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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배구 여제‘는 우승을 선물하고 코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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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근처에는 봄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과 목련이 아직 흐드러지게 피진 않았지만, 한국 배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슈퍼스타를 떠나보내기엔 화창한 날씨도, 이제 막 피어오른 꽃봉오리의 아름다움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흥국생명의 ‘배구여제’ 김연경(37)이 코트 위의 영원한 별이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났다. ‘라스트 댄스’의 마지막 순간까지 극적이었다. 김연경은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34점을 몰아치며 흥국생명의 세트 스코어 3-2(26-24 26-24 24-26 23-25 15-13)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전적 3승2패를 만든 흥국생명은 2018~2019시즌 이후 6시즌 만에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집어삼키는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2005~2006, 2006~2007, 2008~2009시즌까지 포함해 역대 팀 통산 다섯 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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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인 인천에서 1,2차전을 모두 승리하고 대전 원정을 떠나면서 다시 인천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김연경이지만, ‘배구의 신’은 그를 쉽사리 코트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3,4차전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다. 3,4차전 도합 61점을 퍼부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100%, 아니 200%를 쏟아 부었지만, 벼랑 끝에 몰려 강하게 저항하는 정관장의 에너지를 진압해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치르게 된 ‘외나무 다리’ 승부의 5차전. 이기든 지든 이제는 더 이상 코트 위에 설 수 없는 김연경은 20여년 간 세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하며 터득한 기량과 경험, 노하우를 코트 위에 쏟아 부었다. 득점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동료들의 파인 플레이에 포효하며 팬들의 열광을 이끌었다. 삼산월드체육관을 가득 메운 ‘철쭉응원단’(흥국생명 팬들의 애칭)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흥국생명 팬들에겐 그녀의 스파이크 하나, 블로킹 하나, 플라잉 디그 하나까지 모든 순간을 가슴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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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1세트부터 대폭발했다. 14-19로 뒤지던 상황을 듀스까지 몰고가며 끝내 잡은 것은 1세트에만 블로킹 2개 포함 10점을 몰아친 김연경의 압도적인 존재감 덕분이었다. 2세트도 김연경이 팀의 멱살을 끌고 갔다. 세트 후반까지 16-21로 뒤지던 상황에서 연속 블로킹으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기어코 듀스로 승부를 끌고갔다. 듀스에서는 김연경의 ‘원맨쇼’. 박은진의 속공을 가로막으며 세트 포인트를 따냈고, 이어진 랠리에서 오픈 공격을 엔드라인 끝자락에 떨어뜨렸다. 정관장 고희진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써봤지만, 공은 정확히 엔드라인 끝부분에 걸친 것으로 판독됐다. 2세트에도 블로킹 3개, 서브득점 1개 포함 10점을 폭발시키며 혼자서 세트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세트부터 양상이 묘하게 달라졌다. 3차전에서도 1,2세트를 내주며 챔프전 패배에 딱 한 세트를 남겨놓은 상황부터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챔프전을 5차전까지 끌고온 정관장의 저력이 발휘됐다. 3,4세트 초반부터 큰 점수차로 벌린 뒤 세트 후반 흥국생명의 거센 추격을 받았지만, 리드를 지켜내며 승부를 기어코 풀 세트로 끌고 갔다.

1차전 흥국생명의 3-0 셧아웃 승리를 빼면 2,3,4차전 모두 풀 세트 접전이 치러진 이번 챔프전. 5차전마저도 5세트에서 승부가 결정됐다.

김연경에겐 현역 마지막 세트. 15점의 짧은 승부에 따라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모습을 좌우되는 상황. 체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김연경은 모든 힘을 쥐어짜냈다. 한 점씩을 주고받는 일진일퇴 공방전이 거듭되던 10-10 상황. 김연경이 수비로 걷어 올려진 공을 혼자 뛰어올라 때렸다. 공은 수비가 아무도 손쓸 수 없는 사각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철쭉응원단’의 함성소리로 코트가 가득 찼다. 이후 김연경은 13-12, 14-13에서 결정적인 디그를 성공시켰고, 이 공이 투트쿠(튀르키예)의 공격 득점으로 치환되면서 길었던 승부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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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김연경은 투트쿠를 부여잡고 펑펑 눈물을 흘리며 현역 마지막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20여년 간 한국 배구를 세계무대에 알리고, 올림픽 4강 신화를 두 번이나 써냈던 ‘배구여제’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해피엔딩으로 현역을 마감했다. 팀 동료들은 김연경에게 헹가래를 치며 그의 마지막을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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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결정전 MVP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날 5차전 34점 포함 챔프전 5경기에서 133점을 올린 김연경은 기자단 투표 결과 31표 만장일치로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됐다. 김연경이 V리그에서 챔프전 MVP에 오른 것은 2008~2009시즌 이후 16시즌 만으로, 개인 통산 네 번째 챔피언결정전 MVP다. 흥국생명의 챔프전 5번 우승 중 4번을 김연경이 가져다준 셈이다. 오는 14일 열리는 정규리그 시상식에서도 개인 통산 일곱 번째 정규리그 MVP가 확실시되는 김연경이다. 데뷔 시즌에도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 은퇴 시즌에도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이처럼 완벽한 ‘수미상관’ 엔딩이 어디 있었을까. 오로지 ‘배구여제’에게만 허용되는 영역일 것이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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