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연기 신(神)’ 이병헌의 타이틀방어전 ‘승부’…“상처 많은 영화, 연고 발라달라”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승부’ 긴 터널 끝 26일 개봉 확정

이병헌의 믿고보는 연기…두 바둑 기사의 성장담

김형주 감독 “바둑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승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창석, 문정희, 이병헌, 현봉식, 조우진.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영화 ‘승부’의 김형주 감독은 재킷 안쪽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2021년 5월에 크랭크업한 이 영화가 무려 5년만에야 극장 스크린에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이창호 프로바둑기사를 연기한 주연배우 유아인의 마약스캔들로 “긴시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음을 조심스레 밝혔다.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승부’의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김형주 감독을 비롯해 배우 이병헌, 문정희, 조우진, 고창석, 현봉식이 참석했다. 긴 시간 운명을 가늠짓지 못하던 ‘승부’는 오는 26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배우 이병헌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승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미소짓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자신이 키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마약 스캔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화에 덧씌워지는 것을 피하고자 유아인을 빼고 사실상 이병헌 원톱 영화처럼 홍보가 되고 있지만, 사실은 조훈현과 이창호의 성장이야기다.

김 감독은 “조훈현과 이창호 두 사람은 서로를 논하지 않고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며 “대본도, 촬영도, 편집과정에서도 두 인물 사이에 어떻게 밸런스(균형)를 맞출까 많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무게추가 조금은 더 조훈현에게 있게 됐지만,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의 대결과 성장담”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주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승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프로 바둑기사의 이름과 두 주연 배우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은 김 감독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에게도 마음의 짐이 됐다.

김 감독은 “당시엔 이병헌과 유아인 둘이 함께 캐스팅되니까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면서 “(유아인씨가)주연배우로서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배우이기 이전에 사회구성원으로서 잘못을 하고 거기에 따른 처벌을 받는 중이라 제가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닦으며 말했다.

“지옥같은 터널에 갇혀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막막했는데, 이제 출구 쪽에 ‘개봉’이라는 한 줄기 빛이 보여서 숨통이 트입니다.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저 뿐만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오랜시간 고생하고 기다렸습니다. 여려 감정이 지나칩니다.”

베일을 벗은 ‘승부’는 연기로는 국내 정상을 찍은 이병헌의 화려한 ‘타이틀방어전’에 가깝다. 이병헌은 “바둑판 앞에서 거의 감정변화없이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하는데, 그런 정적인 가운데에서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폭발하는 감정, 절망스런 감정 등 여러가지 극단적 감정을 겪는 모습을 표현해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일찌감치 바둑에 기재를 보이는 이창호를 찾아내 제자로 삼는 조훈현. 영화 스틸컷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특히 자신이 집에서 가르치던 열다섯살의 제자 이창호와 붙은 대국에서 내면 연기가 폭발했다. 10년은 더 있어야 제자가 자신을 넘어설 것이라고 믿었건만, 바둑판 위의 상황은 어느새 조훈현의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은 이병헌의 복잡한 얼굴로 그대로 나타나고, 결국 제자에게 악수 한번, 인사 한번 건네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국장을 빠져나간다.

이병헌은 “그게 결국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에 저렇게 극적인 일이 생길까 싶었다”면서 “집에서 가르치던 제자에게 지고, 제자에게 매번 도전하는 그런 상황들이 실제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드라마틱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9단의 인생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그 이후로도 너무나 많은 기록을 가진 국수님(한 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죠. 정상에 있던 사람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예선부터 수많은 대국을 치르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건 영화에서는 한 줄 대사로 표현됐지만, 실제 그 마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힘든)마음일거예요. 이런 것을 연기하고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게 되게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소인배 연기’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없을 정도로 이미 내 안의 소인배같은 모습이 있어서 (연기가)수월했다”고 밝혔다. 현실에서 이병헌 본인이 조훈현과 같은 궁지에 몰리게 되면 어쩌겠느냐는 질문엔 “연기는 바둑처럼 승부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 연기가 훌륭할수록 나 또한 같이 살고, 더 빛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대회를 우승하고 수많은 기록을 보유한 프로바둑기사 조훈현9단을 연기한 이병헌. 영화 스틸컷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아인이 연기한 이창호 국수 역시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물의를 빚었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가 보여준 연기만큼은 ‘편집 당해선’ 안됐다. 이병헌과 마찬가지로 그도 바둑판 앞에서 대국을 치르는 연기가 대부분인데, 작은 동작과 표정변화만으로 내면을 섬세하게 전달했다.

아역(김강훈 분) 때는 호기롭고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유아인으로 바뀌고 나서는 익숙한 ‘돌부처’ 이창호로 변한다. 김 감독은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생활하며 성격이 바뀐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자기만의 바둑 기풍을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버린거라고 보았다”면서 “어릴 때부터 훨씬 연장자들과 대국을 치르면서 자기만의 방어기제가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호흡을 맞춘 이병헌은 “처음 유아인씨 캐스팅 소식을 듣고는 ‘재밌는 촬영이 되겠구나’ 싶었다”면서 “근데 막상 만나보니 굉장히 과묵한 후배였다. 리허설, 촬영에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기에 저 또한 몰입이 잘 됐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바둑을 모르는 분들도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없어야한다는 기본 원칙, 토대 위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에서 영화를 세상에 내놓게 됐다. 그것만으로 기쁘고 감격스럽다”면서 “(유아인씨와 관련해서)선택과 판단은 대중의 몫이라 제가 강요할 순 없지만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한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상처가 많았는데, 연고 발라주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봐달라”고 당부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