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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토)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문소리 “미적분보다 어려웠던 애순…만날 봄인듯 살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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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를 지나와도 요망지고 해사한 엄마 애순

고민과 번뇌 …미적분보다 어려웠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 애순을 연기한 배우 문소리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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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그토록 요망졌던 문학소녀의 눈에 시간의 길이가 쌓였다. ‘너무도 어렸고, 여전히 여린’ 계절을 보내온 애순의 눈은 온 날들을 살아도 맑았다.

“애순이와 함께 사계절을 보내고 나니 ‘만날 봄인 듯’ 살 수 있겠더라고요.”

연기야 뭐, 누가 논할 수 있을까. 극단 차이무 출신으로 무대와 스크린을 오갔다. 영화 ‘박하사탕’ 이후 무수히 많은 얼굴을 거치며 문소리를 두고 같은 극단의 선후배 사이였던 ‘장년의 관식’ 박해준은 “쳐다도 보지 못할 레전드”라고 했다. 그럼에도 적짆은 부담을 안고 시작한 드라마였다. 국경을 건너 눈물바다를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그랬다.

사계절을 살아낸 뒤 만난 ‘장년의 애순’ 문소리는 “촬영 직전까진 온갖 번뇌에 사로잡히고, 어디 놓친 걱정은 없나 걱정을 하고 또 하는 편”이라고 했다. ‘대본의 힘’에 이끌려 후루룩 읽어내려간 뒤 “어떤 역할이든 관계없이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는 드라마에 승선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긴 생을 두 배우가 나눠 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소리가 연기할 애순은 1951년생, 3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의 삶을 그린다. 이미 시청자의 마음 안에 콕 박힌 소녀 애순의 시간을 건너 뛰는 일이었다. 그는 “애순의 본질은 같지만 나의 애순에겐 또 다른 미션이 있었다”고 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 애순을 연기한 배우 문소리 [넷플릭스 제공]Ev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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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에는 동네를 떠들썩하게 할 만한 사건도 저지를 만큼 휘황찬란했다가 가을·겨울엔 보편적 엄마의 삶이 들어왔어요.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엄마 안에도 ‘요망진 소녀’ 애순이의 본질은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꿈 많던 문학소녀와 평범한 엄마를 버무려 한 명의 인물로 보여준다는 것이 문소리는 “어렵고 큰 미션”이었으며, “미적분보다 어려운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지난 시간 사이 애순은 ‘생존의 외투’를 한 겹 한 겹 걸쳤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도 할머니 앞에서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 못했던 초보 엄마 애순은 가판에서 보지도 않고 오징어와 멍게를 척척 따며, 서울대 나온 딸 금명(아이유)을 자랑하는 사람이 됐다. “제주부터 서울의 소속사 사무실에서까지 전문가 선생님께 오징어와 멍게 손질 비법을 배웠다”며 문소리는 웃었다. 집안 곳곳에 묻어난 생활 연기의 흔적이 모두 문소리의 손을 거쳤다. 애순의 집에 놓인 빨래들, 김밥을 쌀 때 쓰는 미지근한 물 종지, 손자를 싸맨 포대기 등이다. “원래도 살림은 직접 한다”는 그는 소품팀이 준비해준 소품도 다시 매만져 장년 애순을 ‘문소리화’했다.

그는 “지금의 우리로는 엄마들의 20대는 어땠는지 상상하기 어렵다”며 “그 괴리를 담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겐 한 사람으로 연결돼 따라가야 할 것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대체 늙는다는 것이 뭘까 싶더라고요. 저도 배우로 욕심만 내면 한 칼 하고 싶죠. 그런데 늙는다는 건 그런게 아니잖아요. 어른이 되면 어떻게 늙어야 하나, 관식에게 여린 꽃처럼 사랑받은 꽃밭의 여자가 지닌 소녀다움과 억세고 거칠어진 여자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아무리 많은 풍파를 겪어도 고운 면을 간직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 애순을 연기한 배우 문소리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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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애순은 더 애틋했다. 주름의 깊이에도 삶에 찌들지 않은 해사한 얼굴이 자꾸만 ‘요망진 소녀’였던 모두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할머니의 치트키’가 된 눈물 시동 전 가슴에 손을 얹고 뱉는 ‘힝’ 한 마디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정작 문소리는 “대본에 써있는대로만 하면 모든 배우가 찰떡같이 나왔을 대사”라며 몸을 낮췄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은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 오애순이 왜 문소리여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며 공공연히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배우 아내는 “남편이 관식이 같다는 기사가 나면 기고만장해지고 우리의 결혼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 우려한다”면서도 “촬영 내내 남편 생각이 많이 났다. 결혼 18년차가 됐는데도 오랜 시간 아껴주는 마음과 표현들이 끊이지 않는 이 사람이 참 고맙다고 느꼈다”고 했다.

고민도 번뇌도 많았던 작품의 마침표를 찍고 난 뒤엔 결국 앓아 누웠다. 지난 1월 말이 마지막 촬영이었다. “요양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야외에서 시를 쓰는 장면”이라고 한다. “독감으로 고열이 나서 착륙했을 때 기억이 거의 없다”며 그는 “눈 뜨니 응급실에 누워있었다”고 회상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문소리는 “관식을 보낼 때 했던 ‘이런 복은 내리 안와. 꽃밭에 살아’,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는 대사들이 콕 박혔다”고 했다.

“‘수만 날이 봄이었다’고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정말 대단한 어른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힘든 날이 있잖아요. 머리는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삶, 참 찬란하고 대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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