 잘 키워서 1군에 정착시키고,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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