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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이야기는 사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을 보는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책은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완성되는 느낌이잖아요. 연기할 때도 그랬지만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한글자 한글자 읽어나가는 작품 같았어요."
'은중과 상연'은 10대부터 40대까지, 누구보다 서로를 아꼈고 동경했으며 또 미워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애증이란 말로는 모자랄, 애정과 파탄 그리고 화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고은은 죽음을 앞둔 친구 상연(박지현)으로부터 조력사망을 위해 스위스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은중 역을 맡았다.
'은중과 상연' 공개를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고은은 "어떻게 내가 보내줄 수 있을까, 잘 보내주고 싶다"며 말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오열한 적이 있었다.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김고은이지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고, 말로 잘 정리가 안된다면서 김고은이 꺼내놓은 이야기. '은중과 상연'을 찍던 2023년, 그는 가까운 친구들을 잃었다 했다.
"은중의 입장에서 나의 삶과 그 아이의 삶을 전달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스위스를 따라가는 은중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잘 보내주고 싶다' 였어요. 정말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우리가 보내줄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잖아요. 마지막 순간에, 침대에서처럼 이야기도 해줄 수 있고, 고생했다 잘 견뎠다는 말도 덧붙여줄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은중이에게도 기회이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은중과 같은 상황이라면 스위스에 함께 갈 것 같나'라는 질문에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저는 가 줄 것 같아요." 그리고 20대 시절 6년을 단둘이 살았던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딱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3일 밤낮을 할머니 곁에 있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느낀다"는 그는 "떠올리면 슬프기도 하고 하지만 좋은 기억이 훨씬 많이 난다. 내가 마지막을 잘 동행했다는 마음이 좋더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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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가 작품을 잘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며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고 했다. 주변의 도움도 받고, 코멘트도 얻는다면서,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걸 따지지는 않는다 했다.
다만 '은중과 상연'은 조금 달랐다. 대본 1~4부를 먼저 받아 읽고는 자꾸 5부를 찾는 스스로를 보며 '이건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상연을 연기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은중을 잘 표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고도 했다.
시청자로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멈추지 못하고 다음회 또 다음회를 넘기다 어느덧 당도한 15부. 그렇게 '은중과 상연' 15시간을 달리고 나면 마치 둘의 이름이 보통명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뒤틀린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린, 그런 자신마저 미워하게 된 상연의 대척점에 김고은의 은중이 있다.
김고은은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은중이일 때가 있었고 상연이일 때가 있지 않았나"라면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제가 마음이 가장 아팠던 대사가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그렇게 된다'는 말이에요. 저는 아이는 아니지만, 세상이라는 게, 스쳐서 생각이 들고 그것이 자리를 잡으면 정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세상에 들어가는 건 한순간이고 쉬운 것 같은데 나오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나오기 위해서 발버둥쳤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상연이는 정말 뒤늦게 어떻게든 나왔구나 싶었어요."
김고은은 가만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속을 알 수 없는 상연보다는 은중 쪽에 가까워보인다는 이야기에 "아닌데, 나 속을 알 수 없다고 하던데"라고 짐짓 너스레를 떨면서.
"저는 은중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때때로 상연이같은 모습이 나올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일을 하다보면 마음의 병이 날 때도 있잖아요. 그때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순간이에요. '절대 안돼. 저 세상에 들어가지 않아야지.' 저는 한번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것이 너무 무섭더라고요. 발악을 하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자존감이 너무 떨어지니까 생각의 회로가 너무 모나지는 걸 스스로 경험했어요.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어요. 어릴 때는 '저 사람 너무 별로다' 단정짓거나 '같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내가 되는 경험을 해보니까. 당시에 발버둥을 치면서 몇년의 어려운 시간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타심? 이해심이 생겼어요. 그 이후로 마음이 아플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어떻게든 그런 방식으로 가지 않으려 저를 굉장히 자주 들여다보게 돼요. 그때는 제가 상연이같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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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여운이 남는 건 아무래도 지난한 관계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40대다. 김고은은 "상연이는 우는 역할이 아니다. 은중이도 우는 아이가 아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걸 견디면서 촬영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은중이 상연에게 '내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지. 반대로 말하지 말고'라고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했다.
"원래는 좀 더 감정적인 신이었어요. 감독님과 상연이 옆에서 이야기했던 게 '말이 필요하지 않게끔 우리는 서사를 쌓아왔다. 은중이가 절대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눈빛이나 호흡으로 표현했을 떄 30년이 느껴지지 않을까. 다 지우고 한 대사만 남겨놓고 상연이도 '응' 딱 하나만 한 게 저는 참 보면서 너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끝으로 김고은에게 '남겨진 은중이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고은이 아니라 은중이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너 잘했다, 은중이는 자기를 잘 지키는 아이니까,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쁜 영향이 오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니까, 앞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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