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무쇠 가장 양관식 역
‘사빠죄아’ 이어 다시 ‘인생캐릭터‘ 만나
‘폭싹 속았수다’ 장년의 애순과 관식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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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자였다. ‘아는 유행가 하나가 제대로 없고 걸그룹이 나오면 맨날 쟤가 성유리냐고 묻던 아빠’(‘폭싹 속았수다’ 마지막회 대사 중), 삶의 끝에서야 ‘김광석을 좋아하게 된 아빠’였다. 11살 때부터 한 사람만 바라본 해바라기였고, 급장도 계장도 아닌 ‘영부인’을 꿈꿨던 소년. 무쇠처럼 단단하고 바위처럼 우직하고 바다처럼 깊었던 관식은 내내 애틋했다.
“좋은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요. 요즘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어르신부터 또래, 젊은 친구들까지 고맙다고 하세요. 어떻게 드라마로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지…(웃음) 밉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냐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청년 관식을 이어받아 장년 관식으로의 삶을 보낸 배우 박해준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울 장충동2가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만난 박해준은 “관식이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고, 저는 그렇게는 못 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관식에게서 당신이 보인다”고 했단다. 그의 꿈도 관식처럼 ‘좋은 아빠로 기억되는 것’이다.
구석구석 너무 많이 써 빨리 고장 나버린 가전제품처럼 곳곳이 성치 않았다. 거친 제주 바람에 쩍쩍 갈라지고 해진 손끝은 59년 짧은 삶, 고단한 희생의 결과였다. 이런 아버지 관식의 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힘은 관식이 박해준이어서 가능했다.
배우 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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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우직한 가장’ 관식을 매만진 공은 현장에 돌렸다. 동료 배우와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 스태프에게 있다는 것이다. 박해준은 “극이 흘러가는 대로 있었을 뿐인데 회상 장면, 내레이션, 여러 배우의 연기 덕에 우직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 관식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청년 관식으로 절반의 삶을 공유한 박보검의 관식은 그에게 ‘참고할 데이터’였다. 그는 “(박)보검씨가 깔아준 판에 발을 얹은 것”이라며 “1~2막(봄, 가을)을 보는데 내가 보검씨의 미래로 나올 때마다 그의 잔상이 남아있어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관식을 드라마 최고의 ‘판타지’이자 ‘희생의 아이콘’이라 했지만, 박해준은 “관식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산 인물이기에 그의 삶을 희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삶의 끝자락을 연기해야 할 때는 물리적 노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 관식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불과 2주 만에 8㎏을 감량했다. 박해준은 “아무래도 병원 장면에선 외형상의 변화가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2주일간 계획을 세워 격투기 선수들이 (계체량 때) 하는 것처럼 수분을 빼 7∼8㎏을 줄였다”고 말했다.
꽤 고통스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매일 새로운 장면의 촬영이 이어지기에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폭싹 속았수다’ 아빠 관식과 딸 금명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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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식이 늘상 메고 다니는 낡은 크로스백과 오래된 가죽 지갑, 관식의 날들을 기록한 수첩도 박해준이 직접 준비한 소품이었다. 달라진 세상과 무관하게 그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장년 관식의 디테일을 잡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처럼 촘촘히 관식의 삶을 만들어가면서 배우 박해준에겐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가 생겼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며 일명 ‘사빠죄아’ 불륜남으로 불린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에 이어 ‘나의 아저씨’의 미남 스님, 영화 ‘서울의 봄’의 노태건까지. 특히 드라마의 김원석 감독과는 ‘미생’부터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 등 총 네 작품을 함께 했다.
그는 “당시 (‘나의 아저씨’ 촬영 때) 스님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찍으면서 감독님이 미안했는지 ‘해준아, 내가 어떻게든 너 책임져줄게’라고 하더라”면서 “그날의 약속이 ‘폭싹 속았수다’의 주연 자리로 이어진 것 같다”며 웃는다. 김 감독은 앞서 “관식은 무조건 착한 사람이 해야 하는 연기인데 박해준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증도 후유증도 많이 남아있어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 때마다 한 편씩 꺼내보고, ‘나에게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지’라고 돌아보는 이야기로 남는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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